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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회 칼럼] 협박의 기술
입력 : 2025.03.25 10: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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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대국 한계 드러낸 ‘협박의 기술’
美 게임 규칙 파괴에 동맹도 불안감
특정국 의존 줄여 관계 다변화 시급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문을 닫고 개를 때린다(관문타구: 關門打狗)”
요즘 중국에서 자주 회자되는 표현이다. 당국이 투자를 유치할 때엔 인센티브를 미끼로 내걸었다가 온갖 핑계로 약속을 어기고 기업을 옥죄는 행태를 빗댄다. 지방정부가 투자기업의 재산을 편법으로 빼앗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심심찮아 도는 말이다. 합작투자한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섣불리 투자하긴 곤란할 터다.
문을 닫고 두들겨 패는 게 중국만의 일은 아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 뒤 미국 상황도 복잡해졌다. 직전 바이든 정부의 지원책을 믿고 줄줄이 투자를 결정한 외국 기업들은 바뀐 트럼프 방식 앞에서 난감한 처지로 몰렸다. 투자한 뒤에 문이 닫히고 영락없이 맞을 일만 남았다는 우려가 크다. 안들어가면 굶어 죽겠고 들어가면 뼈도 못추릴테니 앞이 캄캄하다.
그나마 중국은 감언이설과 인센티브로 외국 기업을 유혹하는데 트럼프의 미국은 줬던 걸 도로 뺏겠다며 압박하는 형국이다.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은 이런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국가 최고위급 협상이라기보다 일방적 압박과 모욕이 난무한 자리였다. 현장에서 라이브로 전해진 모습은 충격이었다. 오죽했으면 영상을 패러디해서 두 대통령이 육탄전을 펼치는 ‘짤’까지 돌아다닐까.
백악관 회담은 그야말로 비대칭 게임의 극치였다. 젤렌스키는 협상 카드를 꺼내기도 전에 트럼프에게 “당신은 쓸 카드가 없다”고 면박 당했다. 상대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트럼프식 협상의 전형적 구조다. 퇴로를 막고 몰아붙이니 젤렌스키는 강하게 반발했고 미국에겐 신뢰를 깎는 자충수가 됐다.
문을 닫아 걸고 때리는 전략은 전쟁이나 비즈니스에선 효과적이다. 상대를 포위해 섬멸하거나 시장을 장악하는 게 가능하니까. 하지만 정치·외교 협상에선 통하지 않는다. 약한 상대라도 선택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하긴 힘들어서다. 손자병법 군쟁 편에는 “포위한 적에게는 반드시 퇴로를 열어주라(위사필궐 : 圍師必闕)는 구절이 있다. 퇴로가 끊긴 적은 죽기살기로 저항하니 역효과를 낸다는 것. 젤렌스키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비근한 예다. 탈출구를 열어 둬 도망치게 한 뒤에 전의를 상실한 적을 제압하는게 상책이란 얘기다.
지난번 게임에선 젤렌스키가 무릎을 꿇었지만 트럼프가 완벽하게 이겼다고 보기도 힘들다. 앞으로 미국의 지원은 거래 조건으로 치환될 테고 협상이 아닌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에겐 반면교사다. 미국이 언제든 지원을 철회해 같은 처지에 놓일지 모른다. 최소한 트럼프 집권 4년간 미국 정부의 모든 행위는 거래의 일부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최대한 맞추되 관계 다변화 전략이 시급하다. 동맹을 해체하지 않는 선에서 과도한 의존을 낮추고 상호이익에 기반해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신속 대응해야 한다. 미사일 방어체계, 첨단무기 개발을 가속해 독자적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도 선택이 아닌 필수다. EU·일본과의 협력뿐 아니라 중국·러시아 관계도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