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작품이 난해하고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꾸준히 계속되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대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혁신성, 참신성 또는 도발적인 성향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일어나는 많은 미술현상들은 때로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우리가 통상 인지하고 있던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원칙이나 개념을 전면 부정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깡그리 무시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파격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오늘날 당연시되는 지동설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것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믿고 인정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과학적 발견이나 인문학적인 새로운 학설의 시작 또는 그 예고편, 실험은 대개 미술이나 음악에서 시작된다.
<피부를 판 남자> 영화 포스터
조토(Giotto di Bondone·1267~1337)에 의해서 시도된 원근법은 200여 년간의 실험과 시도 끝에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1452~1519)에 의해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가장 정확하게 평면에 옮기는 기술이자 과학으로 완성되었다. 이후 미술은 원근법을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를 부정하고 보이는 것의 본질을 탐구하는 쪽으로 관심이 전환되면서 모더니즘(Modernism)이 등장하고 추상미술이 미술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세상의 변화를 예고하고 이끌어 가는 것은 미술의 역할이자 예술가들의 당연한 몫이 되었다.
쇤베르크(Arnold Schonberg·1874~ 1951)는 장조와 단조에 기초한 음악의 조성을 해체해, 기존 음악의 형식을 부숴버렸다. 우연성을 음악에 도입해 연주하지 않는 연주, 소리 없는 음악을 시도한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1912~1992),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백남준, 남성 소변기를 전시장에 ‘작품’으로 전시한 뒤샹(Marcel Du champ·1887~1968), 자신의 똥을 통조림으로 만든 <예술가의 똥>의 작가 만조니(Piero Manzoni· 1933~1963) 등도 이런 혁신적인 실험을 통해 비범한 것의 평범화, 특별한 것의 일반화를 끌어낸 결과다.
현대미술의 이런 실험은 ‘예술’이라는 사회적으로 묵인된 예외를 통해 파격을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실험을 통해 사회와 시대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며 가장 리스크가 적은 실험을 예술가들에게 위임해 진행하는 셈이다. 우리가 현대미술가들을 지원하고 때로는 다소 과격하거나 예외적인 작품들을 용인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미술은 아무튼 낯설고 익숙하지 않고 편치 않다. 하긴 익숙하고 낯익은 데 새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만. 따라서 이런 예술가들의 파격적인 작품이나 삶은 소설이나 대중문화의 주제가 되거나 소재로 또 다른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영화의 경우 실제로 일어난, 하지만 ‘세상에 저런 일이’라고 할 만큼 믿기 어려운 일들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2020년 베니스 영화제의 오리종티(Orizzonti) 부문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피부를 판 남자>(The Man Who Sold His Skin·2020)도 ‘정말, 실화냐?’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영화로 미술작품이 된 한 사내의 삶을 그리고 있다.
<피부를 판 남자> 영화 포스터
영화는 요즘 세상의 모든 예술가에게 화두로 내던져진 내전과 사랑, 그리고 최첨단 현대미술(Temporary Art)에 관한 이야기다. 벨기에 출신의 현대미술가로 흔히 신개념미술(Neo Conceptualism) 작가로 알려진 빔 델보예(Wim Delvoye·1965~)의 2006년 작품 <팀>(Tim)을 다루고 있다. 빔 델보예는 드로잉, 조각, 사진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테크닉과 독창적인 미학, 범상치 않은 재료를 사용해 흥미와 경악, ‘다가가기’와 ‘물러서기’ 사이에 관객을 세워두는 작가다. 그는 장식적인 다양한 문양을 여행용 가방에 새겨 형태와 개념적 맥락을 비틀거나 고딕 양식으로 레이저 커팅된 건설장비 모양의 조각, 문양을 조각한 타이어, 그리고 돼지의 피부에 여러 가지 문양을 새긴 타투(Tatoo) 작업을 주로 한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일명 ‘똥 만드는 기계’라고 하는 <클로아카>(Cloaca)라는 작품으로, 고급식당을 선호하며 젠체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은 결국 똥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발한 작업으로 충격적이고 기발한 작업을 해왔다.
