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우의 명품 와인이야기] 로마네 콩티보다 경매가가 비싸다고? 르루아 뮈지니 그랑 크뤼

    입력 : 2022.07.08 14:19:30

  • 나는 평론가들과 소비자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와인들을 접할 때 가끔 이런 생각에 빠진다. ‘좋은 와인을 만들어야 잘 팔리는 것일까 아니면 잘 팔려 안정된 시장과 자금이 먼저 생겨야 더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일까?’ 품질 좋은 와인이 우선이라는 말이 당연하단 생각이 들겠지만, 아마도 자기 사업을 해본 독자들은 ‘장사가 먼저’라는 말이 함축하는 의미를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와인들 중에는 이탈리아의 ‘비온디 산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처럼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초야에 묻혀있다 특별한 계기로 세계 시장에 알려진 경우가 있다. 또 다른 이탈리아 와인메이커인 ‘안젤로 가야’와 같이 전통적인 양조기법을 혁신하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뛰어나긴 하지만 이웃 농부들보다 훨씬 좋진 않던 와인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이를 통해 품질을 꾸준히 발전시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와인메이커들도 적지 않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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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와인인 ‘로마네 콩티’는 그 두 가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최고의 와인이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와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로마네 콩티도 한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의 책임자인 오베르 고당 드 빌렌의 할머니인 마리-도미니크와 외삼촌인 자크가 1912년 로마네 콩티를 상속받은 직후, 1차 세계대전과 세계적인 불경기로 로마네 콩티를 포함한 모든 와이너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족들은 로마네 콩티를 파리의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매물로 내놓았으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당시 파리의 자산가들은 와이너리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고 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앙리 르루아(Henri Leroy)가 등장한다.

    앙리 르루아는 ‘매종 르루아’의 창립자인 프랑수아의 손자이자, 현재 와이너리의 책임자인 랄루(Lalou) 여사의 아버지이다. 마리-도미니크의 남편인 에드몽 드 빌렌의 친구였던 앙리는 로마네 콩티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그의 친구를 설득하여 매물로 내놓았던 포도원을 거두게 된다. 끝까지 자신의 몫을 팔고자 했던 자크의 지분을 앙리가 직접 인수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이렇게 하여 1942년부터 앙리 르루아는 로마네 콩티의 공동 소유주가 되었고, 1980년 그가 작고한 이후 그의 딸인 랄루가 지분을 이어 받게 된다.

    메종 르루아는 1868년 프랑수아 르루아에 의해 설립됐다. 제임스 로칠드가 보르도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라피트를 인수한 해와 같은 해이다. 프랑스, 특히 부르고뉴 와인 회사에서 자주 보이는 메종이라는 이름은 대게 네고시앙 회사를 의미한다. 네고시앙이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주로 지역 농부들로부터 포도를 구매해 와인을 만드는 회사를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직접 재배하는 포도로만 와인을 만드는 회사는 도멘(Domaine)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구분하는데, 1988년 랄루에 의해 만들어진 ‘도멘 르루아’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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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메종과 도멘의 구분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메종 루이 자도’처럼 대부분의 와인을 직접 재배하는 포도로 만들지만 메종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메종 르루아는 1942년 앙리 르루아가 로마네 콩티의 공동 소유주가 되면서 로마네 콩티를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 독점적으로 유통하게 된다. 물론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그에 따른 엄청난 성공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1980년 아버지의 임종으로 메종 르루아를 이끌게 된 랄루 비즈-르루아는 와인의 유통에 대한 이견으로 로마네 콩티의 책임자인 오베르와 갈등을 겪다 1992년부터 로마네 콩티의 경영과 유통에서 모두 손을 떼게 된다. 아마도 회사의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에게 도멘 르루아의 와인이 없었다면 말이다.

    작년 9월 프랑스의 인터넷 와인 경매 회사인 아이디얼와인(iDealwine)에서 재미있는 공고를 냈다. 도멘 르루아의 뮈지니 2006년산 한 병이 2만8244유로에 판매되어 경매 기록을 경신했다는 내용이었다. 르루아의 뮈지니가 로마네 콩티보다 더 비싸게 팔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재작년에 2001년산이 1만7499유로에 판매되어 이전 기록인 로마네 콩티의 1만7146유로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최근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도멘 르루아의 와인이 로마네 콩티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는 점이 화제이다. 유통을 담당하던 르루아가 로마네 콩티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안정된 유통망이 제품보다 먼저가 될 수 있는 예로 봐도 되지 않을까?

    [이민우 와인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2호 (2022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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