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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의 ‘영화와 소설 사이’] 제인 캠피온 영화 <파워 오브 도그> vs 토머스 새비지 소설 <파워 오브 도그> | 냉대와 환대, 그 사이에 선 사람들
입력 : 2022.01.26 17: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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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가 지난 1월 10일(한국시간)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오일남 역으로 TV시리즈·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오징어 게임>의 3관왕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기대를 모았지만 최다 수상 영예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연출한 뉴질랜드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에게 주어졌다.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작품상과 감독상, 그리고 남우조연상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파워 오브 도그>
원작 소설 <파워 오브 도그> 한국어 판권은 민음사에서 가져갔고 작년 10월 출간되어 현재 서점에서 읽어볼 수 있다. 주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장치는 소설에 더 선명하다. 영화에선 필이 피터를 조롱하는 소재로만 소개되고 마는 식탁 위의 ‘종이꽃’이 특히 그렇다. 피터가 어머니 로즈에게 자주 접어 건네는 종이꽃은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다. 감수성이 짙은 피터는 종이로 꽃을 접고, 로즈와 조지와 결혼식에 참석해서는 설교단의 장미를 유심히 관찰하며 탐하기도 한다. 왜 꽃인가. 생각해보면 꽃은 기본적으로 환대의 식물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매개가 바로 꽃이다. 그러나 환대의 감정은 필에 의해 오염되고 침범 당한다. 피터가 주름 종이를 접어 장식한 식탁의 장미를 필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 불쏘시개로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개 타인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적의, 하나의 호의다. 이를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면 냉대와 환대, 배타심과 이타심, 차가움과 따스함 등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카우보이로서 전근대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야성적인 필의 눈에 감성적인 사유로 타인을 환대하는 피터는 얼빠진 존재일 뿐이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선 먹잇감을 노리는 강자가 되지 못하면 약자로 전락해 결국 먹이의 운명에 처해졌다. 소설 <파워 오브 도그>는 저 오래된 인간세계의 강건했던 권력 구도를 전복시킨다. 최종 승자는 강하게만 보였던 필이 아니라 상대적 약자로 비쳐질지라도 묵묵하게 계획을 실천하며 살인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른 어린 피터였다.<피아노>
책에서 획득한 ‘사실들’을 무기 삼아, 피터는 어머니 로즈의 삶에서 적대자 필을 제거한다. 필 때문에 삶의 파행을 겪었던 어머니의 실존적 구원을 현실화하기에 ‘사실의 조합’만큼 강한 무기는 없었다. 복수 직전, 필이 손을 다쳤다는 첫 번째 사실과 그 다친 손의 상처 깊숙이 자신의 조용한 무기를 찔러 넣을 수 있다는 두 번째 사실을 통해 피터는 계획에 성공한다. 그것은 야성의 세계로부터 감성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었다. 피터는 마지막에 말한다. ‘이제 그 개는 죽었다.’(363쪽)
피터는 그런 점에서 심판자의 위치에 올라선다. 나약해 보이는 한 소년이 가장 강력했던 리더 필을 제거하는 동력은 더 공들인 폭력이나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 아닌 사실 그 자체였다. 사실을 자신의 방식대로 꿰고 엮음으로써, 피터는 가장 강력했던 지배자 필을 심판한다.
다음 장면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캠피온 감독의 방식은 앞서 언급한 영화 <피아노>에서도 동일했다. 여주인공 에이다 역의 홀리 헌터가 나무배 위에서 추락하는 피아노 줄에 걸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끌려 내려가는 장면은 명장면이었다. 피터의 기묘한 마지막 웃음과 에이다의 기묘한 마지막 추락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데가 있다. [김유태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7호 (2022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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