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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파블로 피카소의 마음의 고향 스페인 바르셀로나
입력 : 2022.08.02 11: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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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4세의 피카소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가 로차 예술학교로 옮기게 되자,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와 인연을 맺었다. 이때부터 1904년 프랑스 파리로 완전히 이주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구시가지를 비롯해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우타트 벨라 지역의 비좁은 골목길 등을 마음껏 누볐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피카소였기에, 아버지는 그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틀리에를 마련해주었다. 1897년에는 피카소를 마드리드에 있는 스페인 최고의 미술교육 기관인 ‘왕립 산 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로 2년 동안 유학을 보냈다. 하지만 사춘기 소년은 미술 아카데미 수업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프라도미술관을 서성거리며 스페인 최고의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종교화로 유명한 엘 그레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의 작품을 보고 또 보며 연구했다.
어느덧 사춘기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피카소는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구시가지 인근에 허름한 방 한 칸을 임대하여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 현재 피카소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활동했을 때 자주 갔었던 카페 ‘엘스 콰트르 개츠(4 Gats)’와 상업적으로 첫 전시회를 열었던 ‘살라 프레스’, <아비뇽의 여인들> 작품의 배경이 된 아비요 거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피카소가 그린 4Gats(1900)
청년 피카소의 아지트였던 카페 콰트르 개츠에서 남동쪽으로 500m 정도 걸어가면 ‘살라 프레스’라는 개인 미술관이 나온다. 이곳은 1901년 피카소가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기 위한 갤러리이자, 아마추어가 아닌 직업 화가로서의 데뷔 무대였다. 하지만 피카소의 작품은 팔리지 않았고, 좋은 평가도 받지 못하였다. 파스텔과 목탄으로 그린 그림들은 교양 있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만 20세에 청운의 꿈을 안고 전시회를 열었지만, 한 점도 팔지 못한 피카소는 고딕 지구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천재 화가에게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청년 피카소가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의 시간을 보낸 구시가지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아비요 구시가지 거리에 이른다. 고풍스러운 중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비요(Avinyo)’는 피카소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에 영감을 준 곳이다. 1907년 피카소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마음의 고향인 바르셀로나를 잊지 못했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보낸 고딕 지구를 생각하며 그렸다. 그런데 작품 이름에 등장하는 아비뇽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도시, ‘아비뇽(Avignon)’이 아니라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 있는 ‘아비요’를 프랑스어로 발음한 것이다. 과거 아비요 44번지 인근에는 선술집과 사창가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다양한 상점과 카페가 들어서 있고, 고풍스러운 중세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카소의 예술혼을 만날 차례이다. 1963년 4월, 구시가지 몬카다 거리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개인 비서였던 사바르테스가 기증한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시작됐다. 훗날 피카소도 그림, 조각, 판화, 도자기 등을 기증하였다. 이 미술관은 피카소가 파리에 정착하기 이전인 1901년부터 1904년까지 주로 그린 ‘청색 시대’ 작품이 백미이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 작품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울한 사람들을 검푸른색이나 짙은 청록색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소 무겁고, 어두침침해 컬렉터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에 속한다. 그 밖에도 4200여 점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삶과, 미술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 그가 남긴 말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 아니라 부도 손에 넣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 자신을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3호 (2022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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