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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시벨리우스의 두 번째 교향곡이 말하는 것… 애국심의 발로 혹은 영혼의 고백
입력 : 2022.06.08 16: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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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의 어느 수요일 밤, 부산문화회관에서 독특한 공연이 열렸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이 해설을 곁들인 기획음악회 ‘심포니야(Symphony 夜)’를 선보인 것. 이 공연이 독특했던 이유는 통상적인 콘서트와는 달리 서곡이나 협주곡 없이 교향곡 한 곡만 연주하고 앙코르도 없이 마치는 이례적인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기획한 악단의 예술감독 최수열 지휘자의 의도는 보다 진지했다. 걸작 교향곡 한 편의 매력과 가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는 것. 교향악 애호가라면 십분 공감하고 환영할 만한 아이디어였다.
이날 공연에서 내 역할은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한 사전 해설(약 20분)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작품은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2번 D장조>.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로 추앙되는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인 이 곡은 핀란드인들의 애국심과 독립정신이 투영된 작품으로 해석되곤 한다. 시벨리우스가 이 작품을 작곡하던 무렵에 핀란드는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었기에, 핀란드가 러시아에 맞서 나토(NATO) 가입을 선언한 현 시점에 이 교향곡을 접하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1890~1900년경 시벨리우스.
핀란드는 오랜 세월 이웃 국가에 예속된 그늘진 역사를 이어온 나라였다. 12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고 1809년부터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다만 19세기 동안 핀란드는 자치대공국(Grand Duchy)의 지위를 인정받아 독자적인 대의기구와 행정기구를 운영했다. 1860년대에는 독자적인 화폐가 발행되는가 하면 핀란드어가 스웨덴어와 더불어 공용어로 인정받았으며, 자치의회 개최가 정례화된 데 이어 독자적인 군대도 보유하게 되는 등 차츰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러 그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다.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가 1899년 핀란드의 자치권을 제한하는 ‘2월 선언’을 발표했던 것이다. 핀란드인들은 거세게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시벨리우스가 애국적 교향시 <핀란디아>를 발표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러시아의 압제에 저항하는 핀란드인의 정신과 희망을 노래한 <핀란디아>는 핀란드 각지에서 공연되어 핀란드인들의 타오르는 애국심에 세찬 부채질을 했을 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도 연주되며 핀란드의 상황을 널리 알리는 전령 역할을 했다.페카 할로넨의 <카렐리아의 선구자들>. 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 헬싱키 시벨리우스 공원의 기념비.
하지만 시벨리우스는 마냥 긍정적인 결말을 연출하지 않고 그 장엄하게 굽이치는 흐름의 골짜기에 다시금 어둠의 발자국을 새겨놓는다. 깊은 비감에 잠긴 듯한 그 민요풍 선율에는 안타깝게 요절한 처제에 대한 상념이 녹아 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 인생이 계속되는 한 비극도 반복되며 우리는 그 모든 굴곡과 파고를 견디고 넘어서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는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1호 (2022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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