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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의 사례로 풀어보는 세금 이야기] 사해행위 취소와 증여세
입력 : 2024.12.20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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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는 철수로부터 가상자산 투자를 권유받고 철수에게 5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철수는 약속과 달리 영희로부터 받은 돈으로 아파트를 매수해 아들에게 증여했다. 철수 아들은 과세관청에 증여세로 약 1억원을 납부했다.
철수의 거짓말을 알게 된 영희는 철수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해 승소했지만, 철수 명의로 된 재산이 없어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영희는 철수 아들을 상대로 아파트 증여계약이 사해행위로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채권자취소 및 원상회복의 소를 제기했고, 이에 철수 아들은 증여계약이 사해행위로 취소되더라도 자신이 납부한 증여세 약 1억원은 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권자취소권이란채권자로부터의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재산을 친인척 등 제3자에게 넘기는 사람이 있다. 이때 채권자가 제3자에게 넘어간 재산을 다시 채무자 명의로 되돌려 강제집행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채권자취소권(민법 제406조)이다.
사례에서 철수는 아들과 아파트 증여계약을 체결하고, 아들에게 아파트를 넘겼다. 여기서 철수를 ‘채무자’라고 부르고, 철수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을 증여하여 영희와 같은 채권자들을 해하는 행위를 ‘사해행위’라고 하며, 그 사해행위를 통해 이익을 본 아들을 ‘수익자’라고 한다. 원래 증여계약의 유무효는 원칙적으로 증여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영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사례와 같이 철수가 채무 초과 상태에서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을 아들에게 증여하는 사해행위는 증여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채권자들이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여 취소시킬 수 있다.
영희(채권자)가 철수 아들(수익자)을 상대로 한 채권자취소의 소에서 승소확정판결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영희는 철수 아들 명의로 등기된 아파트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여 아파트의 등기 명의를 철수(채무자)로 회복시킨 후 아파트를 경매에 부칠 수 있다.
철수와 철수 아들의 증여계약이 사해행위를 이유로 취소되고 그 결과 철수 아들이 아파트를 잃게 된다면, 철수 아들은 국가에 납부한 증여세 약 1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증여받은 재산을 모두 잃게 되었음에도 그대로 증여세를 납부하게 하는 것은 납세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거나 채권자취소 판결의 확정은 사해행위에 내재된 경제적 이익의 상실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에 해당한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로부터 증여세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현재 과세실무 및 법원 판결은 증여행위가 사해행위로 취소되더라도, 이는 채권자와 수익자인 수증자 사이에서 해당 재산을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위하여 채무자의 책임재산으로 환원시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증여세를 돌려받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증여계약이 사해행위로 취소되어 아파트의 등기 명의가 철수에게 회복되더라도 그 아파트가 경매절차에서 매각되기 전까지는 아들이 아파트에 관한 재산세 납세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 판례이다(대법원 2000. 12. 8. 선고 98두11458 판결).
철수 아들은 철수와의 증여계약이 취소되고, 그에 따라 아파트의 소유권을 잃게 되더라도 당초 증여계약에 따라 납부한 증여세를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철수 아들은 영희에게 사해행위 취소에 따른 원상회복으로 아파트를 반환할 때 국가에 납부한 증여세 1억원을 공제한 나머지만 반환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공제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이다(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3 다40286 판결).
사해행위와 수익자즉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해행위가 취소되더라도 사해 행위에 따라 발생한 증여세, 재산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 수익자(철수 아들)의 기존 납세의무는 소멸하지 않는다. 또한 수익자(철수 아들)는 채권자(영희)에게 자신이 기납부한 세금을 공제한 나머지만 반환하겠다는 주장도 할 수 없다. 민사적 법률관계만 놓고 보면, 채무자(철수)의 사해행위에 가담한 철수 아들(수익자)는 사해행위 취소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세금까지 고려하면 수익자가 받게 되는 불이익은 적지 않다. 채무자의 사해행위에 가담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부장판사)에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