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튀김요리의 뿌리는 고대 로마제국의 올리브 오일
입력 : 2021.10.06 17:32:53
-
음식을 매개체로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와 맞닥트릴 때가 있다. 이를테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서양 음식도 그 기원을 추적해 보면 결국 많은 부분이 고대 로마로 이어진다. 반면 시간과 공간적으로 로마제국과는 멀리 떨어진 동양, 그것도 21세기 극동에 사는 우리 음식만큼은 고대 로마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역시 꽤 많은 음식이 궁극적으로는 로마제국과 연결된다. 예컨대 집에서 또는 시장과 음식점에서 자주 먹는 야채튀김, 감자튀김과 오징어튀김 같은 음식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 중에는 기름에 부치고 지지는 음식은 많이 있어도 튀기는 요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펄펄 끓는 기름에 식재료를 순간적으로 넣어 튀기는 딥 프라이드(Deep Fried) 방식은 분명 조선시대 이래로 전해지는 전통 한식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음식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인데 일단 야채튀김, 해산물 튀김은 일본 튀김음식인 덴뿌라(天ぷら)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은 19세기 튀김음식이 서민들이 즐겨 먹는 대중음식이 됐다. 그리고 튀김의 유행 배경은 일본 근대 경제사와 맞물려 있다. 18세기 후반 지금의 도쿄인 에도는 인구 100만의 세계 최대 도시로 유럽의 파리나 런던보다 더 큰 도시였다. 인구가 많으니 당연히 상업이 발달했고 더불어 외식산업도 발전했는데, 이 무렵 에도 주변에서는 유채를 엄청나게 재배하면서 유채 생산이 크게 늘었다.
식용유인 카놀라유 생산이 늘었던 것인데, 특히 막부 주도로 유채 증산이 이뤄지면서 유채 기름이 널리 유통됐다. 덕분에 이전에는 등잔불을 켤 때나 사용하던 기름을 서민들도 쉽게 먹을 수 있게 됐다. 일본에서 채소튀김, 새우튀김이 대중음식으로 발달한 배경이다. 이후에도 식용유 문화가 퍼지면서 메이지시대 이후 돈가스를 비롯해 갖가지 서양의 튀김, 볶음요리를 받아들이는 토대가 됐다. 그러면 일본에는 19세기 이전, 그러니까 원래부터 튀김요리가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즐겨먹는 튀김요리의 유래인데, 그렇다면 튀김요리는 왜 하필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전해졌을까? 화제를 바꿔, 영국에도 튀김요리가 있다. 흔히 영국의 국민음식이라고 일컫는 피시&칩스(Fish&Chips)다. 밀가루 옷을 입혀 튀겨낸 생선튀김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18~19세기에 널리 퍼졌다. 산업혁명이 처음 시작된 영국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를 피시&칩스에서 찾을 정도로 노동자와 서민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준 국민음식이다. 빈부의 차이를 떠나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음식이지만 사실 피시&칩스는 전형적인 영국 음식은 아니다. 외국에서 들어 온 음식이 영국화됐을 뿐이다.
감자튀김은 18세기에 벨기에에서 전해졌다고 한다. 지금과 달리 예전 벨기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였고, 감자 역시 빈민들의 음식이었다. 평소 생선과 감자를 먹다 겨울에 강물이 얼어 생선을 잡지 못하면 감자를 생선처럼 가늘게 썰어 튀겨 먹은 것이 벨기에식 감자튀김, 프렌치 프라이즈(French Fries)의 유래라고 한다. 프렌치 튀김이니까 얼핏 프랑스에서 생겨난 음식 같지만 사실은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 주민이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형편없이 가난했던 벨기에 주민이 영국으로 이민 와 퍼트린 것이 영국 감자튀김 칩스(Chips)다. 생선튀김은 포르투갈에서 피난 온 유대인을 통해 전해졌다. 포르투갈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고기를 먹지 않았고 불을 피워 요리도 하지 않았기에 금요일 저녁에 생선을 튀겨 주일에 먹었다. 이랬던 포르투갈 유대인들이 17세기 극심한 종교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도망쳐 왔다.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그라나다 왕국을 몰아내고 이슬람 세력을 축출한 후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등 이교도들한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했다. 거부하면 죽임을 당했다. 이때 유대인 3분의 1이 희생됐다고 한다. 이 무렵 이 지역 유대인을 마라노(Marrano)라고 했는데 돼지, 더러운 X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핍박을 받았을지 별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거나 상당수 포르투갈 유대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으로 이주해 왔고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의 생선튀김 요리도 함께 전해졌다. 영국 국민음식 피시&칩스가 발달한 바탕이다.
일본 튀김 덴뿌라, 영국 튀김 피시&칩스, 그리고 간접적으로 프라이드 치킨이나 돈가스 같은 튀김의 상당 부분이 포르투갈 튀김요리의 영향을 받았는데, 16세기 이전의 포르투갈에서는 왜 그렇게 튀김음식이 발달했던 것일까?
여러 배경이 있지만 근본 이유는 당시 포르투갈이 올리브 오일 생산대국이었기 때문이다. 끓는 기름에 재료를 담가 순간적으로 고온에서 튀겨내는 딥 프라이드 방식의 요리는 기본적으로 기름이 풍부해야 발달할 수 있다. 일본에서 튀김음식인 덴뿌라가 발달한 배경은 18~19세기 지금의 동경인 에도에 유채밭이 널리 퍼져 유채 기름이 풍부해졌기 때문이고, 미국에서 프라이드 치킨이 생겨난 이유 역시 18세기 미국 남부에서 발달한 농업으로 돼지사육이 활발해지면서 돼지기름, 라드(Lard)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에서 튀김요리가 발달한 것도 올리브 오일이 많았던 것이 배경인데, 포르투갈은 지금도 페이스 프리토(Peixe Frito)라는 생선튀김이 유명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생선을 기름에 튀겨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또 올리브 오일 압착 기술에 대한 표준을 최초로 만들었고, 올리브 오일 착유 기술자 자격증을 최초로 만들었을 정도로 올리브 오일 산업이 발달했던 나라다. 그러면 14~15세기 포르투갈에서는 왜 올리브 오일 산업이 발달했을까? 사실 그 뿌리는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인은 일상생활에서 올리브 오일을 비롯해 엄청난 양의 올리브를 소비했다. 일인당 대략 연간 20~30ℓ의 올리브 오일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올리브 오일 많이 먹기로 유명한 현대 이탈리아인보다도 약 2배가 넘는 양이다. 로마시대에는 음식을 만들 때뿐만 아니라 세수할 때와 목욕할 때 그리고 화장할 때도 올리브 오일을 이용했고, 아플 때도 먹고 건물을 지을 때도 올리브 오일을 활용했다. 그런 만큼 전체 소비량을 대략 2만5000t(M/T) 규모로 추산한다. 이런 막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로마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광활한 올리브 숲을 조성해 로마제국에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을 공급하는 핵심 생산기지 역할을 맡겼다. 그렇기에 전통적으로 올리브 오일을 이용한 지짐요리, 튀김요리가 발달하기에 알맞은 환경이었다. 포르투갈 튀김요리의 시작을 멀리 로마시대에서 찾는 까닭이다.
음식 발달사가 역사적인 유물이나 기록을 통해 수학공식처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논리의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할 것만도 아니다. 넓은 시각으로 보면 로마의 문화가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처럼 로마 음식 또한 서양 음식 심지어 동양 음식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가 10월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