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권의 뒤땅 담화] 골프 접대, 이렇게 하면 역효과

    입력 : 2025.08.25 10:00:22

  • 한 외국 경영 잡지가 CEO 40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97%가 골프를 중요한 사업 수단이라고 응답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접대 수단인데, 요점은 제대로 아부하라는 것이다. 예전에 삼성경제연구소(현 삼성글로벌리서치)도 골프장에서 효과적으로 아부하는 4가지 비법을 소개한 적 있다. 요즘 삼성그룹 임원은 특별한 경우를 빼곤 회사 돈으로 골프 접대를 못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골프만한 비즈니스 접대 수단이 없었다. 첫 번째 비법은 맞춤형 아부이다. 상대 특징을 파악해 미사일 요법으로 마음을 홀린다. 가령 얼굴이 예쁜 파트너에게 “지적으로 보인다”고 띄우면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가 나오는 격이다. 두 번째, 지나친 아부는 금물이다. 샷을 띄워주려면 여러 번이 아니라 한 라운드에 한 번 정도 큰 칭찬이 더 위력적이다. 다음으로 3막 4장 연출력이다.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직접 본론을 꺼내지 말고 시야를 길게 가져야 한다. 취미나 날씨 같은 가벼운 소재로 시작해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서서히 본론에 접근한다. 마지막으로 최소한 골프 기본기는 돼 있어야 한다. 접대 골프는 상대와 보조를 맞출 정도의 기본 실력을 전제로 한다.

    세심하고 정중하게 골프로 접대하려면 유의할 점이 더욱 많다. 그렇지 않으면 접대하고도 역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사전에 상대방 선호를 파악해 미리 준비한다. 골프장 가는 동선도 파악해 겹친다면 카풀을 제의해서 집까지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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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 전후 식사 여부도 미리 상의한다. 취향에 따라 두 끼 보다 라운드를 돌고 한 끼 정도만 함께 하려는 골퍼도 있다. 상대가 맛집을 선택할 수 있도록 미리 몇 군데를 알아둔다. 따로 골프장에 간다면 미리 1시간 전에 도착한다. 여유가 있다면 체크인하고 로커 번호표까지 뽑아 프런트에서 대기한다.

    라운드 시작 전에 골프볼이나 티, 마커 등을 준비하면 진지한 분위기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여러 소품보다는 간소하게 준비한다. 골프 복장은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무채색의 정중한 톤이 무난하다. 너무 원색이거나 헐렁한 패션으로 필드의 패션 테러리스트 이미지를 풍기면 곤란하다.

    접대하려는 사람에겐 카트 앞 좌석을 배려한다. 골프 카트의 일등석은 앞 좌석이다. 초청자가 골프장 회원일지라도 이런 경우엔 양보한다. 기량은 숨김없이 발휘한다. 차이가 나면 핸디캡으로 공평하게 조정하고 노골적으로 져주면 거부 반응을 초래한다. 진지하게 골프에 임하면서 매너를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면 실력 차이는 부차적이다. 과하지만 않는다면 상대를 위해 캐디에게 멀리건을 요청하고 그린에서 적절한 컨시드도 효과적이다. 남발하면 곤란하다. 상대 긴장을 풀어준다는 차원에서 첫 티샷은 초청자가 자처하는 것도 센스다. 첫 티샷은 늘 불안과 설렘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내기는 상대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분위기를 파악해서 부담 주지 않고 조심스레 제의한다. 워낙 실력 차이가 나면 내기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라운드를 돌면서 상대가 명랑 골프를 지향하는지 진지한 분위기인지 판단해 그에 맞추면 된다. 너무 본인 취향대로 몰고 가면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매너는 필수다. 특히 처음 접대하는 상대에게는 매너가 강렬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밑바닥 감정을 노출시키거나 캐디 탓을 하면 그날 접대 골프는 물 건너간다. 접대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골프 규칙도 준수한다. 수시로 볼을 터치하거나 본인의 미스 샷이나 퍼트 실수 후에 그 자리에서 연속 시도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골프 실력이 아니라 매너를 보고 상대가 나를 판단한다는 점에 유념한다.

    OB나 패널티 구역에서 벌타도 정확하게 따른다. 상대에게는 관대해도 되지만 셀프 멀리건이나 컨시드는 금물이다. ‘매너가 핸디캡이 되지 않도록 하라(Don’t let your manners be your handicap)’는 의미다.

    그늘 집에서 음주는 초청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너무 술판을 벌이면 모양새가 별로다. 내가 비용을 댄다고 해서 독재자처럼 굴면 다음 초청에는 응하지 않는다. 슬로우 플레이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상대가 고수이거나 신속한 진행자라면 나의 진행 속도를 체크해 상대에게 보조를 맞춰야 한다. 각종 설문조사를 통틀어 가장 피하고 싶은 유형은 언제나 느림보 골퍼다. 평소 본인 진행 속도가 어떤지에 대해 가까운 지인에게 체크해 놓는 것도 방법이다. 본인이 느림보라는 사실을 아는 골퍼는 드물다. 내기가 걸렸다면 18홀을 돌고 가능하면 딴 돈의 일정 부분을 돌려준다. 상대가 극구 사양하면 캐디피나 식사비에 더하면 된다. 여력이 있으면 골프를 끝내고 과일이나 쌀 같은 선물을 제공하고, 상대가 원하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 음주를 권하고 싶으면 대리기사 제공을 미리 염두에 둔다.

    언젠가 필자가 극구 사양했음에도 상대가 술판을 벌여 놓고 나 몰라라 해서 황당했다. 본인의 거주지는 충청도였지만 필자는 대리 기사비 15만원을 물고 서울로 올라왔다. 접대 골프도 일종의 작전이다. 이왕 돈을 들여 하려면 세심하게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식사 자리에서도 상대방이 비즈니스 얘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접대 목적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오늘 라운드 목적은 관계 구축이지 계약체결이 아니다. 동반자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유쾌하고 기억에 남는 라운드가 되도록 한다. 귀가해서는 문자나 이메일로 감사 마음을 전한다. 접대는 예(禮)와 경(敬)으로 상대를 대하는 절차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 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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