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칼럼] IRA는 시작에 불과하다

    입력 : 2022.09.28 13: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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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 발효로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IRA는 미국 정부로부터 전기차 보조금(약 1000만원)을 지원받으려면 북미에서 전기차 제조는 물론, 배터리 부품의 50%·광물 40% 이상을 조달해야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한국 전기차의 미국 수출 금지 조치와 같은 이 법안 발효를 두고 우리나라는 미국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그동안 미국에 130억달러를 투자해 10만 명 넘게 일자리를 창출했고 지난봄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는 현대차가 미국에 1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통 큰 선물보따리를 안겼다.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서 제외시킨다는 법안이다.

    ‘IRA 폭탄’에 뒤이어 발표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은 미국의 세액공제를 받은 기업이 중국 내 공장을 짓거나 설비 투자를 확대할 경우, 보조금을 회수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미국 우선주의’ 조항을 추가했다.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두 미국에서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위탁생산이나 글로벌 반도체설비 기업들의 국내 투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이같은 법안들을 발효한 것이 아니다. 이미 1년여 전에 ‘미국 혁신 경쟁법’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보조금을 활용해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미국 내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바이든의 대선공약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사들에 대한 견제수위를 높여왔고, 그 선두주자인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미국의 세금은 미국 기업에 써야 한다”며 반도체 보조금을 자국 기업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얼마 전엔 미국 상무부가 한국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 반도체 기업을 설득해 미국으로 투자를 돌리게 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권이 지지율 만회를 위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본격화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것이 아니다. 곳곳에서 갖가지 시그널들이 지속됐지만, 대수롭지 않게 흘러 넘겼을 뿐이다.

    일본은 달랐다. 이미 지난해부터 이를 감지하고 개별 기업뿐 아니라 협회, 정부까지 한 몸처럼 협력해 미국 정치권과 미 정부에 로비했다. 덕분에 일본 기업들에게 불리한 조항들은 이번 법안에서 빠졌다. 한국 정부와 국회가 정쟁에만 몰두한 사이, 벌어진 일들이다. 우리 기업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와 국회의 무능함이 한심스럽다.

    IRA는 대한민국호에 닥친 위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탈세계화, 각자도생의 자국중심주의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한마음으로 합심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여야 없이 대동단결해 ‘원팀’으로 일사분란하게 IRA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 의회가 놀랍고도 부럽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5호 (202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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