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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의 ‘영화와 소설 사이’]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vs 이민진 소설 <파친코> | 야쿠자의 피, 선지자 호세아… <파친코> 원작에만 있는 것들
입력 : 2022.04.26 17: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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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가 모습을 드러낸 뒤 출판 시장에는 <파친코> 원작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2018년 출간된 원작 <파친코>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 문학사상과의 판권 계약 연장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서점에서 판매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정상을 차지한 소설이 서점가에서 자취를 감추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만약 새 출판사를 찾더라도 번역과 편집 과정을 거치려면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추천도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인 소설 <파친코>는 도대체 어떤 힘을 내재하고 있고, 또 무엇이 다르기에 매번 화제의 중심에 서는 걸까. 2021년 9월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와의 단독 인터뷰를 앞두고 소설을 깊이 완독한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민진 작가는 “나는 늘 역사적 불평등을 탐구하고 싶었고, <파친코>는 그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가 개봉한 직후 소설을 다시 펼쳐 읽으며 밑줄을 그어봤다. 드라마 <파친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은 <파친코>를 꼭 정주행한 뒤 이 글을 읽기를 권한다. 아이폰 유저가 아닌 안드로이드폰 유저는 구글 브라우저 크롬에서 원활하게 시청 가능하다.
드라마에선 이삭의 이런 결심의 과정이 압축적으로 묘사돼 있다. 원작엔 이삭의 난해한 결심에 관한 스토리가 자세하다. 이삭의 선택은 소설에서 대단히 종교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평양 부잣집 아들 이삭은 과거에 세 명의 미혼모가 걸어간 삶과 죽음을 근거리에서 목격한 바 있었다. 그중 두 미혼모는 배가 불러오자 자살했다. 식모였던 또 다른 한 미혼모는 남편이 죽어버렸다고 거짓말하며 자식의 근원을 숨겨야 했다. 비운의 기억을 가진 상황에서 이삭은 선자의 임신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때 이삭은 성경의 한 인물을 떠올린다. 선지자 호세아였다.
성경 ‘호세아서’에 따르면, 선지자 호세아는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고멜과 혼인하여 자식을 낳는다. 이삭은 자신이 걸어야 할 삶의 방향이 호세아의 그것을 닮으리라는 사념에 휩싸이게 된다. 이삭은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호세아에게 ‘창녀’와 결혼하여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들을 양육하게 하셨죠. 선지자 호세아를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파친코> 제1권, 105쪽) 드라마에서 생략된 이삭과 호세아의 전언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삭에게 선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삭은 한수의 자식을 품은 선자를 사랑함으로써 선자를 세속으로부터 구해냈다. 한 여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는 종교적인 행위가 되는 이유다. 이후 이삭은 자신의 삶 전체를 희생양 삼아 선자를 구한다. 성경에서 이삭이 신의 명을 따른 아브라함에 의해 제단의 제물로 바쳐질 뻔했다는 사실까지 떠올린다면 이삭의 이름에 담긴 의미까지도 이해 가능해진다.
소설 <파친코>에서 선자와 한수가 사랑으로 만든 아이의 이름은 노아였다. 선자는 이삭과 혼인한 뒤 한수의 첫째 노아를 출산했고 이삭과의 임신으로 둘째 모자수를 낳았다. 노아와 모자수는 생부가 다른 형제다. 소설에서 노아의 삶은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젊어서부터 음지를 드나들던 모자수는 일찌감치 파친코의 세계로 진출했지만 형 노아는 와세다대를 다니는 수재일 정도로 양지의 세계에 거주했다. 그런 노아를 아끼며, 친부 한수는 선자의 반대 속에서도 노아의 학비와 생활비를 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 한수가 오사카의 흔한 사업가가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야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와세다대를 자퇴한다. 떠나기 전, 노아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이 피는, 제 피는 조선인의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이 피가 야쿠자의 피라는 걸 알았어요. 내가 야쿠자의 돈을 받아서 학교를 다녔어요. 이 더러운 오명은 절대 씻어낼 수가 없어요.”(<파친코> 제2권, 122~123쪽) 공교롭게도, 촉망받던 미래를 접고 집을 나간 노아가 발을 들이게 되는 세계 역시 파친코 매장이다. 처음부터 음지에 머물렀던 동생 모자수든,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일류대학을 다니던 형 노아든, 자이니치의 운명은 그들의 몸부림 이전부터 정해져 있다는 냉혹한 진실을 은유하고 있다. 노아의 모습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드러날지는 지켜볼 일이다. 소설에서 노아는 자이니치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극심한 회의를 느끼고 결국 권총으로 자살한다.
“둘 다 만주로 가서 돈을 번다는 생각에 흥분해 있어 가지고 어쩔 수 없었다 아이가. 시장에서 들은 얘긴데 공장으로 일하러 간 여자애들이 어딘가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 카대.”(<파친코> 제2권 11쪽) 이 부분을 감안한다면 복희는 동생 동희와 함께 만주로 떠났다가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 귀국해 조용히 지낸 것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1989년임을 상기하면 복희의 드라마 속 저 대사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낳는다. 한국 최초의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증언한 게 1991년이었으니, 1989년은 아직 위안부 피해자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배우 김영옥이 열연한 복희는 단지 부산 영도 시절 선자의 옛 지인인 복희 언니가 아니라 숨어 지내던 위안부 피해자 신복희다. 선자가 쏟는 눈물은 복희 언니가 겪은 끔찍한 고통에 대한 일말의 위로이며, 소설에 복희와 선자의 재회 장면은 전혀 없다는 점까지 기억한다면 이 장면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드라마적인 숭고한 변형이 아닐 수 없다.
[김유태 매경 문화스포츠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0호 (2022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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