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칼럼] 불편한 이웃과 잘 지내는 법

    입력 : 2022.02.28 17: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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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폐막한 베이징동계올림픽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올림픽이었다. 무엇보다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정신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중화민족주의 ‘중국몽’이 채웠다. 게다가 100% 인공눈으로 치러진 최초의 동계올림픽이라는 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다. 기후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넷제로, RE100 운동이 글로벌 이슈가 된 마당에, 시대에 역행한 행사로 오명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쇼트트랙 편파판정으로 국민적 공분을 낳은 올림픽으로 기억될 만하다. 역설적이게도 그 과정에서 이번 올림픽은 우리에게 불편한 이웃과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줬다.

    불편한 이웃 중국과 갈등의 빌미는 쇼트트랙 황대헌 선수에 대한 편파판정이었다. 황 선수는 피해자였지만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황 선수는 물론이고 한국 쇼트트랙, 한국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심지어, 황 선수를 격려한 BTS RM 등 한국 연예인들에게까지 무차별 댓글 테러를 가했다.

    공정을 중시하는 한국의 2030세대가 반중 정서를 드러낸 것은 당연하다. 몇 해 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노재팬 운동’이 벌어졌던 것처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노차이나’ 조짐이 보였다. 정치권은 여기에 편승해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이었다. 확전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 싸움은 양국에 전혀 도움이 안 될뿐더러,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나, 중국 네티즌들이 ‘노차이나’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노코리아’ 운동을 벌이면, 애꿎은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의 1위 교역국이자 연간 200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국가가 아닌가.

    다행히 양국 갈등의 국면을 바꾼 것은 바로 황대헌 선수였다. 황 선수는 편파판정 시비에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했고 실력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논란을 잠재웠다. 불편한 이웃과 잘 지내는 방법은 감정적으로 대응해 분노만 해선 안 된다는 것, 실력으로 함부로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황 선수는 몸소 보여줬다.

    불편한 이웃과 잘 지내기 위한 또 하나의 열쇠는 갈등 상황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우리 편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황 선수를 격려했다는 이유로 중국 네티즌들의 악플 공세를 받은 RM의 SNS는 지금 악플 대신 보라색 하트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BTS 팬클럽 아미가 중국 네티즌들이 쏟아낸 비방과 조롱의 이모티콘을 보라색 하트로 덧칠해 댓글 창 ‘정화’ 작업을 한 덕분이다. 전 세계 아미가 한중 네티즌 갈등의 소방수 역할을 한 셈이다.

    오랜 세월 갈등의 빌미가 된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도 전 세계에 지한파가 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다.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지금, 한국의 소프트파워로 세계에 한국 문화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리고, 친한·지한파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중국은 시진핑체제에서 힘으로는 G2가 됐지만, 중화민족주의로 글로벌 스탠더드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같은 자국이기주의, 빗나간 애국주의가 외국인이나 낯선 사람을 배척하고 증오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로 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민족을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고 정의한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가 배타적, 국수주의적, 침략주의적 특성도 지니고 있어서 제국주의로 확장되면서 인종주의로 변질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한중일 삼국은 동북아와 세계 평화, 번영을 위해서도 협력해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다. 새 정부는 복잡하게 얽힌 G2와 동북아 정세의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한복, 김치, 심지어 윤동주까지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에게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소프트파워와 실력으로 우리 것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불편한 이웃과 잘 지내기, 쉽지 않은 도전이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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