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도시와 나라의 자존심 미술관을 키우는 기부의 힘
입력 : 2022.07.29 14:32:39
-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기부’였다. 서구 미술관들이 매년 발간하는 연례보고서를 보면 회계보고서와 함께 그해에 기부 받은 기금과 작품들의 목록이 들어있다. 이들 미술관은 무슨 복을 타고나 이렇듯 작품 기증과 현금 기부가 많을까. 막연히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은 후손에게 상속해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서양의 경우 종교적으로 십일조가 일반화된 영향일 것이라는 나름의 원인(?)을 찾아봤지만, 이는 오해일 뿐 유럽보다 미국의 미술관은 기부로 시작해 기부로 유지되었고, 앞으로도 기부로 당당하게 관객을 맞을 것이란 사실을 아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왕실 소장품이 이관되어 충실한 컬렉션을 이룬 유럽 미술관과 달리 문화적 후발주자인 미국은 모든 미술관이 기부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관들은 대개가 독립되고 100여 년이 지나 나라가 어느 정도 꼴을 갖추면서 개관했다. 보스턴미술관(1870년), 필라델피아미술관(1876년), 시카고미술관(1882년), 디트로이트미술관(1885년), THe MET(189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미술관(1914년), 클리블랜드미술관(1916년)이 문을 열었다. 이들 미술관은 모두 민간의 기부와 미술품 기증으로 이루어진 백과사전식 미술관이다. 유지들이 앞다퉈 다양한 컬렉션을 기증한 탓에 만물상 같은 미술관이 되었다. 타 도시보다 몸집이 큰 크기로 승부하는 미술관을 만들고자 했던 야망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필라델피아미술관(1876년 개관) <사진 WIKIPEDIA>
서양의 이런 기부의 전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유럽문화의 원형인 그리스, 로마의 기부주의(Euergetism)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예술의 발전은 정치적 지배와 종교적 신앙과 관련이 있다. 이런 관계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그리스 로마시대의 황제나 원로원 의원, 도시의 명예직을 맡은 부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사재를 도시나 공화국에 무상으로 기여해야 하는 의무적인 기부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기부된 부는 시민들의 ‘빵과 서커스’를 위해 쓰였다.
오늘날 빵과 서커스는 포퓰리즘(Populism)의 상징처럼 쓰이지만, 빵이란 먹고사는 문제를, 서커스란 대중의 여가와 오락을 위한 극장과 같은 공공시설을 의미한다. 고고학과 라틴학자였던 앙드레 불랑제(1886~1958년)와 그를 계승한 폴 베인(1930년~ )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기부주의 전통을 국가의 엘리트층과 시민과의 관계에서 지배층의 사회적 의무와 차별화, 사회적인 대우에 따른 대가, 그리고 명예가 기부주의의 근간임을 밝혔다.
따라서 중세 유럽의 교회는 종교 외에 예술까지 지배했고 ‘기부’보다는 ‘자선(Charity)’의 측면에서 보편적 사랑의 실천을 통해 속세의 문제에 개입했다. 르네상스시대에 빵은 종교적인 자선의 영역으로, 서커스는 지배계급의 정통성을 위한 기부의 영역이 된 것이다. 르네상스시대 유럽의 군주는 예술의 사랑을 넘어 ‘예술과 문학의 후원자’여야 했다. 여기서 후원자는 로마시대의 후견자(Patron)와 고객(Client)의 관계로, 후원자는 단순히 예술을 지원하는 이가 아니고 그 지원을 통해 추종하는 예술가 집단을 거느린다는 의미다.
지배의 정당성을 위한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도시국가 간 문화예술 후원을 위한 경쟁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예술을 주도했던 중세교회는 그 역할을 군주에게 이양했다. 17세기 프랑스 루이시대 베르사유는 유럽의 왕이 어떻게 예술과 문학을 후원해야 하는지 실질적으로 보여주었고 당시의 문화예술은 왕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국가가 직접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제도도 이때 만들어졌다.
러시아 에르미타주미술관(1764년 개관) <사진 WIKIPEDIA>
이렇게 미술은 군주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권력의 품위 유지를 위한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지만 18세기 초 일부 왕이나 왕족,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왕실미술관의 개방이 이루어진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은 소장품을 일반에게 공개했다. 뒤셀도르프를 시작으로 드레스덴, 카셀, 뮌헨이 개방하면서 미술관의 개방성은 소장품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계몽주의는 미술관의 개방성을 더욱 부추겼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근대국민국가가 성립하면서 미술관은 도시의 위상을 결정짓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개인의 집합체인 민족, 국민은 국가의 주인으로 미술관의 소장품이 민족의 자산, 국민의 소유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미술관은 국민통합과 민족의 일체화를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미술관(1885년 개관) <사진 WIKIPEDIA>
이런 대단한 미술관을 보유한 국가들은 여전히 쉼 없이 민족과 인류의 문화발전과 교양 있는 예술적 시민양성을 위해 미술관 소장품 수집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국가가 제아무리 많은 지원을 한다 해도 재정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양대 기관의 1년 작품 구입예산은 모두 합해도 70억원 조금 넘는 정도이다. 김환기의 <우주>가 수수료 포함 152억원에 거래된 것을 생각하면 정말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화 선진 국가들은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징세권을 활용해 미술관에 대한 예술품의 기부를 독려할 뿐만 아니라, 기부금 또는 기부가격의 1.5배를 기부금으로 인정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적극적 기부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들을 앞다투어 실행하고 있다. 이제라도 기부와 기증을 장려할 수 있는 징세권을 활용한 문화정책을 펴야 할 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때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정준모 미술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3호 (2022년 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