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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의 자작나무 아래서]⑦ 국물은 다만 국물이 아니다
입력 : 2013.03.07 15: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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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어를 만난다. 알파벳 인쇄체와 필기체를 쓰면서 중학교 시절은 시작되는 것이다.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하는 그 낯설면서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말, Boys Be Ambitious!를 가슴에 몰래몰래 새겨 넣으면서.
그렇게 일 년이 가고 한 학년이 끝날 때가 와서야 우리는 비로소 알았다. 새 모자가 땀과 흙먼지에 찌들고 새 교복의 무르팍이 튀어나오면서 낡아갈 때, Boys Be Ambitious는 달콤했지만 잠깐의 유혹이었을 뿐, 그 무렵의 중학생이 가질만한 꿈이나 대망이란 애당초 없었다는 것을.
그런 한 학년이 끝날 때쯤이면 남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 가방, 한 해 동안 들고 다닌 가방이었다. 새어나온 도시락 반찬국물로 찌들어 냄새가 나는 책가방이 있었다. Boys Be Ambitious!만큼이나 찌들고 낡고 냄새마저 고약하게 풍기는 것은 가방만이 아니었다. 도시락의 반찬국물은 새 교과서와 참고서를, 차곡차곡 정리했던 대분수가 가득한 수학노트마저도 귀퉁이를 누렇고 검붉게 물들이면서 촌구석의 중학생이 품고 다듬을 꿈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것을 웅변해 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그렇게 남았다.
어머니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도시락 반찬의 국물이 새어나와 노트를 적시고 참고서 귀퉁이를 물들일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국물을 넣어야 했던 한국인의 음식에 대한 원형질이 어머니의 마음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모든 음식에는 국물이 있어야 제 맛이 난다는 슬픈 전설이. 국물, 이것은 다만 도시락 반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음식에서 국물은 덧이자 멍에, 아니 화려한 비상이 된다.
맛이 있느냐 없느냐의 잣대로, 국물은 모든 한국음식의 기본이 되는 첫걸음이자 한국음식의 본질을 좌우하는 핵심이 되어 왔다. ‘국이나 찌개 따위의 음식에서 건더기를 제외한 물’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는 국물은 유사한 외국어를 찾기 힘들다는 데서도 그 본질이 쉽게 이해가 된다.
내 짧은 외국어를 탓해야 할 일이겠지만, 영어나 일본어에는 우리가 국이나 찌개 혹은 김치에서 말하는 국물이라는 의미의 말이 없다. 국물을 대체로 Soup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건 본질적으로 우리 음식의 국물이 아니다. ‘김치 국물이 흥건하다’를 영어로 표현하자면 Kimchi Has Too Much Juice가 되어 버린다. 한식의 국물은 아예 Kukmul이라고 쓰든가, 국물이라는 의미의 영어가 없다고 보는 게 옳다. 예를 들어 어린애들이 쓰는 ‘너 한 번만 더 걸리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의 국물을 의역을 하지 않는 한 어떻게 번역을 하겠는가. 문제는 이 국물이 건더기를 넘어서서 우리 음식에서는 그 요리 자체의 질을 결정한다는 데 있다. 건더기가 문제가 아니다.
국물은 찌개나 국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냉면 같은 국수류에 이르면 국물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김치에는 김치국물, 깍두기에는 깍두기국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장국집에서 뜨거운 국물을 후룩후룩 마시면서 ‘어 시원하다’를 내뱉고, 설렁탕이나 곰탕집에서 ‘여기 깍두기국물 좀 더 주세요!’ 하는 말이 우렁차게 퍼지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염장식품에조차 국물은 중요하다. 그래서 쇠고기 장조림에도 장조림국물은 필요하고 간장게장에도 게장국물이 제대로 된 맛을 내야 게 껍질에 밥을 비벼서 먹어야 제 맛이 되지 않던가. 합리적으로 생각하자면 염장식품에는 국물이 없어야 하는데도 그렇다. 왜 우리의 입맛은 이렇게 국물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름만 들어서는 지극히 폭력적인 묵사발이라는 음식이 있다. 밥 위에 묵을 썰어서 올리고 거기에 송송 썬 김치를 얹어 물에 말아 먹는 음식이다. 팔당호수 기슭에는 이 묵사발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식당까지 있다. 이 집 묵사발도 맛의 비결은 묵이 아니라 말아 먹는 물, 바로 그 국물에 있다는 걸 찾는 손님들은 안다.
국물과 함께 우리 식문화를 버티고 있는 또 하나는 뜨거움이 아닌가 싶다. 뜨거움조차도 한국인에게는 맛이 된다. 다 먹을 때쯤에야 식는 것 그것이 한국의 뚝배기 음식의 특징이다. 혀를 댈 수 없이 펄펄 끓는 음식을 내오는 찌개를 앞접시에 덜어서 식혀가며 먹는 게 우리들의 식습관이 아니던가. 들일을 하러 나가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지 않는 게 한국인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도 왜 밭일을 나가면서 한국인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가지 않은 걸까. 그건 바로 국물과 뜨거움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 요즘 어디 있어? 하고 물으면 별 볼일 없는 한직으로 쫓겨 가 있는 친구를 두고 우리는 ‘으응 그 친구 요즘 찬밥신세야’하고 말하지 않는가. 찬밥은 밥도 아닌 것이다. 따끈따끈해야 한국인에게는 음식이다. 찬 것은 음식이 아닐 지경이다. 요즈음 농촌에서 쉽게 만나게 되는 것에 논둑길 밭둑길을 누비며 음식을 파는 소형 탑차가 있다. 이동식 식당이다. 따끈따끈하든 차갑든 일단 ‘국물’을 준비하고 비닐하우스가 대부분인 밭길을 누비면서 스피커를 울려댄다. ‘따끈따끈한 커피가 있어요. 시원한 냉면이 있어요.’
지난 날 한국의 농촌에서는 논밭이 멀지 않으니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었고,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아예 낮잠까지 자고 나가던 것이 우리의 농촌 일꾼들이었다. 많은 일꾼들이 밭에 나간 경우에는 여자들이 함지에 점심을 담아 날랐었다. 밥과 반찬을 인 여인이 앞장을 서면 그 뒤를 뜨끈한 국이 따라나서고 맨 뒤에는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땋은 딸아이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간다. 그 행렬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푼수 없이 껑충거리며 누런 강아지가 따라간다. 한여름 복날이면 없어질 게 뻔한 강아지 위를 노랑나비 한 마리가 너울거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뜨거운 음식과 국물의 조화는 그렇게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을 수놓던 우리들 봄날의 풍경이었다. 이제는 잃어버린 또 하나의 고향이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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