• [Culture]슬픈 단어 아나키스트

    입력 : 2013.03.07 15:19:34

  • 사진설명
    길을 가다 극장 간판에 쓰여 있는 카피문구를 보고 곧장 들어가서 영화 <아나키스트>를 본 적이 있다. 나를 감동시킨 문구는 ‘삶은 산(山)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였다. 도무지 안 볼 수가 없었다. 그 비장함에 짓눌려 계단을 걸어 올라갔고 뒷좌석에 앉아 영화를 지켜봤다. 그러나 영화는 내 들뜬 기대감을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내 생각에 비장해도 모자랄 주제를 너무 희화시켰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장면 오래도록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에는 세르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조선인 아나키스트를 사랑하는 한 일본인 여인이 등장한다. 비운의 사랑인 셈이다. 언제 어떤 운명 앞에 놓일지 모르는 식민지 청년을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은 담담하고 처연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을 방문한 누군가가 침대 머리맡에 아나키스트 관련 책이 놓여 있는 걸 보고 그녀에게 “왜 그런 책을 읽냐?”고 물었다. 곧이어 나온 그녀의 대답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상(思想)이니까요.”

    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슬픈 운명을 이해했고, 그 사람의 생각까지 사랑한 그녀는 충분히 멋졌다. 우리는 아나키스트(Anarchist)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번역한다. 난 그 번역이 일본의 한 대학생이 번역한 걸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오해는 바로 그 번역에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무정부주의’라는 번역 때문에 나는 ‘아나키스트’하면 정부가 없는 혼란 상태를 먼저 떠올렸다. 아나키스트는 러사아어인 ‘트라보로 아나르키아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그 어원이다. ‘선장없는 배의 주인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해서 아나키스트는 ‘자유연합주의’ 정도로 번역되어야 한다. 인간해방을 지향하기는 하지만 독재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도 틀리다. 물론 이 이념은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다. 아나키즘은 근대로 넘어오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해야 하는 중요한 정치사회적 경향이었다. 물론 한반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추앙하는 독립투사 단재 신채호 선생이 대표적인 조선의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즘의 기본원리를 알려면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진화론>을 읽어야 한다. 해설서인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하승우 지음, 그린비 펴냄)도 서점에 나와 있다. 아나키즘은 적자생존이나 생존경쟁이 아닌 상호협력과 연대가 인간사회를 이끌어온 힘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 독립운동에 가열 차게 뛰어들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제국주의 이론과 아나키즘이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다윈의 적자생존 학설이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침략전쟁을 변호하는데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는 슬픈 단어다. 자신의 신념과 대의를 위해 유독 치열하게 투쟁했던 아나키스트들은 일제 강점기에서 그 어떤 독립운동 세력보다도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광복된 다음에도 아나키스트의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권력에 의한 통치를 부정했던 아나키즘은 남북한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부정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던 그들은 그렇게 망명지의 뒷골목에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이 한 번 품었던 사상은 결코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 법.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진화론>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진화론>
    최근 아나키즘을 닮은 사회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넓게 보자면 생태주의 환경운동, 대안 교육운동 등이 상호부조론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들이다. 무한경쟁에 지친 다수의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이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아나키즘이 인간의 근현대를 형성한 중요한 사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잊혀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우당 이회영은 조선의 명문대가집 자손으로 태어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왜 아나키스트의 길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민지 조국을 살리기 위한 방법론으로 선택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소장 역사학자인 이덕일 씨가 쓴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은 한 시절 청춘을 조국을 위해 바쳤던 아나키스트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난 무정부, 테러, 허무, 낭만적 인텔리겐차 등의 단어는 그들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단어들은 그들이 한 시대를 견디는 과정에서 생긴 치장일 뿐 그들의 본질은 아니었다. 근대 서구사회에서 시작되어 일본열도를 휩쓴 사상은 ‘다윈주의’였다. 열성이 우성에 의해 사라진다는 약육강식의 진화론으로 무장한 서구사상이 동북아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 후폭풍에 한반도가 놓였던 것이었다. 조선인 동경 유학생들은 이 같은 삼투압 방식의 인류 발전론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대척점에 있는 아나키즘으로 당시 조선인 지식인들의 눈길이 흐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시절 동경유학생들을 고무시킨 책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이었다. 생물진화의 원동력이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라는 논리를 편 이 책은 침략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고 훗날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경전이 됐다. 아나키스트들은 잊혀진 존재들이었다. 또 다른 독재인 사회주의와 평등을 위배하는 자본주의 모두를 공격했기 때문에 그들은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아야 했다. 흥미로운 건 공동선을 바탕으로 하는 아나키즘이 지금 환경운동과 시민운동의 사상적 배경의 하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따지기 전에 혼돈의 한 시대에 태어나 조국을 위해 사라져 갔던 아나키스트들에게 지금쯤 뒤늦은 헌사라도 바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부 부장대우·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