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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화가 조영남, 끝없는 도전 재미니스트의 ‘쇼펜하우어’로의 귀환
입력 : 2025.03.17 17: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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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어느날, 화가이자 가수인 조영남은 지금도 매일 캔버스 앞에 앉아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다. 기자가 찾은 그의 자택은 ‘갤러리’ 혹은 ‘창고’라 불러도 과하지 않을 만큼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거실의 흔적은 찾기 힘들 정도로 작품이 가득 채우고 있었고, 벽면뿐 아니라 바닥부터 천장까지 그야말로 ‘미술 작업실 겸 전시장’이었다.
그는 불과 몇 해 전, ‘대작 논란’으로 법적 공방을 겪으며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이했으나, 2020년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지금은 더욱 왕성하게 붓을 들고 있다. 그런 그의 일상에는 몇 가지 고정된 습관이 있다. 생존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자정이 넘는 시간에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꼭 책 한두 줄이라도 읽는다. 최근에는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한 책 『쇼펜하우어 플러스』를 출간해 인문·철학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가수 생활을 하며 수십 년간 꾸준히 음악 무대에 섰고, 동시에 미술계에서는 화투나 악보·초가집 등 익숙한 소재를 대담하게 화면에 배치해 ‘팝아티스트’로 자리잡은 조영남. 그는 “팝 음악과 팝아트, 두 가지 영역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스스로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 계속했을 뿐”이라 말한다. 특히 오는 봄, 서울 시내 복합 문화공간에서 일반 대중들을 만나는 대규모 전시를 앞두고 있다. 전시에 맞춰 예정된 특별 콘서트와 작가와의 만남 등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이벤트도 예고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과거 대작 논란부터 새로 개최되는 전시의 기획 의도, 그리고 쇼펜하우어 책을 쓰게 된 배경까지 솔직하고도 유쾌한 입담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그 대담 중 주요 대목을 지면에 옮긴다.
조영남 가수 겸 화가 “음악과 미술” 예술이 된 취미조영남의 예술 세계는 일찍부터 두 갈래의 길을 함께 달려왔다. 가수이자 그림 그리는 예술가라는 ‘이중직업’은 그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다. 어려서는 초등학교에서 미술반장, 고교 시절엔 미술부장을 맡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미대를 나오지는 않았다. 대학에서는 성악을 전공하며 음악 무대에 먼저 발을 디딘 것이다.
“미술을 전공하려면 물감이며 캔버스며 돈이 많이 들 것 같았어요. 음악은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되니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들겠다 싶었죠. 그렇게 시작된 음악 활동은 어느새 제 ‘생업’이 됐고, 생업이니만큼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피처이자 놀이 삼아 다시 붓을 잡았는데, 그게 결국 이렇게까지 이어졌네요.
그는 자신을 ‘재미니스트’라고 부른다. 어떤 작가적 목표나 “생전 그림을 1000점 완성하겠다” 따위의 엄격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재미있는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됐다”는 식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났을 때마다 그는 한결같이 붓을 들었다.
“낚시꾼이 낚시가 좋아서 매일 물가에 가듯,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특별히 ‘영감’을 찾아 헤매기 보다, ‘이미 영감’ 상태에 있달까요? 이것저것 건드리며,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입니다.”
대작 논란과 소송 “가족 소중함 알게 된 경험”조영남 하면 떠오르는 대표 꼬리표 중 하나가 ‘대작 논란’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조수를 고용해 그린 작품을 본인의 이름으로 전시·판매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2016년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 무죄, 그리고 2020년 최종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6년가량 이어진 재판 기간 동안 그는 상당한 재정·심리적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제가 1심에서 유죄를 받았을 때, TV에 나가 해명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해명이 결국은 ‘조수를 원망하는’ 모양새가 될까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저는 굳이 반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왜 이렇게 무대응이냐, 억울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그래도 한때 저를 형이라고 따르던 친구를 공개적으로 ‘나쁜 놈, 사기꾼’이라 불러가며 또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죠.”
