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종회 칼럼]도둑에게도 도가 있다
입력 : 2025.04.24 11:09:41
-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데
관세 폭탄만 퍼붓다간 공멸
공급망 재편 美 혼자론 안돼
동맹 손잡고 공동 전선 짜야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요즘 미국의 갈짓자 관세폭탄 행보를 보노라면 도둑의 도(道)를 설파한 장자의 우화가 떠오른다. 도척(盜跖)은 춘추전국 시대에 실존했던 전설적인 도둑이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그를 찾아가 유가(儒家)의 도덕을 훈계하자 도척은 “도둑에게도 도가 있다”며 도리어 자공을 나무랐다. 도척이 말한 진정한 도둑의 도는 이렇다. 첫째,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는 리더십(도둑질을 할 때는 먼저 들어간다). 둘째, 뒤처리까지 빈틈없는 완벽성(뒤따르는 자는 흔적을 감춘다). 셋째, 철저한 계획과 기획력(지략을 갖춘 자가 안에서 도모한다). 넷째, 외부 정세를 읽는 눈(눈치 빠른 자가 밖에서 기회를 엿본다). 다섯째,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훔치기 전에는 근심하고 훔친 뒤에는 두려워 한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춰야 진짜 대도(大盜)가 될 수 있다는 것. 도척은 “나는 한 번 훔치면 모두 평등해지고, 훔친 물건을 공평하게 나눈다”고 주장한다. 궤변 같지만 그 속엔 조직 운영의 기본이 녹아 있다. 원칙, 팀워크, 시스템을 갖춰야 도둑 조직도 유지된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벼르는 지금 미국은 어떤가. 대도도 못되고 잡도(雜盜)에 가깝지 싶다.
트럼프는 ‘공정한 경쟁’ ‘안보 협력’을 내세우며 동맹국들에게조차 미국 이익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한다. 한국에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미국 내 투자를 요구하며 압박 중이다. 미주·유럽·아시아 등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미국 시장을 쉽게 보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캐나다·멕시코·EU 같이 오랜 우방들과의 갈등을 자초하더니, 반미 정서가 거세지자 이를 누그러뜨리려 다시 중국 때리기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분위기는 이미 싸늘해졌다.
그 와중에 중국은 오히려 미소를 짓는다. 고율 관세를 뚫고 중국산 제품을 해외직구로 더 싸게 살 길을 열어 미국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둔황닷컴은 배송비와 관세를 포함해도 미국에서 구하는 것보다 더 싸게 물건을 판다고 한다. 사실 유명 브랜드 제품의 상당수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중국에서 생산된 것이다. “브랜드만 빼면 같은 품질”이라니 미국 소비자들도 솔깃해 몰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단순한 ‘강압’이 아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 고사를 되새겨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은 얽히고설킨 ‘세계 체제’ 속에서 돌아간다. 어느 한 축을 무너뜨려 자기만 이익을 얻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진지하게 원한다면, 점진적이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략 산업 육성도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철저히 계산한 뒤에 추진해야 한다. 손해본다는 감정과 고율 관세로 이익을 되찾겠다고 밀어붙이는 건 오산이다.
진정한 강대국은 무력이나 협박이 아니라, 권위를 갖고 설득으로 세계를 움직인다. 미국이 지금처럼 일방주의를 고수하면 남는 건 초조한 패권국의 초라한 뒷모습뿐이다. 동맹을 실질적 파트너로 대하면서 공동의 전략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원하는 미래가 보일 게다. 그게 바로 대국의 길이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6호 (2025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