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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수수께끼, 슈베르트 필생의 역작에 얽힌 사연
입력 : 2021.09.30 16: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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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곡가들이 마지막 작품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갔다. 미완의 <레퀴엠(진혼 미사곡)>을 아내에게 맡기고 눈을 감은 모차르트가 그랬고, <교향곡 제9번 d단조>의 마지막 악장을 끝내 완결 짓지 못한 브루크너, <교향곡 제10번>을 불완전한 스케치로 남긴 말러도 그랬다. 하지만 유명한 <미완성 교향곡>을 남긴 슈베르트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미완성 교향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곡을 썼을 때 슈베르트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그의 앞에는 아직 6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통상 미완성 교향곡으로 일컬어지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7(8)번 b단조>는 교향곡 역사에서 손꼽히는 걸작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과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 그리고 이 곡을 묶어서 ‘3대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뭐가 그리도 특별한 걸까? 우선 이 곡은 다채롭고 매혹적인 선율들로 가득하다. 때로는 천상의 아늑함과 감미로움으로, 때로는 지극한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오는 그 선율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율의 대가’였던 슈베르트에게서만 가능한 종류의 것들이다. 아울러 이 곡은 독특하면서도 짜임새 탄탄한 형식을 바탕으로 장엄한 비극성과 심원한 서정성을 아우르고 있다. 그 드라마적 강도와 열기는 베토벤의 그것에 견줄 만하고, 낭만적 흐름의 아름다움과 애틋함은 차이콥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런데 이 곡을 정규 교향곡으로 보기에는 다소 어색한 면이 있다. 고전적인 교향곡은 대개 네 개 악장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이 곡은 겨우 두 개 악장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쪽짜리 교향곡’인 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악장까지는 완성되어 있고 세 번째 악장은 불완전한 스케치의 형태로 남아 있다. 다만 완성된 두 악장만으로도 구성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충분히 훌륭하기 때문에 ‘완성작 못지않은 미완성작’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처럼 불완전한 형태이면서도 정규 교향곡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 작품은 이 곡이 거의 유일하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먼저 써야 할 다른 작품에 신경 쓰느라 작곡이 중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1822년 11월에 슈베르트는 <미완성 교향곡>을 제쳐두고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일명 ‘방랑자 환상곡’의 작곡에 매달렸는데, 이 곡의 경우 헌정 받을 후원자로부터 미리 사례금까지 받아두었기에 완성을 서둘러야 했으리라. 그리고 <미완성 교향곡>을 다시 잡았을 때는 이미 영감과 흥미가 증발해버린 후가 아니었을까. 이쯤에서 (뻔한) 결론을 말하자면, 슈베르트가 다시 살아나서 말해주거나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자료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는 한 ‘미완성’의 이유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다면, 다음과 같은 낭만적 해석에 기대는 편이 오히려 속 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슈베르트가 더 이상 작품을 계속 쓰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가 더 이상 아무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발터 담스)
슈베르트
“은밀하게, 나는 내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네. 그러나 베토벤 이후에 누가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작곡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그는 같은 도시에 살았던 베토벤을 크게 의식했다. 존경하는 베토벤처럼 위대한 작곡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부단히 노력하되 그 아류가 되지는 않으려 했다. <미완성 교향곡>은 그 고군분투의 여정 끝에 도달한 첫 번째 정점이었다. 이 곡의 1악장을 들으면서 <운명 교향곡>의 영향을 짚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슈베르트는 자신만의 개성도 충분히 드러냈다. 특히 천국 같은 환상과 지옥 같은 현실을 대비시킨 듯한 2악장의 절묘한 아름다움은 온전히 그의 솜씨이다. 한편으로 이 곡에는 그의 자화상과 그가 살았던 세상, 그리고 그가 품었던 고뇌와 소망 등이 응축된 이미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보헤미안이 되기를 자청했던 청년 예술가의 소망과 포부,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볼품없는 사내의 아픔과 슬픔, 젊디젊은 나이에 몹쓸 병을 얻어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겨야 했던 외로운 음악가의 얼굴 등등, 듣다 보면 언뜻언뜻 이런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간다. 또 메테르니히 치하의 경찰국가였던 당시 오스트리아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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