그러다 2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그 결론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판결이 나기 전, 그는 이미 팔린 그림을 “불만 있는 구매자가 있다면 전부 환불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 탓에 20여 점이 넘는 환불 요청이 쇄도했고, 그는 말 그대로 “아파트 하나만 겨우 건진 채”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방송에서 괜히 말을 뱉었죠.(웃음) ‘혹시 내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면 전부 사간 금액 그대로 돌려드리겠다’고. 그걸 듣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환불을 요구하셨습니다. 처음 팔 때, 예를 들어 갤러리가 100만 원에 팔면, 제 몫은 50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환불로는 100만원 전부를 제가 물어줘야 했죠.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털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참 “방정맞았다”며 웃었지만, 한순간의 결단으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평소 소극적이고 세상물정 모른다고 생각했던 딸이 주도적으로 사건해결에 나서며 “내 딸이 이렇게까지 믿음직스러웠나”하고 크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공연과 함께하는 전시회올봄 조영남은 서울 롯데월드타워 다이버홀에서 대형 전시를 연다. 이번에는 “조영남의 미술을 모르는 대중들이 우연히 지나가다 들어올 수 있는 장소에서 전시를 하고싶다”는 바람에 따라 열린 공간을 택했다. “일반 갤러리에선 보통 갤러리나 작가 측이 초청한 특정 관람객들이 오잖아요. 하지만 복합 쇼핑몰처럼 무작위로 오고 가는 분들 앞에서 전시를 여는 건 또 다른 도전입니다. 그분들이 그림을 보고 ‘어, 이거 조영남 작품이었어?’ 하고 놀라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전시인 줄도 모르고 들어오다가 관심을 갖고 살펴볼 수도 있겠죠. 그런 아주 자연스러운 만남이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전엔 저를 ‘가수로 알고 온 관람객’이 ‘왜 노래를 안 하냐?’고 물어볼 때, ‘이건 미술 행사야. 난 그림을 그리러 왔다’고 딱 잘라 말했어요. 지금은 그럴 이유가 뭐 있나 싶습니다. 이제는 아주 즐겁게 제 노래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내 그림만’ 보러 오신 분도 있고, 혹시 ‘조영남 노래나 듣자’하며 발길 멈춘 분들도 계실 텐데, 전 둘 다 환영이죠.”
쇼펜하우어를 만나다 : “결국 즐겁게 살아야 한다”최근에 낸 책 제목은 『쇼펜하우어 플러스』다. 앞서 그는『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등을 펴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책은 철학 이야기에 가깝다. 그는 “원래는 출판사에서 ‘조영남 자서전’을 제안했는데, 그건 좀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서점가에서 ‘쇼펜하우어’가 뜨고 있길래 책 여덟 권을 사서 읽다가 매료됐다”고 한다.
“니체나 키르케고르가 좋아하는 ‘실존 철학’ 쪽에 원래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쇼펜하우어야말로 니체나 키르케고르의 ‘선배’더라고요. 워낙 방대한 철학서를 썼는데, 또 다른 저작에선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일상의 생활 지침을 적어놓았죠. 구체적인 예시가 엄청 많아요. 일반인도 착착 이해할 수 있게 써줘서, ‘이분이 진짜 대단하다!’ 하고 느꼈죠.”
그는 특히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원수(나를 모욕한 사람)를 대하는 법’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모욕하는 사람을m 당장 같이 모욕하며 되받아칠 게 아니라,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더 나아가 친구가 될 수도 있음을 배려하라”는 내용인데, 그가 조수의 배신 논란에서 “굳이 반론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던” 계기가 사실상 쇼펜하우어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했다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반씩 온다고 하잖아요. 한때 방송에 나가면 반짝반짝했던 시절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재판으로 고생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저를 ‘제일 많이’ 도와준 건 책이었어요. 일례로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원래 고달픈 것’이라고 전제하고, 여기서 어떻게 더 나은 길을 찾을지를 세세히 적어놓았거든요. 저는 다 읽고 ‘이거 참 괜찮다. 내가 해왔던 생활 태도와도 묘하게 맞닿는다’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매 장(章)마다 풀어놓았다. “여타 철학 해설서는 어렵게, 아니면 남의 인용구로만 가득 찼지만, 저는 그냥 내 얘기를 덧붙였어요. ‘조영남은 이렇게 살았는데, 쇼펜하우어 말대로 해보니 꽤 괜찮더라’ 하는 식이죠.” 출간 후 반응도 좋고, 판매도 꽤 잘 된다고 뿌듯해한다.
이혼은 가장 큰 후회 “딸이 다시 나를 살렸다”그는 오래전에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다. 최근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가장 큰 후회 중 하나가 ‘아이들이 있는 집을 왜 나와 버렸을까’라는 점”이라며, 젊은 시절의 경솔함을 회고했다. 자식들이 자라는 와중에 부모의 이혼은 커다란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딸과는 아주 잘 지내지만, 그 아픔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라고. “젊으면 몰라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유명해졌는지,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죠. 저는 그저 내키는 대로 했고, ‘우선 집에서 나오자’고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애들이 집에 남아 있다는 걸 왜 그땐 안 떠올렸을까, 이런 자책이 드는 거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작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딸이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스스로 “딸바보가 따로 없다. 종종 딸이 잔소리하면 쩔쩔맨다”고 말할 정도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국내 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조영남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아직도 배우는 중”이라 말한다. 후배 뮤지션들과의 협업, 젊은 작가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화개장톡>을 개설해, 지인 혹은 전혀 새로운 사람들과 ‘스튜디오’가 아닌, 일상 공간에서 만나 자유롭게 대담을 나누는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영상 시대에, 뭐 그동안의 예능 방송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소통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조영남’이라는 이름 석 자를,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는 분들도 많겠지만, 유튜브에 오시면 그 편견이 조금 깨지리라 생각해요. 화투 그림이고 쇼펜하우어 이야기고, 가끔 대작 논란까지, 숨김없이 다루는 채널이 될 겁니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4호 (2025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