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태의 ‘영화와 소설 사이’] 제인 캠피온 영화 <파워 오브 도그> vs 토머스 새비지 소설 <파워 오브 도그> | 냉대와 환대, 그 사이에 선 사람들

    입력 : 2022.01.26 17:47:33

  •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가 지난 1월 10일(한국시간)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오일남 역으로 TV시리즈·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오징어 게임>의 3관왕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기대를 모았지만 최다 수상 영예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연출한 뉴질랜드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에게 주어졌다.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작품상과 감독상, 그리고 남우조연상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파워 오브 도그>
    <파워 오브 도그>
    한국에선 덜 알려졌지만 사실 캠피온 감독은 세계 영화계의 미학적인 거장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바 있다. 1993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2편이었는데 한 편은 우리에게도 널리 익숙한 영화 <패왕별희>였고 다른 한 편은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였다. 인간의 불가피한 성(性)과 여성의 자발적 선택을 다룬 <피아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오스카 트로피’ 4관왕을 거머쥐었다. <파워 오브 도그>는 미국 작가 토머스 새비지가 1967년 쓴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캠피온 감독이 제작한 영화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는 신작 영화로, 미국 유명 소설가 애니 프루에 따르면 소설 <파워 오브 도그>는 출간 후 다섯 차례나 영화화 계약을 맺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화가 성사됐다. 제인 캠피온 감독과 넷플릭스, 골든글로브는 한 세기 전 무명(無名) 작가가 쓴 장편소설에 왜 열광했을까. 부모로부터 거대 규모의 목장을 상속 받은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남동생 조지(제시 필리먼스)와 25년째 목장을 경영 중이다. 상냥하고 이타적인 조지의 성품과 달리 필은 위압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으로 주변인의 악명이 높다. 필은 언제나 인생의 단독자인 듯이 행동한다. 목장에서 키우는 소의 ‘불까기’를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해낼 뿐 아니라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도 2주일쯤 안 씻는 일도 다반사였다. ‘역경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믿으며 나약한 감성을 거부하는 필에게 거친 들판은 오직 필 자신이 극복하고 지배해야 할 공간이었다.

    사진설명
    ▶영화로 부활한 무명작가 이야기 어느 날, 동생 조지가 식당 겸 술집을 운영하던 로즈(커스틴 던스트)와의 혼인 소식을 형 필에게 전한다. 필에게 로즈는 형제의 막대한 유산을 탐하는 승냥이에 불과했다. 로즈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는 의대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로즈가 피터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야 했으므로 로즈의 접근은 조지의 돈을 뜯어내려는 저의 때문이라고 필은 추측한다. 필은 로즈를 냉대하기 시작한다. ‘한 여성을 둘러싼 형제의 삼각관계’라는 뻔한 스토리를 예상하게 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벼린 칼날 같은 복수극, 마지막 5분을 남겨두고 영화는 피터가 계획한 설계도에 현기증마저 일으킬 정도다.

