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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비블리오필리] 천재에게 갈채를
입력 : 2012.12.07 15: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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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 구름을 가장 만만(?)하게 본 글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인간이 구름을 만만하게 본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인간에게 구름은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구름은 그 생김새 때문에 설화나 신화의 주요 소재였고 문학과 예술의 상상력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에 불과한 구름이 인간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손으로 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름을 이성적이고 명확하게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의 일이다.
겨우 그 정도밖에 안됐냐며 웃을지 모르지만 당연한 일이다. 비행기가 발명되기 이전에 구름을 연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비행기 발명의 역사와 같은 궤도를 걸었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에 성공하기 100여년 전 쯤 구름의 정확한 속성을 진단한 과학자가 있었다. 루크 하워드(1772~1864)라는 영국의 과학자였다. 그의 삶을 소개한 책이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리처드 험블린, 사이언스북스)다. 그의 논문 ‘구름의 분류에 관하여’는 기상학 전체는 물론이고 인류 전체의 상상력에 한 획을 그었다. 하워드는 “구름은 수증기가 상승하면서 응결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한 술 더 떠서 그는 구름에도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외로웠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구름 분류법은 현대 분류법의 기본이 됐다. 그는 구름의 이름을 지으면서 다른 나라 학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라틴어 단어를 사용했다.
라틴어로 머리카락을 뜻하는 권운(Cirrus), 더미 또는 퇴적이라는 뜻의 적운(Cumulus), 층이나 판을 뜻하는 층운(Stratus) 등의 용어는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전 세계가 지금도 하워드가 명명한 이름을 쓰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요즘 들어 인간은 슈퍼컴퓨터와 복잡계 이론을 바탕으로 기상을 연구하고 있지만 구름에 관한한 하워드의 이론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의 이론은 노년에 접어들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그는 스타가 됐다. 그러나 하워드는 도무지 개인적인 조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구름이 주목을 받아야지, 왜 내가 주목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곤 했다. 역시 천재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천재 피카소의 울분피카소 ‘게르니카’
단 프랑크의 3권짜리 소설 <보엠>은 20세기 초 몽마르트르를 무대로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한 명의 키 작은 스페인출신 화가가 파리에 온다. ‘파블로 디에고 도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로 후안…’으로 시작하는 무려 열아홉 번이나 띄어쓰기를 해야 할 만큼 긴 이름을 가진 열아홉 살의 청년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서 맨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만을 뽑아 ‘파블로 피카소’라고 불렀다.
파리에 온 피카소는 다른 스페인 출신 화가들의 작업실과 방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훗날 그림으로 엄청난 부를 쌓아 올렸던 피카소도 이 시절 비참한 가난에 허덕였다.
어느 날 한 장사꾼이 피카소를 찾아왔다. 그는 피카소에게 그림을 700프랑에 사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나 싼 값을 부르자 피카소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 피카소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비타협적인 고집을 후회했다. 다음날 자기 발로 찾아온 피카소에게 장사꾼은 또 다시 값을 깎는다.
500프랑을 부른 것이다. 화가 난 피카소는 상점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도저히 방법이 없어 다시 상점을 찾았을 때는 300프랑으로 가격이 내려가 있었다. 결국 피카소는 300프랑에 그림을 팔았다.
그러나 피카소는 꿈까지 팔지는 않았다. 자기가 행하는 예술과 자기가 서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꿈은 결코 팔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예술은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부장·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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