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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의 ‘영화와 소설 사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장철수 영화 vs 옌롄커 소설 | 선전구호를 찢어발긴 인간의 존엄
입력 : 2022.03.03 16: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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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 런민 푸우(爲人民服務).’
중국 길거리 가판이나 공항 출국장에서 판매되는 여행 마그넷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문구다. 이 문장의 뜻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로, 1944년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 주석이 내건 중국 최고 권위의 정치 슬로건이었다. ‘마오’라는 단어조차 신성시되는 저 선전구호는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를 생각하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는데, 마오의 어록과 선집은 20세기 중엽을 관통하며 그야말로 중국인들 심연에서 경전화(經典化)되었다.
중국 유명 작가 옌롄커의 동명 소설을 원작 삼은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슬로건 ‘爲人民服務’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 연인의 비극을 들려준다. 취사를 전문으로 하는 하급병사 무광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고, 묻지 말아야 할 말은 묻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굳게 내재한 군인이다. 주석 말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하는 무광은 사단장과 그의 젊은 아내 수련이 거주하는 사택의 전문 취사병 직무에 배정된다. 부대 편제가 정비되면서 부대원들이 사라지지만 근면하고 성실한 무광은 사택에 유일하게 남겨진다. 군사위원회 회의로 사단장이 사택을 오래 비우자 수련은 무광을 침실로 끌어들인다. 네 살 연상인 수련은 무광에게 매력을 느낀 뒤 강압적 어조로 고혹적인 제안을 건넨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적힌 저 나무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있거든 내가 볼 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해.”
위태로운 만남은 파국을 맞고 부대의 해체, 무광의 전출로 슬픈 결말을 맞는다. 상황을 인지한 사단장은 둘의 과거를 묵인하나 수련의 태내에선 무광의 아들이 자라고 있다. 15년 후 중년이 된 무광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글자가 적힌 팻말을 손에 쥐고 사단장의 사택 문을 두드린다.
마오이즘 정신을 압축한 문장 ‘爲人民服務’를 일부라도 훼손하거나 모독하는 행위는 1970년대엔 그 자체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행동이었고, 이 같은 중국 내 분위기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옌롄커가 이런 위험한 내용을 소설로 쓴 건 탄압을 자초하는 지름길이었을 것이다. 철옹성 같은 금언이 성욕의 밀어로 전락하면서 무광과 수련은 자신이 그동안 잊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땀 흘리며 일한 무광에게 수련이 재차 강조하는 목욕도 단지 정사 이전에 치러지는 일상적 행위만은 아니게 된다. 그것은 개인의 주체성이자 본질을 회복하는 의례에 가깝다. 이처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주석의 무소불위 금언을 해체시킨 뒤 이념에 선행하는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주제의식으로 결집한다. ▶깨진 거울에 비친 연인 무광과 수련의 성적 일탈이 가지는 함의는 역설적이다. 먼저 무광은 주석 어록을 완벽에 가까울 만큼 섭렵한 인물이었다. 수련 역시 빼어난 외모만으로 사단장의 두 번째 아내로 발탁된 건 아니었다. 전직 간호장교였던 수련은 주석 저작을 심도 있게 공부한 ‘적극분자’로서 100개가 넘는 주석 어록을 단숨에 암송할 만큼 이념의 전통에 순응하던 인물이었다.
자신의 사랑이 상대보다 더 강렬했음을 증명하고자 무광과 수련은 주석의 석고상과 초상화, 액자를 모두 부순다. ‘나는 이처럼 위험한 행위를 감행할 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논리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진실의 교량, 예술 장철수 감독은 영화의 첫 장면에 다음의 문장을 넣어두었다.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영화라는 교량을 통해 표현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문장의 주인은 옌롄커였다.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어떤 진실한 삶의 모순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란 대개 진실 위에 내려앉은 세상이라는 이름의 더께 위에 구성되지만 그 알맹이를 궁금해 하며 그것을 기록하고 소묘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은 이들을 예술가라 부른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매혹시켰던 장철수 감독에게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심연은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계기였나 보다. 장 감독은 시사회 직후 판권계약 후 영화화까지 약 10년이나 걸렸는데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우리 시대의 반성문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을 원작 삼은 영화는 원작 소설의 육화(肉化)로 이해되지만 동시에 스크린에 전사된 이미지는 소설의 문장을 넘어서는 초월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물론 그 결과는 때로 실패해 ‘영상화해서는 안 되는 것을 기어코 영상화했다’는 아쉬움을 객석에 남길 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어떻게 기억돼야 마땅할까.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독자는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태 매경 문화스포츠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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