    원작 소설 <파워 오브 도그> 한국어 판권은 민음사에서 가져갔고 작년 10월 출간되어 현재 서점에서 읽어볼 수 있다. 주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장치는 소설에 더 선명하다. 영화에선 필이 피터를 조롱하는 소재로만 소개되고 마는 식탁 위의 ‘종이꽃’이 특히 그렇다. 피터가 어머니 로즈에게 자주 접어 건네는 종이꽃은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다. 감수성이 짙은 피터는 종이로 꽃을 접고, 로즈와 조지와 결혼식에 참석해서는 설교단의 장미를 유심히 관찰하며 탐하기도 한다. 왜 꽃인가. 생각해보면 꽃은 기본적으로 환대의 식물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매개가 바로 꽃이다. 그러나 환대의 감정은 필에 의해 오염되고 침범 당한다. 피터가 주름 종이를 접어 장식한 식탁의 장미를 필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 불쏘시개로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개 타인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적의, 하나의 호의다. 이를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면 냉대와 환대, 배타심과 이타심, 차가움과 따스함 등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카우보이로서 전근대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야성적인 필의 눈에 감성적인 사유로 타인을 환대하는 피터는 얼빠진 존재일 뿐이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선 먹잇감을 노리는 강자가 되지 못하면 약자로 전락해 결국 먹이의 운명에 처해졌다. 소설 <파워 오브 도그>는 저 오래된 인간세계의 강건했던 권력 구도를 전복시킨다. 최종 승자는 강하게만 보였던 필이 아니라 상대적 약자로 비쳐질지라도 묵묵하게 계획을 실천하며 살인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른 어린 피터였다.
    <피아노>
    <피아노>
    ▶약자가 심판자가 되기까지 극 중 가장 약해 보였던 피터가 승자로 도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사실(事實)이었다. 소설에서 피터는 오래전 자살한 아버지가 남긴 의학서적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피터는 ‘사실을 사랑하는 아이’(55쪽)였다. 책을 읽으며 사실들이 가득히 조합된 세계를 염탐하고 자기 안에 소화시켰다. 열두 살에 이미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그림을 베껴 그렸고 히포크라테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책을 탐독했다.

    책에서 획득한 ‘사실들’을 무기 삼아, 피터는 어머니 로즈의 삶에서 적대자 필을 제거한다. 필 때문에 삶의 파행을 겪었던 어머니의 실존적 구원을 현실화하기에 ‘사실의 조합’만큼 강한 무기는 없었다. 복수 직전, 필이 손을 다쳤다는 첫 번째 사실과 그 다친 손의 상처 깊숙이 자신의 조용한 무기를 찔러 넣을 수 있다는 두 번째 사실을 통해 피터는 계획에 성공한다. 그것은 야성의 세계로부터 감성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었다. 피터는 마지막에 말한다. ‘이제 그 개는 죽었다.’(363쪽)

    피터는 그런 점에서 심판자의 위치에 올라선다. 나약해 보이는 한 소년이 가장 강력했던 리더 필을 제거하는 동력은 더 공들인 폭력이나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 아닌 사실 그 자체였다. 사실을 자신의 방식대로 꿰고 엮음으로써, 피터는 가장 강력했던 지배자 필을 심판한다.

    사진설명
    ▶‘개의 아가리에서 날 구하소서’ 철학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연에 우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필연성에 의해 작용하게끔 결정돼 있다. 결과에는 늘 원인이 있고 인과관계를 관장하는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 주어진 원인이 있기에 필연적으로 결과가 파생된다는 공리도 스피노자의 것이었다. 원인과 결과를 모두 아는 것은 오직 신뿐이라는 명제를 받든다면 목장의 안녕을 기획하고 실행한 피터는 신의 자리까지 탐해볼 수 있다. 이것이 <파워 오브 도그>의 심연이다. 이 영화의 종교성은 제목(power of dog)에 이미 예상돼 있었다. ‘파워 오브 도그’는 개의 힘, 또는 개의 세력 등으로 직역될 수 있는데 소설에 따르면 구약성경 시편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은 ‘파워 오브 도그’를 ‘개의 아가리’로 번역했다.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저의 하나뿐인 소중한 것,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 주소서.’(시편 22장 20절) 개의 아가리는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삶의 공포를 통칭한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대적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새로 건설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유구한 역사이자 진화의 방식이었음을 영화는 명징하게 은유하고 있다.

    다음 장면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캠피온 감독의 방식은 앞서 언급한 영화 <피아노>에서도 동일했다. 여주인공 에이다 역의 홀리 헌터가 나무배 위에서 추락하는 피아노 줄에 걸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끌려 내려가는 장면은 명장면이었다. 피터의 기묘한 마지막 웃음과 에이다의 기묘한 마지막 추락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데가 있다. [김유태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7호 (2022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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