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칼럼] 질서 있는 탄소중립

    입력 : 2022.10.27 10:13:27

  • 사진설명
    어릴 적 김일의 레슬링 시합이 있는 날이면 동네에서 TV가 있는 한두 집에 모두 몰려가 다같이 TV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수돗물 나오는 집들도 많지 않아 공동수돗가에 한참을 줄을 서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당시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한 집 한 등 끄기 운동이었다. 전기가 부족했던 1960년대 얘기다.

    그런데, 우리의 못살던 60년 전 모습이 연상되는 일들이 지금 유럽 선진국들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국은 외출 시 난방 끄기, 보일러 온도 낮추기 등 에너지 절약 운동을 벌이고 있고 프랑스에선 기름을 사기 위해 주유소에 긴 줄이 늘어섰다. 북구에선 전기료와 난방비가 급등하면서 가정용 전기요금에까지 피크타임 할증이 붙고 관광명소는 이른 저녁부터 암흑도시가 됐다.

    불과 1년 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약 200여 개국이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에 합의했다. 당시만 해도 탄소중립으로의 피버팅(pivoting)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고, 우리가 살 길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자원무기화로 유럽발 에너지 대란이 가시화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전 세계가 반환경과 각자도생의 국가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 독일은 탈원전에서 유턴하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전 세계에 탈원전 선언을 잇따르게 했던 일본조차도 전력난에 원전 재가동은 물론 새로 건설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확보가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보다 더 시급하다는 인식이 탄소중립에서 에너지 안보로 국면 전환을 야기했다. 미래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당장의 생활고가 더 힘든 까닭이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폐기하고 원전으로 회기하는 듯 보이지만, 인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것이 탄소중립임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현재까지는 대실패다.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가 당장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상황에서, 정부가 오로지 재생에너지만 옳고, 원전과 해외 자원 개발은 악으로 몰아세우며 관련 산업을 단번에 죽여버렸다. 종사자들도 인재도 사라졌다. 올인했던 재생에너지 개발은 큰 진전을 보지 못했고 월성원전 조기폐쇄로 7천여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다른 4기 비용까지 추가하면 어마어마한 손실인데, 이걸 모두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실정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 90%가 넘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질서 있는 탈원전’이 필요하고, 동시에 해외 자원도 개발해서 다양한 에너지 확보 루트를 조성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그동안 한국 경제를 먹여살려온 원전기술이 수출 산업으로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고, 원전 종사자와 산업 관련자들도 무리 없이 업종 전환을 하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전체를 보고 조율해서 피버팅하는 산업정책이 필요한 이유이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올겨울 우리는 혹독한 겨울을 맞을 예정이다. 이제라도, 전방위로 고민해서 에너지 정책을 제대로 다시 세워야 할 일이다. 국민들의 일상이 60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말이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