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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명품 와인이야기] 이단아에서 전통의 수호자가 된 샤토 파비
입력 : 2022.04.05 14: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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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와인 생산지인 보르도의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다. 그 이유는 지역의 와인 등급을 가리는 ‘그랑크뤼’ 등급의 가장 높은 4개의 포도원 중 3곳, 샤토 오존, 샤토 슈발 블랑, 샤토 안젤뤼스가 이 등급을 탈퇴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미슐랭 가이드의 3스타 식당 대부분이 가이드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과 같다. 이 정도라면 가이드를 앞으로 계속 발행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제 가장 큰 질문은 그랑크뤼 등급의 왕좌에 유일하게 남은 샤토 파비가 계속 이 리스트에 남아 있으며 생테밀리옹의 전통을 수호할 것인가이다. 오랫동안 보르도 와인을 즐겨온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챘을 터이지만 이 질문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약 20년 전 지금의 주인이자 슈퍼마켓으로 재산을 쌓은 제라르 페르스가 샤토 파비를 인수하고 양조장과 포도밭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 때 동네 사람들과 많은 전문가들은 전통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샤토 파비를 크게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아마 지난 100년간 샤토 파비만큼 논쟁적인 포도원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 생테밀리옹을 방문하여 지역의 와인들을 시음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와인들이 매우 강하고 달고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눈을 감고 시음하면 이 와인들이 신대륙 와인인지 프랑스 와인인지 전문가들도 알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20년 전이었다면 지역의 유통업자를 찾기도 어려웠을 거라고 상상하였다. 마지막으로 샤토 파비를 방문했을 때 나는 샤토 파비가 오히려 지역의 다른 와인과 비교하여 얌전하고 균형 잡히고 오히려 지역의 전통에 가까운 와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샤토 파비의 맛은 20년 전에 시음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한 것은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와인 애호가로서 나의 마지막 질문은 오랫동안 지역의 맹주 역할을 해온 슈발 블랑이나 샤토 오존의 자리를 샤토 파비가 온전히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능성은 없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아시아 소비자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진다면 말이다.
[이민우 와인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9호 (2022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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