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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미국 부동산시장 회복세, 우리도?
입력 : 2012.09.07 17: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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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부동산시장은 재정위기 확산, 구제금융 신청 증가, 국가·기업 및 금융기관의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 경기 재침체와 실업률 증가 등으로 인해 요즘 경착륙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상업용 부동산부터가 그렇다. 예컨대 스페인의 2분기 상업용 부동산 거래 건수는 3건, 이탈리아는 2건에 불과했다. 1분기 대비 거래 건수가 90% 이상 줄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 중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유럽만큼 위험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미국처럼 바닥을 친 것은 아니다. 어딘지 모를 바닥을 향해 계속 내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우리 부동산시장의 가격조정 폭은 그리 크지 않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는 3.3㎡당 2008년 9월의 최고점 대비 아직 7%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지역별·유형별·평형별 가격하락 폭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지방주택경기 활성화에 힘입어 상승세를 지속하던 전국 평균 주택 매매가격은 22개월 만에 처음으로 지난 7월에야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런데 하반기에는 국내 경제도 상반기보다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거시경제 여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유독 부동산경기만 호전되리라고 전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일 변수, 단일 지표로 지어낸 이야기 조심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대단히 많다. 100가지가 넘는다고 하면 과장일까? 경제성장률 실업률 소득수준 가계부채 금리 인구 정부 정책…. 이렇게 수많은 변수들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단일변수나 단일지표만으로 전망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가장 최근 것으로는 DTI 규제가 있다.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아흔아홉 가지 변수는 생략하고 DTI 규제 하나 때문에 부동산시장이 침체에 빠졌으니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DTI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식의 논리는 사회과학방법론에서 말하는 일종의 ‘사후적 설명(Ex Post Explanandum)’이다. 풀이 하자면 ‘나중에 지어낸 이야기’라는 뜻이다.
DTI 규제보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시세의 반값에 불과한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의 대량공급이 더 큰 부동산시장 침체 원인이 아니었던가? 물론 DTI 규제 자체가 전혀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수많은 변수 중에서 한 가지 변수의 중요성을 너무 과대 포장하는 것이 문제라는 뜻이다. 부동산시장을 전망할 때는 시장구조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수많은 변수의 상호작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수한 변수들 ‘객관적 수급상황 분석’이 중요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100가지나 된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 모든 변수들이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향후 1년 정도의 단기적인 전망을 하고자 한다면 ‘객관적인 수급상황 분석’을 강조하고 싶다.
공급 상황부터 보자. 주택은 거래량 감소와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공급물량이 늘고 있다. 국토해양부 통계를 보면 금년 상반기 주택인허가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3%, 착공 물량은 40.1%, 준공 물량은 15.8%, 분양 물량은 18.4% 늘었다. 오피스텔도 임대수익률의 감소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분양 물량은 작년 3.1만실에서 올해 4.0만실로 28.4%나 늘었다. 이처럼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공급만 늘어나면? 미분양 증가나 추가적인 가격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다.
수요는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심리가 공존하고 있지만 단기 전망을 하는 데는 KB국민은행에서 발표하는 주택매수/매도우위와 같은 소비자 태도조사 결과도 중요하다. 현재 수도권의 매수세는 거의 증발상태다. 지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수/매도우위 간 간격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한 부동산시장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급상황은 단기적인 관점에서만 볼 일은 아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인허가나 분양 물량과 같은 플로우(Flow) 변수만 볼 것이 아니라 주택보급률 같은 재고(Stock) 변수도 대단히 중요하다. 동일한 신규 공급물량도 재고량에 따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급과잉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분양이나 입주물량 자체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재고수준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일본식 장기불황은 남의 일? 우리는 일본과 다르다고 한다. 부동산시장은 버블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경착륙 가능성은 없다고 하면서 국민이나 정부·언론 대부분은 부동산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한다.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은 피해야 할 나쁜 것이고 연착륙이 바람직한 것일까? 미국은 2007년부터 경착륙을 겪었다. 그러다 만 5년이 되어가는 금년 상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버블붕괴 시점인 1992년부터 연평균 7%씩 지난 20년간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 일본은 20년간 연착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경착륙에 따른 단기적인 고통은 심각하다. 하지만 경착륙은 구조조정과 혁신의 계기가 된다. 경착륙이 이뤄지면 회복도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연착륙은 바닥에 도달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회복시기도 지연된다. 그렇다고 해서 경착륙을 하자고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그 와중에 고통 받을 일이 끔찍하기 때문이다.
금년 말에는 대선이 있고 내년 2월엔 새 정부가 출범한다. MB정부건 내년에 출범할 새 정부건 경착륙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과 언론도 대부분 부동산시장을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모두가 미국식이 아니라 일본식 해법을 더 선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본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재테크를 하는 개인이나 부동산 사업을 하는 기업은 이 같은 부동산시장의 구조와 전망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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