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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칼럼] 몸이 답이다
입력 : 2022.03.29 10: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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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CEO가 모두 행복한 것은 아냐 자신만의 ‘힐링 루틴’ 만드는 게 중요
그는 은둔의 경영자로 유명했고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도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TV로 자주 보게 된 건 몇 해 전 주식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였다. 결국 무죄로 풀려났지만, 당시의 고초가 그의 영혼을 잠식한 듯하다.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악화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필자는 업무상 많은 기업인들을 만나고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돌이켜 보건데, 성공한 CEO라고 모두 행복한 CEO는 아니었다. 수차례 데스밸리를 넘어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은 물론이고, 금수저로 태어나 큰 굴곡 없이 성장가도를 달리는 기업인들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위기들을 수없이 넘기며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많은 정보를 새로 습득해야 하고 조직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리더는 ‘다모클레스의 검’처럼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게다. 최근에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돼 한국에서 CEO로 산다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늘 조마조마하게 사업을 하는 게 숙명이란 하소연도 들린다.
기업인들만 그렇겠나.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각자의 짐을 안고 산다. 그리고 그 짐의 무게는 저울로 잰 듯 균일하게 매겨질 수 없다. 남의 눈에 들보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필자가 만난 기업인 중에 행복한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은 사업의 부침과 관계없이 한결같이 행복한 기업인으로 기억된다. 그는 대전 계족산에 황토를 퍼 날라 인공 황톳길을 조성했고, 아프리카 세이셀에서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엉뚱한 발상과 도전정신으로 괴짜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 역시도 기업인으로서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대전·충청지역의 대표 소주회사지만, 지역소주로서 태생적 한계를 딛고 주류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힘겨운 숙제를 안고 산다”고 했다. 게다가, 아트와 IT를 접목해 주목받은 체험형 테마파크 ‘라뜰리에’는 7년을 공들여 오픈했지만 코로나19로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미소와 에너지가 넘친다. 그에게 좌절하지 않고 늘 행복한 비결을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몸이 답이에요. 주류회사를 운영하다보니 밤마다 술 마실 일이 많아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듯 “몸이 답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에게 마라톤은 오롯이 자신만의 힐링 루틴이며 CEO로서의 짐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비법이다. 그는 매일 새벽 직접 조성한 황톳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달린다.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풀코스’를 80번 넘게 완주했다. 심지어 사위를 처음 만난 날, 20㎞를 완주해야 딸과의 결혼을 승낙하겠다는 ‘이색 조건’을 내걸었다. 마라톤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사위는 그날 이후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그는 요즘 아들, 사위를 비롯해 온 가족이 함께 마라톤에 출전하고 지역 맛집 탐방을 하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이름하여 ‘말아먹는(마라톤+먹는) 가족여행’이란다.
“마라톤이 아니라도 좋아요. 자신의 몸에 맞는 운동이나 힐링 포인트를 찾아서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봄이다. 코로나의 기승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꽃들이 대견하다. 이 봄, 한 번 달려 보자. 아니면, 걷기는 어떤가.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9호 (2022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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