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모차르트 누나, 난네를의 삶이 스민 오스트리아 장크트 길겐

    입력 : 2021.12.03 10:52:33

  • 모차르트의 선율이 일 년 내내 흐르는 잘츠부르크에서 자동차로 30여 분만 달려가면 천혜의 아름다움을 가진 잘츠카머구트에 이른다. 이곳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우리의 백두대간처럼 맑은 호수와 울창한 숲이 우거진 오스트리아 중부의 자연경관 지역을 말한다. 독일어로 잘츠(Salz)는 ‘소금’을, 카머구트(Kammergut)는 ‘황제의 소금 창고’를 의미한다. 잘츠카머구트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장크트 볼프강, 그문덴, 장크트 길겐, 할슈타트 등이 있는데, 할슈타트의 ‘할(Hal)’도 켈트어로 소금을 뜻한다. 이 중에서도 장크트 길겐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도시이지만,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모차르트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 난네를(본명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이 결혼해 정착한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잘츠카머구트 초입에 있는 이 도시는 빙하가 녹아서 생긴 ‘볼프강 호수’를 중심으로 주민 4000여 명이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평온한 삶을 사는 곳이다. 아담하고 소박한 분위기의 작은 마을은 2005년 오스트리아 관광청으로부터 ‘모차르트 마을’로 선정돼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새로운 여행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케이블카를 타고 츠뵐퍼호른(1522m) 정상에 오르면 파란 하늘과 맑은 호수 그리고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장크트 길겐)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장크트 길겐)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 마을 깊숙이 발을 내디디면 아기자기한 예쁜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좁은 골목길에는 세월의 고즈넉함과 아름다움이 곳곳에 스며있다. 고개를 들면 알프스와 마주하고 옆길로 한 발짝만 벗어나면, 맑고 깨끗한 호수가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해준다. 발걸음을 호숫가로 조금만 옮기면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과 앙증맞은 집들이 물 위에 비쳐 마치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호수와 알프스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유유자적하게 호숫가를 둘러봐야 한다. 배에 의해 갈라지는 작은 물길 위로 가을 햇살이 춤을 추고,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이 쉴 새 없이 흐른다.

    장크트 길겐이 마지막까지 숨겨 놓은 자연의 비경과 풍요로움을 만끽한 후 마을로 다시 들어서면, 모차르트의 동상과 초상화 등 마을 어디에서나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차르트는 단 한 번도 외갓집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도시 어딜 가든 모차르트와 관련된 이야기뿐이다. 비록 모차르트는 이 도시를 찾지 않았지만, 장크트 길겐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이다. 크림색으로 칠해진 건물 창문에는 모차르트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누나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이 집은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바뀌었는데, 과거 이곳에서 모차르트 어머니가 결혼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또한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이 결혼한 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살림집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곳은 장크트 길겐의 법관이 사용하는 관사였는데, 모차르트의 외할아버지와 매형이 이 마을의 치안판사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누나의 살림집이 된 것이다.

    사진설명
    호수를 제외하고는 마을의 규모가 워낙 작아 여행지로서 큰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따스한 가을 햇살로 완전히 물든 마을 곳곳을 산책하다 보면 낯선 골목길에서 ‘난네를(Cafe Nannerl)’이라는 작은 카페와 마주한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넓은 창가에 앉아 스피커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를 듣고 있노라면, 모차르트와 난네를의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간다. 우리에게도 조금은 생경한 난네를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잘 연주했고, 작곡에도 능했던 음악가였다. 하지만 동생 모차르트가 ‘신의 총아’라 불렸고, 남성 중심의 봉건적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던 여성 예술가들처럼 난네를도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한 천재 예술가였다. 그나마 20세기 들어와 영국의 여자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제인 오스틴, 극단적인 선택으로 봉건주의에 저항한 버지니아 울프, 슈만의 그림자로만 살았던 클라라 슈만, 세계 최고의 음악가를 동생으로 둔 난네를 등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들이 영화나 책, 그리고 전시회를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화가 나혜석과 이성자, 문학가 전혜린 등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가부장적인 사회의 벽에 부딪혀 객관적인 잣대로 이들의 예술성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럼 모차르트의 누나인 난네를은 어떤 음악가였을까? 그녀는 1756년 모차르트가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봉건사회 테두리 안에 갇혔고, 타고난 음악적 재능은 삶의 뒤안길에 묻어 두어야만 했다. 물론 초창기에 아버지 레오폴트로부터 바이올린, 하프시코드(피아노 전신), 포르테피아노 등 10여 년 교육을 받아 소녀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결과 모차르트가 여섯 살 되던 1762년 6월, 아버지는 모차르트와 난네를을 데리고 독일의 뮌헨, 보름스, 마인츠, 본, 쾰른, 아헨 등을 거쳐 1766년 11월까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4년 동안 연주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주특기인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피아노를 치는 동생을 도왔다. 그 당시 여자는 피아노 독주를 할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남동생의 연주를 보조하는 역할이었고, 이것도 처음이자 마지막 남매가 함께한 연주 여행이었다. 1769년 모차르트가 이탈리아로 연주 여행을 떠날 때 누나 난네를은 함께 갈 수 없었다. 모차르트의 작곡 능력과 연주 솜씨를 돋보이게 하려고 아버지가 딸을 배제한 채 아들만 데리고 이탈리아 전역을 다녔다.

    난네를과 모차르트
    난네를과 모차르트
    그 후 난네를은 잘츠부르크에서 서서히 잊혀 가는 음악가로 전락했다. 그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여자이자 아버지에게 종속돼 순종적인 삶을 살아야만 하는 평범한 딸이었다. 또한 난네를은 육군 대위 출신의 프란츠 디폴트와 사랑에 빠졌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가 소개한 장크트 길겐의 판사인 요한 폰 조넨부르크 남작과 결혼했다. 판사와의 혼인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은 얻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음악적 삶은 완전히 단절됐다. 오롯이 8명의 자녀를 키우며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난네를. 반면 동생 모차르트는 유럽 전역에 ‘신의 총아’라는 별칭을 얻어가며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20여 년 동안 현모양처로 조용한 삶을 영위했던 난네를은 1801년 남편이 죽자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음악 교사로 활동하다가 78세 일기로 삶을 마쳤다. 만약 난네를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성공해 우리에게 또 다른 감성의 음악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장크트 길겐의 골목길과 호수에는 그녀가 이루지 못한 음악의 열정과 여자로서의 애틋한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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