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리안 `색, 계` vs 장아이링 `색, 계` | 욕망하되 의심하라, 그것이 인간의 생이니
입력 : 2022.08.01 15:01:36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탕웨이를 향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1979년 중국 항저우 출생인 탕웨이가 이름을 널리 알린 건 2007년 개봉한 영화 <색, 계>였습니다. 고혹적인 눈빛으로 상대를 유혹해 암살해야 하는 비극적 주인공을 연기한 탕웨이는 <색, 계>가 그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글로벌 라이징 스타로 부상했습니다.
<색, 계>는 이제 영화를 보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1940년대 중국 천재 소설가 장아이링(1920~1995)의 동명소설을 원작 삼았음을 아는 관객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문호 루쉰과 더불어 중국 최고 현대문학 작가인 장아이링의 소설을 리안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지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배우 탕웨이를 우리에게 알린 <색, 계>의 심연으로 들어가 봅니다.
▶탕웨이의 길, 장아이링의 길
먼저 장아이링 소개가 필요하겠지요. 상하이에서 태어난 장아이링은 1938년 런던대에 수석 합격한 당대 천재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유학을 포기한 장아이링은 홍콩대에 입학하지만 1941년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자 상하이로 귀국합니다. 장아이링은 <색,계>에 자신의 여러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아이링 실제 생애의 동선(상하이-홍콩-상하이)이 영화 <색,계> 속 탕웨이가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탕웨이가 연기한 왕지아즈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등 외모도 장아이링을 일정 부분 닮았습니다.
봉건 이데올로기와 전란의 분위기 속에서 장아이링은 1944년 친일파 관료 후란청과 결혼해 당대 최고 스캔들 주인공이 됩니다. 중요한 건 후란청이 짧은 결혼생활 동안 장아이링에게 ‘딩모춘 암살기도사건’의 전말을 일러줬다는 점입니다. 정핑루란 여성이 친일괴뢰정권 수장 딩모춘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는 내용인데, 장아이링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색,계>를 집필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어로 고작 53쪽짜리 단편인 <색,계>를 장아이링은 무려 30년에 걸쳐 쓰고 고치고 다시 쓰길 반복합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영화화 과정에서 남성 주연 이 선생 역에 양조위가 먼저 캐스팅되고, 여성 주연 왕지아즈 역에 탕웨이가 ‘경쟁자 1만 명’을 제치고 낙점됩니다.
영화 <색, 계>서 왕지아즈로 열연한 탕웨이.
때는 1940년대, 홍콩에서 대학을 다니던 왕지아즈가 애국연극단에 가입한 뒤 친일파 이 선생을 유혹하는 미인계의 ‘스파이 배우’로 나서지만 실패하고, 이후 체념하던 중에 상하이에서 다시 이 선생을 만나 결국 그를 암살 장소로 유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 선생과 정말로 사랑에 빠진 왕지아즈가 이 선생의 탈출을 돕게 되고, 자신은 동료들과 함께 총살당합니다. 한국에서 2008년 출간된 소설집 <색, 계>에는 왕지아즈처럼 사랑 앞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여성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인형의 집>과 몰락의 예감
따라서 인간 욕망과 금지 규정이 장아이링의 문학적 주제가 될 것입니다. 실패의 예감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더 디딜 수밖에 없는 인간의 냉혹한 운명을 <색,계>는 구현합니다. ‘그녀가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마치 스타킹의 올이 나간 후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이 종아리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 같은 실패의 예감이 그녀를 감쌌다.’(33쪽)
소설엔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 관객이 의미를 해독하지 못하고 넘겨보는 몇 가지 지점이 먼저 발견됩니다. 영화에서 애국연극단에 가입해달라는 학교 친구 광위민의 제안에 왕지아즈와 그의 친구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과 같은 연극이 아니면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애국 청년 광위민은 “그건 부르주아 연극”이라고 질타하며 <인형의 집>의 가치를 폄훼하지요.
리안 감독은 왜 하필 <인형의 집>을 선택했던 걸까요. <인형의 집>은 노르웨이 사실주의 연극의 초기 대표 희곡으로, 현모양처로서 ‘인형’으로 은유됐던 여성 노라의 성장과 해방을 그리는 1879년 작품입니다. 왕지아즈가 배우로서 추구하고자 했던 이데아로서의 작품은 여성 해방을 이야기하는 <인형의 집>이었는데,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서 남성들은 ‘인간 해방을 위한 여성의 도구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아이러니하지요.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여성으로서의 왕지아즈의 신체는 이 선생을 유혹하는 도구가 됩니다. 왕지아즈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성(性)과 신체를 베팅하는 위험한 연극에 나서야 했고,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연습 삼아’ 잠자리를 가졌으며, 이후 자신을 학대하는 이 선생의 성적 노예, 도구적 신체로 전락합니다. <인형의 집>과 <색, 계>는 이처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도 왕지아즈의 신체는 남성의 시선 아래에 놓입니다.
