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연의 비블리오필리]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아픔 ‘디아스포라’

    입력 : 2012.09.07 17: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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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 일본 도쿄게이자이대학 법학부 교수인 서경식 씨는 재일조선인들의 처지를 루쉰의 글을 인용해 이렇게 비유한다. 여기서 ‘수레바퀴 자국’은 역사적 격변이 낳은 상처를 의미한다.

    ‘금붕어’는 식민지 시절 얼떨결에 일본으로 건너와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재일조선인 후손이다. 일본에서도 이방인이면서 고국으로부터는 잊혀 지고 있는 그들의 아픔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비유다.

    식민지배, 세계대전, 노예무역 등으로 인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나 그 후손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이처럼 타의에 의해 조국을 떠나 살아야 하는 유이민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디아스포라(Diaspora)’다. 서경식 교수의 책 제목도 <디아스포라 기행>이다. 원래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떠도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그러던 것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타의에 의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총칭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카레이스키, 광부나 간호사의 후손으로 독일에 살고 있는 수만 명의 코리안, 입양을 통해 세계 각지로 흩어진 입양아들 모두가 디아스포라다.

    얼마 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연합군의 포로가 된 독일군 중 한국인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나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갔고 러일전쟁 때 포로가 되면서 강제로 러시아 군복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다 다시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됐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 독일군복을 입고 총알받이로 최전선에 내몰렸을 것이다. 불과 60여년 전 있었던 일이다.

    잊기엔 너무나 무겁고 뜨끔한 역사다. 이제 디아스포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그것이 근대 국민 국가의 예의이자 책임이다.

    일본은 과연 반성을 했나 우리의 디아스포라 문제를 거론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제강점기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망했지만 아직도 건재하고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국왕이었던 히로히토는 1945년 8월 15일 떨리는 목소리로 ‘종전조서’를 읽는다.

    일본말을 잘 모르는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전역으로 방송된 이날의 ‘종전조서’의 내용은 패전을 시인하고 책임을 통감하는 위정자의 반성문이 아니었다. 종전조서의 행간을 읽어보면 매우 어이가 없다.

    전체 800자 정도 분량 조서는 궤변과 책임회피로 일관한다. 놀랍게도 이 조서 어디에도 ‘패전’이나 ‘전쟁 책임’이라는 단어는 언급되지도 않는다.

    히로히토의 종전조서를 분석한 책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했다>가 필자 눈길을 잡아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인이 쓴 책이라 더욱 놀랍다. 히로히토는 조서에서 전쟁을 일으킨 사실을 이런 식으로 둘러댄다. ※ 24호에서 계속... [허연 매일경제 문화부 부장대우·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4호(2012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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