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류승완 `모가디슈` vs 강신성 `탈출` | 휴머니즘과 광기, 그 사이를 걷는 인간들

    입력 : 2022.10.06 15:42:22

  • 우리 모두가 팬데믹이란 태풍에서 벗어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는다면 아마도 절대다수가 <모가디슈>를 꼽지 않을까요. 관객은 361만 명에 그쳤지만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받은 한국 영화는 <모가디슈>가 거의 유일해 보입니다. <모가디슈>는 지난달 추석 극장가에 재개봉해 더 많은 관객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티켓 파워’가 여전히 남았다는 이야기이겠죠. 영화 <모가디슈>의 원작은 2006년 출간된 강신성 작가의 실화소설 <탈출>입니다. 강 작가는 서울대와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뒤 벤쿠버·하와이에서 총영사로 근무했고, 소말리아 초대 대사로서 1987년 12월 24일부터 3년간 일한 대한민국 외교관입니다. 이후 칠레 대사도 역임하죠. 소설 <탈출>은 그가 1991년 1월 소말리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북한 대사관 공관원을 도와 내전 위험에서 탈출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배우 김윤석·조인성·허준호·구교환이 주연으로 나왔고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영화 <모가디슈> 개봉 이후, 소설 <탈출>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다수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직접 읽기는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책이 절판된 이유도 있고, 도서관에서도 찾기 어려운 편이죠. (온라인 중고서점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9만6000원’에 한 권 올라와 있네요.) 한 대학 도서관에서 소설 <탈출>을 어렵사리 빌려 원작을 읽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신성 작가의 이 작품은 종교소설, 사상소설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복합적인 주제를 다룬 수작입니다. 외교관 출신의 고령임에도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상당하셔서 몰입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 <모가디슈>와 소설 <탈출>은 어떻게 다를까요.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적과의 동행, 모가디슈에서 몸바사로 영화 내용부터 복습해 봅니다. UN 가입에 필요한 소말리아의 ‘한 표’를 얻고자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3년간 주재한 한신성 대사(김윤석)가 중심인물입니다. 바레 대통령의 오랜 독재에 저항하는 반군 USC가 내전을 일으켜 치안이 불안정해지자 다급한 표정의 손님들이 한밤중 한국 대사관 문을 두드립니다. 적국인 북한 대사관의 얼굴이자 냉전시대 라이벌이었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그의 공관 직원 및 식솔이었죠. 북한 대사관에 괴한이 수시로 난입하면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구조를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떨떠름하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이란 생각에 한 대사는 림 대사 일행을 대사관으로 들입니다. 이념도, 생각도, 살아온 배경도 판이하게 다른 두 대사의 목표는 이제 하나가 됩니다. ‘생존’이었죠. 두 대사관 공관원들은 정부군과 반군의 총알과 포탄을 피해 적십자사 구조기에 올라 결국 케냐 몸바사 공항에 내리게 됩니다. 한 대사와 림 대사는 다시 자신의 갈 길을 가지만 탈출 전과 전혀 다른 마음이 됩니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휴머니즘, 지독한 시간을 함께 견딘 동기애였습니다.

    다 읽기까지 다섯 시간쯤 걸리는 소설 <탈출>은 ‘소말리아 내전’이란 제목의 제1부, ‘소말리아 탈출’이란 제목의 제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자는 소설 제1부에 본인이 소말리아 생활에서 느꼈던 감정을 정제된 문장으로 담았는데 인류학의 차원에서 보는 소말리아 지옥도가 문장 곳곳에서 펼쳐집니다. 저자 강신성 작가는 소말리아에서 본 인간과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반(反)이성과 부조리는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가?’ 소설 속 한 대사의 상황과 마음으로 들어가 봅니다. 초대 대사로 부임한 소말리아에서 한 대사가 본 건 ‘불모의 빈곤’이었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산천초목은 불임(不姙)이었고 사람들의 의식주 역시 누더기 상태였다고 그는 말합니다. 모가디슈 외교가의 ‘빅4’인 이탈리아, 영국, 미국, 프랑스는 소말리아 지원과 자국의 아프리카 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소말리아에 머무르지만 일반 시민의 생활수준은 개선될 여지가 희박합니다. 소말리아 6대 부족은 국가라는 개념 대신에 부족 중심의 폐쇄성과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보이며 수시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무혈 쿠데타로 군사정부를 세우고 20년 장기 독재 중인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정권의 부패도 심각합니다. 바레 대통령의 친인척인 위정자들의 끝을 모르는 부패와 탐욕이 모가디슈 시내 안팎에 진한 구린내를 풍깁니다.

