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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옥토버페스트 ‘맥주의 도시’에서 ‘음악의 도시’로 거듭난 독일 뮌헨
입력 : 2022.07.07 15: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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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만인은 갈증을 제일 못 참는다”라고 했고, 아랍 출신 외교관 이빈 화들란은 “독일인은 술이 아주 세고, 뿔같이 생긴 잔을 들고 탁자 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마치 관습처럼 전해지고 있다”라며 게르만인이 맥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이처럼 독일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맥주이고, 그 중심지가 거품만큼이나 삶이 풍요로운 바이에른주의 주도 뮌헨이다.
해마다 9월 말이면 1810년부터 시작된 ‘옥토버페스트’ 맥주 축제가 열리기 때문에 뮌헨의 명성은 맥주로 더 알려져 있다. 하지만 뮌헨을 ‘맥주의 도시’로만 알고 있다면 큰 오해이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기 두 달 전인 7월에는 1875년부터 개최된 유럽 최고의 음악 축제 중 하나인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이 해마다 성대하게 막을 올린다.
뮌헨을 ‘오페라의 도시’로 명성을 드높이는 데 수많은 음악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모차르트와 바그너, 그리고 뮌헨 출신의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864년 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슈트라우스는 독일인의 정서를 음악에 고스란히 담아내 바그너와 함께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인 <장미의 기사> <카프리치오> <그림자 없는 여인> 등의 오페라는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 다만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에게 지휘와 작곡을 가르친 스승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현재 그가 태어난 생가는 전쟁 때 폭격으로 없어졌지만, 그가 뛰어놀던 구시가지 노이하우저 거리에는 슈트라우스를 기념하기 위한 멋진 ‘슈트라우스 분수대’가 세워져 있다.1. 모차르트 2. 바그너 3. 슈트라우스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오페라의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뮌헨이 더는 ‘맥주의 도시’가 아니라 ‘오페라의 도시’로 새롭게 다가선다. 그럼 어떤 이유로 뮌헨이 유서 깊은 ‘음악의 도시’로 성장했을까? 1802년에 완전히 철거된 ‘살바토르 극장’, 바이에른 왕과 귀족들이 즐겨 찾았던 ‘퀴빌리에 극장’, 오늘날 뮌헨 오페라 축제의 중심이 되는 ‘뮌헨 국립극장’ 등 여러 개의 오페라 극장이 뮌헨을 독일 최고의 ‘오페라 도시’로 성장시키는 데 초석이 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전통을 자랑했던 곳은 1654년 곡물창고를 오페라 하우스로 개조한 살바토르 극장이다. 안타깝게도 1799년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1775년 1월 13일, 열아홉 살 된 모차르트가 이 극장에서 <가짜 여자 정원사> 오페라를 초연했던 기록은 남아 있다. 그 당시 공연이 현지 사정으로 인해 두 번이나 연기되었지만, 모차르트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열렬한 팬인 요제프 3세 앞에서 멋진 오페라를 선보였다.
구시가지
사춘기 시절에 뮌헨 극장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 오페라를 처음 본 후, 그의 후원자가 된 루트비히 2세는 1864년 3월,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슈투트가르트에 머물고 있던 바그너를 뮌헨으로 초청한 것이다. 그 결과 1865년 6월 10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1868년 6월 21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1869년 9월 22일 <라인의 황금>, 1870년 6월 26일 <발퀴레>, 1888년 6월 29일 <요정들> 등 무려 5개의 오페라가 뮌헨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외에도 1972년 8월 1일, 뮌헨 올림픽 개최 행사로 작곡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뮌헨은 단순히 맥주의 도시가 아니라 여유를 갖고 천천히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문학가와 음악가뿐만 아니라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의 예술혼과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예술의 도시’이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2호 (2022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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