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니들이 빌바오를 알아?
입력 : 2021.09.30 16:17:31
-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에서 마치 도시를 살리는 묘약처럼 인식되는 ‘빌바오 효과’도 그런 유의 하나다. 소위 “잘 세운 미술관 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라는 빌바오 사례는 20세기 말 도시를 바꾸는 문화시설이란 점에서 세계의 귀감이 되었다. 이후 이건희 기증관 유치경쟁보다 더 열정적으로 인천, 창원, 전라남도 등의 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구겐하임 분관 유치경쟁에 나섰고, 어느 도시는 타당성 연구용역비로 약 23억원을 지불했지만, ‘타당성 없음’으로 결론이 나 세금만 날리기도 했다.
이렇게 ‘빌바오 효과’에 매달려 마치 사이비종교의 신도처럼 자치단체장까지 맹신하며 유치경쟁에 나서는 건 실은 빌바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전말은 살피지 않고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위 벤치마킹이라는 ‘따라 하기’를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결과 동해안에는 해안 곳곳에 ‘스카이워크’가, 중부 지방에는 ‘출렁다리’, 서해안은 낙조 감상용 ‘전망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복제할 수 있을 거란 믿음과 ‘하면 된다’라는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결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말한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모방’은 가능하지만,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것은 외형만 보고 내부를 살피지 않은 탓이다. 도시재생과 창의도시를 위해 창조적 인간, 계급이 필요한 것처럼 새로운 미술관도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필요하다. 과연 광산과 철강, 조선의 도시를 간단하고 순조롭게 문화관광도시로 바꿀 수 있었을까. 그 이면을 보면 매우 정교하고 분명한 계획이 먼저였다. 사실 빌바오 효과의 중심은 구겐하임미술관이 아니다. 빌바오는 ‘역사 보전’ ‘강의 생태계 복원’ ‘차별화된 문화도시 건설’이란 목표 아래, 지난 25년 동안 120여 개의 프로젝트를 계획해 2010년까지 실천에 옮겼다. 즉 먼저 인프라에 투자하고 이후 가치에 집중해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인구 유입과 함께 떠나지 않는 도시로 완성해 성공한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그 앞에 있는 제프 쿤스의 작품 <포피>
메트로폴리 30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민간단체 대표들의 협의체라면 리오 2000은 메트로폴리 30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정책을 실행하는 공공기관의 대표들이 모여 있는 협의체다. 메트로폴리 30이 정책을 개발하고 계획을 세우면 리오 2000은 공공용지를 개발 또는 수용하고 수익이 발생하면 재투자하는 식이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국토해양부와 항만청, 철도청이 참여하며 바스크 지방, 비스크주, 빌바오시와 인근 도시의 대표들이 참여하는데, 리오 2000 또한 대표는 빌바오 시장이 맡고 있다. 그리고 전체 사업비의 80%는 공공부지 재개발을 통한 수익금, 10%는 유럽연합 기금으로, 나머지 10%는 빌바오시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한 대금으로 충당했다. 시행기관인 리오 2000은 도시재생 등 주민들의 협력과 이해가 필요한 사업의 경우 10년 이상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면서 소위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만, 구겐하임미술관, 지하철 건설 및 새로운 공항건설사업 등은 시민들의 항의와 반대를 무릅쓰고 아주 강력하게 밀어붙이듯 추진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메트로폴리 30이 빌바오시의 미래를 그려내는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기구임에도 도시재생을 지원하고 논의하는 장소를 마련해주는 창구 역할을 충실하게 지켜 도시재생의 주인공이 되려는 유혹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빌바오 지하철. 지구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지하철로 인정받고 있다.
2007년 보고서를 보면 빌바오 구겐하임 프로젝트는 총 2억2200만달러(약 2618억원)가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스크 대학의 경제학 교수 비트리즈 플라자(Beatriz Plaza)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설계비로 1110만달러(약 131억원), 컨설팅 및 실시, 구조설계회사인 아이돔(IDOM)에 640만달러(약 75억4000만원), 건축비로 1억1080만달러(약 1307억원), 구겐하임미술관 재단(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에 명칭사용료와 로열티로 2470만달러(약 292억원)를, 여기에 토지구입비로 990만달러(약 117억원), 작품수집비용으로 4450만달러(약 525억원), 기타 운영비용으로 3350만달러(약 395억원)를 개관 당시에 투입했다고 정리했다. 우리 돈으로 총 2842억5000만원이 투입된 셈이다. 하지만 ‘옳은 정책이라면 때로는 반대가 있더라도 일관되게 추진한다’라는 리우 2000의 철학을 바탕으로 밀어붙였다. 고속도로 1㎞를 건설하는 데 약 250억원이 들어간다고 추정했을 때 고속도로 11㎞를 건설하는 비용과 같다는 논리를 동원했다.
하지만 바탕에 자리 잡은 많은 시간 동안 축적된 빌바오의 시스템과 경험이 더욱 귀하게 작동했다. 바스크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장사로 번 돈을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함께 향유하는 공유경제의 ‘기업가정신’과 몬드라곤 협동조합(MCC·Mondragon Cooperative Corporation)같은 ‘사회적 경제’가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민들의 협력이 가능했다. 또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영도 중요하다. 소위 ‘지속 가능’한 시스템과 안정적인 재정여건은 필수적이다. 적극적인 마케팅 능력과 도시 브랜딩도 중요하다. 리드하는 관도 중요하나 민의 도움과 참여는 더욱 중요하다. 또 국민들을 설득하고 믿고 따라오게 할 수 있는 지도력과 정치력도 필요하다. 그냥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정준모]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