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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플로렌틴 다이아몬드의 귀환
입력 : 2025.12.02 18: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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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틴 다이아몬드 유럽에는 오래 전부터 묘한 이야기가 떠돌았다. “플로렌틴 다이아몬드가 새로운 주인을 맞는 순간, 그 가문은 내리막을 향한다.”
137.27캐럿의 이 거대한 옐로 다이아몬드는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을 거쳐 합스부르크 제국의 왕관을 장식하며 유럽의 역사를 관통했다. 소유주들이 하나씩 몰락하면서 저주 이야기는 더욱 견고해졌다. 1918년,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와 함께 빈을 떠난 뒤 다이아몬드는 완전히 흔적을 감췄다. 도난? 재연마? 하인이 훔쳐 남미로 도주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소설가들은 미스터리 소재로 삼았고, 보석 역사가들은 행방을 추적했다. 하지만 진실은 소문보다 더 기묘했다. 다이아몬드는 실종된 적이 없었고, 퀘벡의 은행 금고 안에서 조용히 100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옛 제국의 다이아몬드가 살아남은 방식1940년, 나치의 공습을 피해 유럽을 떠난 지타 황후는 8명의 자녀와 함께 캐나다 퀘벡에 도착했다. 작은 여행 가방 속에는 가문의 주얼리와 보석 몇 점이 들어 있었다. 황후는 곧장 은행으로 향해 금고에 보석을 맡기고 두 아들에게만 행방을 알렸다. 남편 카를 1세의 사망(1922년) 후 100년간 비밀을 지키라는 당부였다. 두 세대 동안 비밀은 지켜졌다. 2025년 11월, 온 가족이 퀘벡 은행 금고 앞에 모였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궁정 보석상 후손 크리스토프 쾨헤르트가 누렇게 바랜 종이를 풀어 보석을 하나씩 꺼내는 순간, 플로렌틴 다이아몬드는 완벽한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옅은 노란색, 촛불 시대의 미감을 담은 더블 로즈 컷까지 그대로였다. 동시대 보석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색은 전쟁과 망명, 제국의 잔해를 건너온 시간의 색처럼 보였다. 옐로 다이아몬드는 오늘날 ‘접근 가능한’ 컬러 다이아몬드로 분류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는 달랐다. 태양을 닮은 금빛은 권력과 신성의 상징이었다. 촛불 아래에서 로즈 컷은 빛을 부드럽게 확산시키며 제국의 황금 장식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현대의 브릴리언트 컷이 빛을 날카롭게 반사한다면 로즈 컷은 은은한 광채를 만들어낸다. 플로렌틴은 제국의 미학이었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들2025년 10월, 루브르 아폴론 갤러리에서 보석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플로렌틴 발견 뉴스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두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전쟁과 혁명, 정권 교체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문화유산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유럽 왕실 보석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 터질 때마다 가장 먼저 이동하는 것이 보석이었다.
그림은 벽에 걸려 있고 조각은 무겁지만 보석은 작은 가방 하나에 담긴다. 사라지기도 그만큼 쉬웠다. 러시아 제국의 보석들은 혁명 후 대부분 흔적을 감췄다.
프랑스 왕실의 다이아몬드 중 일부는 지금도 행방을 알 수 없다. 기록이 소홀하면 존재 자체가 흐려진다. 국가 박물관도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고(루브르 사건에서 보듯이), 가족 내에서 보관해도 팔리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다.
플로렌틴이 100년 동안 퀘벡 금고에서 무사했던 것은 지타 황후 한 사람의 결단과 그 결단을 3대에 걸쳐 지켜낸 가족들의 실행력 덕분이었다.
카를 1세와 지타 황후 제도가 무너진 시대에 문화유산의 생존은 때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왕실·역사적 보석의 귀속 문제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사라진 보석들에 대한 아쉬움이 커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 시대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보석은 미술품보다 훨씬 쉽게 사라지고, 한 번 사라지면 그 공백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플로렌틴의 행방을 찾았지만, 소장이나 감상이 목적은 아니었다. 사라진 유산을 되찾고 그 시대를 다시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석이 품은 시간·권력·문화적 기록을 어디에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플로렌틴의 재등장이 남긴 질문이다. 보석은 시장이 가격을 매긴다. 희소성과 크기가 경제적 가치를 결정한다.
그러나 제국과 인물, 시대의 정치적 흐름과 연결되는 순간부터 그 가치는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한다.
한 왕조의 찬란함과 몰락이 작은 보석 하나에 모두 새겨질 때 보석은 상징이자 기록이고 역사 그 자체가 된다. ‘누가 소유할 것인가’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존할 것인가’‘다. 플로렌틴의 귀환은 우리가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 보석은 아름다운 물건이기 전에 실물 기록이다. 인간의 선택과 정치, 문화, 권력의 흐름이 그 안에 응축되어 있다. 그런 기록이 사라지면 시대를 읽는 능력도 함께 사라진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00년 동안 퀘벡 은행 금고에 보관했던 보석을 캐나다에 남기고 전시하기로 했다. 망명지에서 황후가 찾았던 안전과 존엄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