    사진설명
    영화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소말리아 내전의 첫 총성은 로마 교황청에서 파견한 한 신부의 총격 피살 사건에서 빚어졌습니다. 소설 <탈출>은 바로 저 교황청 대사와 한 대사의 대화, 그리고 이어지는 피살 직후의 모가디슈 풍경을 그리며 시작됩니다. 바레 정권이 신부 피살 사건을 악용해 반정부 인사를 처형하려 나서며 갈등이 불거집니다. 외교가 ‘빅4’는 시민 탄압을 이유로 바레와 단절할 움직임을 보이고, 모가디슈 인근에 암약하는 반군은 지금이 기회다 싶어 바레 정권의 대체 세력으로 자신을 부각시킬 절호의 찬스를 엿보고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북부엔 SNM, 남부엔 SPM이란 반군이 주둔 중이었고, 중부 사막지대엔 아이디드 장군이 이끄는 반군세력 USC가 수도 소말리아 밖 200㎞까지 진격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수도를 차지해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USC는 가장 열성적으로 바레 타도에 열을 올렸다고 저자는 책에서 회고합니다. ▶이성과 반이성의 길에서 영화적 각색이 이뤄지면서 <모가디슈>에 삭제된 <탈출> 에피소드는 여럿입니다. USC의 아이디드 장군은 내전을 일으키기 전 한신성 대사와 이미 만난 사이였습니다. 영화에서 한 대사의 운전수로 나오는 솨마는 소설에선 운전수가 아니라 한 대사 측이 잠시 피신시켜준 소년입니다. 또 소설에서 솨마는 아이디드 장군의 친조카로 기술되는데 이런 인연으로 아이디드 장군은 전쟁 전부터 한 대사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모가디슈>와 <탈출>이 상이한 부분은 한신성 대사의 사유 부분입니다. 저자는 제1부에서 본인의 분신이라고 할 한 대사의 심리상태를 성찰합니다. 한 대사는 장 폴 사르트르 등을 공부한 외교관으로, 자기 내면에 자리한 ‘지켜보는 나’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과 늘 대화하며 생활합니다. ‘지켜보는 나’로서의 한 대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정확하게 직시합니다. 그런 한 대사에게 소말리아는 이성과 반이성, 종교와 신앙을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한신성 대사에 따르면, 소말리아의 극빈과 내전은 종교 때문입니다. 알라신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내세에서의 자기 초월을 부정하는 반이성과 부조리가 소말리아의 지옥도를 불러왔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소말리아 시민에게 세계와 자연은 활용되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신의 세계에 견줘 부정돼야 하는 공간입니다. 전쟁 중에도 매일 새벽부터 신께 기도를 드리면서도 어깨에는 소총을 멘 모순이 바로 그 부정의 초상이죠.

    저자는 이렇게까지 기록합니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자연의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자는 알라신이라는 믿음에서 자신들의 육신과 물질을 업신여기고 오직 신 안에서 영적인 행복만을 추구해왔다. 이같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과 의지를 오히려 신을 거역하는 오만 불손한 배반자로 매도하여 억압해왔다.’ (소설 <탈출>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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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반군과 해맑은 광기 이때, 한 대사 눈앞에서 시작된 소말리아 내전은 ‘반이성적 정부군’과 ‘반이성적 반군’의 상호 충돌이 됩니다. 이성이 설 자리를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부조리의 단면을 총을 든 꼬마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으로 부각시킵니다. 남북한 대사관 직원에게 실탄이 든 총을 겨누면서 마치 사람을 장난감인 양 갖고 노는 듯한 ‘어린 반군’의 표정은 악마의 얼굴을 한 인간의 본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재화를 독점해온 정부군 인사들이나, 시민과 자유의 이름으로 정부군을 공격하는 반군도 실은 이성을 포기한 자들의 교활한 행위였음을 소설은 기록합니다.