돼지 몸에 문신을 하던 그는 돼지 대신 사람의 등에 문신을 새겨 전시하는 ‘살아있는’ 작품을 시도한다. 이렇게 문신할 사람을 찾던 그는 화랑에서 일하던 여직원의 남자 친구와 계약을 맺고 2006년부터 2년간 그의 등에 문신을 새기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후 그는 작품이 되어 세계 곳곳의 전시장을 돌며 그의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죽은 후에 그림이 그려진 등가죽은 액자 속에 들어가 작품이 될 예정이다. 이름과 함께 가죽도 남기는 셈이다.
빔 델보예 루이비통 문양을 문신으로 새긴 돼지 ⓒ Wim Delvoye
2006년부터 2년간 그에게 등가죽을 제공한 팀 스타이너(Tim Steiner·1976~)의 이야기는 <피부를 판 남자>라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에서 팀은 샘 알리가 된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레바논으로 피난 온 청년 샘은 단순 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우연히 만난 예술가 제프리로부터 등을 팔라는 제안을 받는다. 등에 비자(VISA) 문신을 새겨 ‘살아있는 미술품’이 되면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말에 등을 내어준다. 그는 시리아를 떠나며 헤어진 여자 친구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예술계의 호화로운 파티에도 참석하며 지내지만 작품이 된 그는 등을 내주고 얻은 것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이 괴롭다. 영화는 작품인 동시에 상품이 된 샘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의 문제부터 모든 것을 사고파는 자본주의 대 인간의 존엄성, 현대미술의 한계 등에 대한 질문을 예리하고 깊이 있게 묻는다.
하지만 실제는 영화보다 더 엄혹하다. 2006년경 빔 델보예를 만난 팀 스타이너는 자신의 등에 약 2년여에 걸쳐 40시간 동안 문신을 위해 등을 내주었다. 실제로는 ‘비자’가 아닌 멕시코 스타일의 해골, 박쥐, 제비, 빨간색과 파란색 장미와 마돈나가 있고, 엉덩이 쪽에는 잉어를 타고 노는 중국식 어린아이 그림과 함께 오른쪽에 작가의 서명이 있다.
빔 델보예 <도나타(Donata)> 2005 돼지 등에 문신 ⓒ Wim Delvoye
2006년 문신작업을 하던 중에 처음 전시장에 등장한 그는 셔츠를 벗고 받침대에 앉아 대중에게 등을 돌려 앉아있는 일을 시작했다. 때로는 만지거나 상처가 될 만큼 심한 말을 하는 이들을 피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계약은 스위스의 매춘과 관련된 법 때문에 가능했지만 이후 그는 다시 한 번 <팀>이란 작품으로 팔려야 했다. 2008년 독일의 컬렉터 릭 라인킹(Rik Reinking·1976~)은 유대인 포로의 문신이 새겨진 인피(人皮)를 모았던 나치 장교의 아내 일제 코흐(Ilse Koch·1906~1967)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15만유로(약 2억6000만원)에 구입했고, 스타이너와 작가 그리고 화랑은 각각 3분의 1씩 나누었다. 물론 릭은 이 작품을 재판매할 권한을 가지며, 스타이너는 1년에 3회 이상 전시되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작품은 많은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 문제를 세상에 던져주고 있지만 한편으로 작품이 되어 보여지는 동시에 자신을 보는 이들을 보고 있는 작품 스타이너의 심적 변화나 생각이 더 흥미롭기도 하다. 그는 2017년 호주의 태즈매니아 호바트에 있는 모나 미술관(Museum of Old and New Art)에서 1년 내내 일주일에 6일, 하루 5시간씩 전시되어야 했다. 마치 미국 CIA의 고문 매뉴얼로 알려진 ‘쿠바르크(Kubark)’에서처럼 그는 등을 편 채로 꼿꼿이 앉아 있어야 했다. 당시 그가 느꼈을 ‘보여진다’는 감정과 자세를 유지하면서 겪었을 고통과 침묵, 이를 극복한 우월감 끝에 무너져 내리는 내적 갈등을 상상해 보면 그 자체가 더욱 영화 같고, 다른 한 점의 현대미술처럼 느껴진다. 그는 일이 없는 날에는 취리히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거나 여자 친구가 있는 런던에서 어슬렁거리며 소일한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