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문화예술 클러스터로 변신 중인 베를린
입력 : 2022.10.12 15:43:19
-
카셀 도큐멘타와 베를린비엔날레를 돌아본다는 핑계로 독일에 다녀왔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 통독 이후 1999년부터 야심차게 준비해 진행 중인 문화예술 클러스터의 상징 같은 박물관섬의 대개조, 보수 공사와 서베를린 지역의 문화 클러스터인 쿨투르 포럼의 대수선계획의 호기심 때문에 코로나19를 거스르고 길을 나섰다.
독일의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수하고 보존하는 태도와 기술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시간에 쫓기지도, 무리도 하지 않고 부자재나 도면이 남아있는 경우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Reconstruction)하고, 근거가 부족하거나 유실된 부분은 동시대의 가치관과 기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오늘’이란 ‘시간의 켜’를 덧입혀 창조적으로 재현(Reappe aring)한다. 기본적으로 ‘복원’이 대상의 원형에 집중해 되돌리는 것이라면, ‘재현’은 ‘대상을 다시 있게 하는 것’에 집중하는 재창조에 가깝다.
베를린의 역사적이며 상징적인 문화예술 클러스터인 박물관섬은 1830년부터 1930년까지 약 100년 동안 프로이센의 왕명에 따라 구박물관(1830년), 신박물관(1859년), 구국립미술관(1876년), 보데박물관(1904년), 페르가몬박물관(1930년) 등 5개관이 건설되었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많이 파괴되고, 신박물관은 폐허나 다름없어졌다. 이후 분단과 함께 동베를린에 편입되고 경제난으로 방치된 것을 통독 후 10여 년간 논의 끝에 재건계획을 세우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또 각각의 박물관은 성격을 재정의해 유물을 재배치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2001년 구국립미술관이 먼저 재건되어 개관하고 이어 2005년 보데박물관, 2009년 신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도 페르가몬과 구박물관은 공사 중이다. 2019년 7월에는 ‘네페르티티 흉상’을 기증한 제임스 사이먼(1851~1932년)의 이름을 딴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박물관섬 재건 프로젝트는 신박물관 재건 프로젝트의 건축가로 선정된 치퍼필드(1953년~ )가 12년 동안 자신의 ‘상호보완적 회복’이라는 개념으로 당국과 시민을 설득한 끝에 총괄건축가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3면은 바로크양식으로, 1면은 창조적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해 오늘이란 시간의 켜를 덧대어 복원한 훔볼트포럼.
궁을 재건해 범세계적인 문화·예술·학문의 중심기능을 수행하는 ‘훔볼트 포럼’이 출범되는 안으로 외형 복원뿐만 아니라 19세기 초 훔볼트 형제의 이상인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공간 건설의 정신을 복원하기로 했다. 형제는 대학과 박물관, 도서관을 통합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는 예술·문화·학문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을 설립하려는 이상을 가졌었다. 2008년 국제공모를 통해 베니스의 건축가 프랑코 스텔라(1943년~ )의 안이 채택됐고, 바로크 양식의 3개 파사드와 돔이 복원됐다.
북서쪽은 현대적 디자인의 건물을 배치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을 구상했다. 또 원래 없었던 중앙 통로를 두어 각기 다른 문화가 소통하는 시민들이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총면적 5만5000㎡ 규모의 건물은 연극, 영화, 음악을 위한 다기능성 행사 공간인 아고라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의 현대예술 공연을 위한 공간과 학술, 문화, 정치를 위한 토론의 장으로, 반은 베를린 인류학 박물관과 달렘의 아시아 미술관이 입주해 한 건물에 2개의 박물관이 공존한다. 복원부분은 철저한 미학적 고증과 친환경, 최첨단 과학기술을, 건물의 지속가능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 지열 활용 설비를 사용했다.
기념비적인 건물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구조나 하중 변경공사 없이 짧은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완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민주국가에서 예전의 왕궁이나 권위적인 건물로 되돌아가는 정치적 역사적 퇴행을 피하려는 점도 작용한다.
바로 옆에선 헤르조그&뮤롱이 설계한 20세기 미술관의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1㎞ 남짓 거리의 바우하우스도 전시장을 신축하고 있어 베를린은 그 전체가 하나의 문화예술 클러스터로 변모 중이다.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베를린 왕궁의 완공 이후의 모습과 소요되는 천문학적 예산, 확보방안까지 현장의 훔볼트 박스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또 24시간 실시간으로 공사현장을 중계한다. 시간이 걸려도 사회적인 합의와 투명한 공개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역사적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는 절차와 과정은 우리도 청와대 프로젝트를 비롯한 많은 일에 참고할 일이다.
[정준모 미술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5호 (2022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