    따라서 내전 중인 소말리아로부터의 탈출은 결국 인간의 부조리를 극복하고 이성을 회복하는, 좀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로 격상되기 시작합니다. 영화 <모가디슈>가 이념을 넘어선 두 대사관 직원의 휴머니즘을 주제로 삼는 데 반해, 원작 소설 <탈출>에선 이성의 극복이 더 본질적인 주제에 가깝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해 반이성의 공간에서 탈출하는 것은 인간 이성의 회복과 동일시됩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책에서 북한 공관원을 도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회고합니다. 저들을 사지나 다름없는 소말리아에 두고 혼자만 안전한 곳으로 빠져 나간다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입니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하고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것은 인간 이성이며, 한 대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성이 작동한 결과로 림 대사 일행을 도왔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한 방울의 물, 그리고 이기심 남한의 한 대사와 북한의 림 대사 식솔은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준비한 수송기까지 이동합니다. 그들 일행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2시간 동안 바레 대통령의 정부군과 아이디드 장군의 반군 USC는 휴전하기로 합니다. 침묵의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던 이동 순간을 저자는 책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뒤에는 전차와 마군이 추격해오고 있다. 추격자의 총 한 방이면 그 조마조마한 물벽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소설 <탈출>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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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저자가 은유한 ‘물벽’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탈리아가 이끄는 피란민 행렬을 가운데 두고 반군과 정부군이 함께 마주보고 있습니다. 행렬은 당장이라도 총알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것만 같은 공포의 사이를 걷는 중이지요. 저자는 당시 경험한 저 행렬을 구약성경에 나오는 출애굽(이집트 탈출) 대열로 이야기합니다. 이탈리아 대사관의 수장 마리오 시카 대사는 성경의 모세로 그려지지요. 심지어 성경 구절도 인용됩니다.

    ‘주께서는 구하신 백성을 주의 자비로 인도하시고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출애굽기 15장 13절) 강신성 작가 문장의 곳곳에는 이러한 신앙의 증거가 곳곳에 기술돼 있습니다. 영화에는 내전이 일어나고 한 대사의 부인이 기도를 강요하는 웃픈 장면이 나올 뿐이지만 원작은 이처럼 더 직접적으로 종교색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한 대사의 모가디슈 탈출이 종교적 구원이라는 단선적 차원에서 소비되지 않고 작가의 더 복잡한 속내를 드러낸다는 점 때문에 소설 <탈출>의 심연은 더 깊어집니다. 아주 중요한 한 장면이 소설 말미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수송기 내에서 방금 구조된 사람들은 수고하고 지친 나머지 ‘한 방울의 물’을 간절히 원합니다. 물이 넉넉하지 않은 까닭에 구조원들도 그들에게 플라스틱 물병을 몇 개 나눠줄 뿐이었지요. 물병을 나눠주며 그들은 외칩니다. 조금씩만 마시고 옆 사람에게 물병을 돌리라고. 물병은 무사히 전달될 수 있을까요? 이미 짐작하듯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물병을 받은 사람이 실컷 물을 먹기 시작하고, 특히 사다지란 이름의 한 남자는 반병이나 되는 물을 죄다 먹어치웁니다. 이어 물 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집니다. 한 대사 옆에서 한 직원은 꼭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신을 뵐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싸우던 유대인들 같다고 말합니다.

    결국 다시 자신의 이기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임을 저자는 소설에서 예리하게 포착해냅니다. 영화 <모가디슈>의 주제 휴머니즘이 원작 <탈출>에선 인간의 반이성과 악마성에 관한 통찰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사람은 세계와 타자로부터 구원받고자 애쓰지만 상황이 돌변하면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는 사악한 존재임을 소설은 이 한 장면으로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김유태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5호 (202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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