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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④ Time and Art
입력 : 2012.06.01 17: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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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바꿀 수 있을까? 필자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네이틱(Natick)’이란 도시에서 목회한 경험이 있다. 백인 할머니만 60명 정도 모인 전형적인 미국교회에 취임하면서 교적부를 보니 1898년생 할머니가 계셨다. 이름은 에벌린 젠넬. 나이는 95세. 에벌린은 수요일이면 동네 할머니를 모아 포커를 치고, 핑크색 정장을 즐겨 입는 멋쟁이 할머니였다. 그 당시 필자는 미국대학에서 과목을 맡아 학부와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목요일이면 에벌린과 함께 양로원에서 요양 중인 교인들을 심방하곤 했다. 심방이라야 자식들도 잘 찾아오지 않는 노인들의 쌓인 이야기를 2~3시간 동안 듣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에 3명 정도, 6~9시간 동안 이들 삶의 이야기를 들은 게 내가 받은 최고의 교육이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매세추세츠 주 1월, 한밤중에 네이틱 시립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에벌린이 응급실에서 날 찾는다는 전화였다. 병원으로 가니 가족들이 많이 와있었다. 거의 100년 동안 사용한 심장이 멈출 때가 된 것이다. 에벌린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심장박동기를 넣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에벌린은 가족을 다 내보낸 후, 나에게 난처한 부탁을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신의 은총으로 건강하게 살았고 직계가족만으로도 3번 결혼을 통해 100명 가까이 된다며, 수술을 받지 않을 예정이니 이대로 하늘나라에 갈수 있도록 가족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에벌린에게 무엇을 조언할 수 있을까? 나는 다음날 에벌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벌린, 당신의 삶은 양로원에서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삶을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 후 에벌린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필자가 그 교회를 떠난 후에도 100세까지 심방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이런 에벌린의 결정과 삶을 ‘예술’이라 부르고 싶다.
일상적인 순간이 특별한 순간, 신이 개입하는 순간으로 만드는 솜씨를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을 뜻하는 영어단어 ‘Art’는 아주 오래된 유럽어 어근 ‘르타(*rta-)’에서 유래했다. 서양문헌 중 가장 오래된 문헌 중에 하나인 힌두교의 베다(Veda)에 등장하는 르타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작동을 지배하고 조절하는 자연 질서의 원칙’이다. 르타는 자연과 사회의 도덕, 그리고 의례가 바르게 작동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의례, 예배’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ritual(라틴어 ritus)’는 ‘일정한 생각, 말, 행동을 통해 우주의 원칙을 회복하는 시도’이다.
르타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명령들을 ‘다르마(Dharma)’라고 하며, 개인에 주어진 명령을 ‘카르마(Karma)’라고 한다. ‘아트’란 시공간에 갇혀있는 유한한 인간에게 그것을 초월해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最善)을 선택하고 추구해 ‘영원’을 만들려는 솜씨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자를 ‘아티스트’라고 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삶의 최선을 알려고 노력하고, 보통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서슴지 않고 행하기에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도록 유도하고 전염시킨다.
기원전 4세기,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다.
“Vita brevis, ars longa,
occasio praeceps experimentum periculosum,
iudicium difficile.”
이 라틴어의 문장을 번역하면,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금방 사라지고 경험은 위험이며,
판단은 어렵다.”
우리가 걸어온 지난날을 잠시 생각해보자. 히포크라테스의 말대로 그것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순간을 영원으로 멋있게 만든 예술가들을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성인들은 모두 우주의 소리를 ‘귀(耳)’로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주위사람들에게 ‘입(口)’으로 전하고,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壬)’ 사람들이다. 오늘 나만의 시간을 내서 우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
서울대 배철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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