‘자신을 훑어보던 그들의 시선이 바늘처럼 그녀를 찔러왔다. 회심의 미소까지 지으며 자신을 훑어보던 사람들 속에는 광위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량룬셩만 모른 체하며 2년 동안 점점 더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그녀의 가슴을 못 본 척했다.’(30쪽)
▶사랑과 의심, 색(色)과 계(戒)
소설 <색, 계>에서 단어 ‘영화’는 두 차례 언급됩니다. 하나는 이렇습니다. ‘(왕지아즈는) 이탈리아 제과점을 지나 시내 전역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2류 영화관인 핑안극장 앞을 지나갔다.’(45쪽)
이때, 핑안극장은 허구의 세계, 가짜 연극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왕지아즈는 극장에서 혼란을 느낍니다. 자신에겐 상하이 전체가 ‘가짜 현실’인 무대이며, 그는 목숨을 담보로 연기했던 전력을 가진 첩자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극장에 간 왕지아즈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41년작 영화 <서스피션>의 포스터 옆을 지나칩니다. 부잣집 아가씨 리나가 매력남 존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하지만 이후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의심을 갖는 심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왕지아즈는 이 선생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암살 장소로 유인해야 하는 특명을 받은 첩자였습니다. 색(色)으로 상대를 유혹하기, 그러나 의심받기를 경계하기(戒). 이것이 그녀의 운명이었습니다. 오히려 왕지아즈가 이 선생을 끝내 몰락하게 만들고자 했다면 그는 <서스피션>을 관람해야 했지요.
그러나 <서스피션> 포스터를 지나 왕지아즈가 선택하는 영화는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1941년작 <페니 세레나데>입니다. 구글링으로 찾아보니 <페니 세레나데>는 일단 로맨스물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기자였던 로저와 그의 아내 줄리 이야기를 다루는데, 지진으로 집이 파괴되자 유산하고야 만 부부가 딸을 입양하지만, 아이가 6세에 병으로 하늘나라로 갑니다. 역경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부부간 이야기는 비극과 희극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는 결혼의 진짜 초상을 정확히 집어냅니다.
왕지아즈는 그날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선생과의 (결코 현실에선 이루지 못할) 사랑의 언약을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심장까지 파고들어요. 이러다가 사로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라는 영화 <색, 계> 속 왕지아즈의 대사는 결국 의심(<서스피션>) 받을 운명보다 위대한 인간의 사랑(<페니 세레나데>)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 겹의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색, 계>에서 큰 의미지평을 낳는 부분은 왕지아즈가 생을 담보로 건 이 위험한 연극의 결말 부분입니다. 영화에서, 이 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왕지아즈를 총살하라는 단호한 지시를 내립니다. 방첩부 장관으로서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다소간의 미련이 생을 완전히 붕괴시킬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소설에서도 이 선생의 선택은 비슷하게 전개됩니다. 왕지아즈의 목숨을 구하려는 이 선생의 의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장아이링은 이 선생의 심리를 이렇게 기술하기까지 합니다.
‘그녀는 죽으며 자신을 분명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66쪽)
하지만 영화엔 왕지아즈가 머무르던 방의 침대에서 울먹이는 이 선생의 모습이 함께 비칩니다. 그 점이 두 장르로 만들어진 <색, 계>의 가장 큰 차이점이지요. 소설에서 이루지 못한 왕지아즈에 대한 위로를 리안 감독은 스크린에서 조금이나마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한 여성을 향하는 영화적 위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에 선행하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겠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색,계>는 중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딩모춘 암살기도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딩모춘을 유혹하려 했던 정핑루는 어떻게 됐을까요. 소설집 해설에 따르면, 딩모춘은 정핑루의 신분을 알고 잡아들였다가 풀어줬는데, 딩모춘의 아내 자오후이민이 다시 정핑루를 잡아들여 결국 살해했다고 합니다. 실제 사건, 원작 소설, 각색된 영화라는 이야기의 세 가지 층위에서 본다면 가장 비극적이었던 결말은 소설도 영화도 아니라 현실 그 자체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대목입니다.
소설 <색, 계>는 1979년 <인간>이란 잡지에 처음 발표됐다고 합니다. 왕지아즈를 연기한 탕웨이는 공교롭게도 1979년생입니다. 마치 비운의 왕지아즈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김유태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