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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이건희 컬렉션부터 히토 슈타이얼까지… 만발한 초여름 꽃처럼 피어난 전시
입력 : 2022.06.08 15: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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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분위기를 보면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모두들 새로운 마음으로 들떠 있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5월부터 새롭게 문을 연 미술관과 박물관 들이 오랜만에 좋은 전시로 관객들을 맞는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이 준비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8월 28일까지)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소장했던 문화재 미술품들을 유족들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한 뜻을 다시 새기고자 하는 전시다. 앞으로 그 기증품을 토대로 어떻게 채우고 보태서 보다 완성된 국가의 컬렉션으로 만들어 나갈까를 고민하게 하는 ‘기증받은 이들’의 책무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다. 약 54%에 달하는 기증품이, 보다 깊은 연구와 해석이 필요한 책과 문서라는 점은 기증받은 이들의 추후 연구과제가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증품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스펙트럼이 만만치 않다. 전시는 4개의 테마로 나누어 마치 어느 집에 초대되어, 집안을 둘러보는 형태로 구성됐다. 약 2만 점이 넘는 기증품 중에 350여 점을 가려 만든 전시니, 빼어난 중에 빼어난 것들로 전시장은 가득하다.<삼현수간첩>(보물), 성혼·송익필·이이 씀, 조선 1560~1593 작성, 1599년 편집, 종이에 먹, 38.5×27.5㎝, 국립중앙박물관, <일광삼존상>(국보), 삼국시대 6세기, 청동에 금도금, 높이 8.8㎝,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들은 겸재의 <인왕제색도>나 모네의 <수련>에 몰리지만, 이 전시의 묘미는 슬쩍 물러서서 숨겨진 보물을 찾아보는 데 있다. 실학자 정약용의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은 그의 정갈한 글씨에서 아취가 묻어난다. 조선 중기, 구봉과 우계 그리고 율곡이 20대부터 약 30여 년을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엮은 <삼현수간첩>(보물 1425호)은 당시 그들의 일상은 물론 편지로 성리학에 대한 열띤 토론을 주고받았다. 조선시대 과거에 드는 일은 집안의 경사였다. <세년계회첩>은 1601년 이경엄이 문과에 급제해 집안 대대로 과거에 급제한 일을 기념해 화원이었던 이신흠에게 부탁해 1604년 꾸민 회첩이다. 그림은 맑고 곱고 군더더기가 없어 정갈하다. 신명연과 대원군 이하응, 김응원의 난을 한꺼번에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다. 사군자의 난초가 고매한 선비의 인품을 뜻한다고 배웠지만, 세 사람의 난초를 보면 난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 것을 알 수 있다. 녹색이 빛처럼 눈이 부신 해강 김규진의 <대나무>는 전통화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군자를 실험하는 듯하다. 예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었으나 예산이 부족해 소장하지 못한 작품인데 이 전시에서 다시 만나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보듯 반가웠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 이어지는데 작품 보존 때문에 중요 작품이 교대로 전시되어 다 보려면 네 번은 발걸음을 해야 한다.히토 슈타이얼 전시에 나온 <소셜심>(2020) 스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1호 (2022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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