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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권의 뒤땅 담화] 왼손잡이 미컬슨이 한국에서라면 성공했을까
입력 : 2023.07.06 1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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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가수 패닉의 <왼손잡이> 가사 중에서지난 4월 마스터스 대회는 스페인 출신 욘 람(29)의 우승으로 끝났다. 당연히 우승자에게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노장 필 미컬슨(53)의 활약이었다. 미컬슨은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아들뻘 선수들과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우승을 다퉜다.
비록 브룩스 켑카(33)와 함께 4타 차이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번 경기로 마스터스 사상 5위 이내에 든 최고령 선수가 됐다. 미컬슨은 최종 라운드까지 맹타를 휘둘러 앞서 기권한 타이거 우즈(48)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천명(知天命) 나이에도 그렇게 골프를 잘 치는 데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제야 하늘의 명을 깨달은 것일까. 파워 히트를 구사하는 그의 왼손 스킬은 오른손잡이인 내게 경이롭다.
미컬슨이 미국에서 태어났기 망정이지 한국인이라면 이처럼 화려한 영광을 안았을까. 왼손잡이 골퍼에게 국내 골프 환경은 너무 열악하다.
“실내연습장에서 혼자 면벽 연습하는 외로움, 인도어맨 마지막 타석에서 불안하게 그물망을 향해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게 불편하죠. 무엇보다 클럽을 구하기 어려워요.”
왼손잡이인데도 7년간 오른손으로 골프를 하다가 다시 왼손으로 전환해 13년을 이어온 어느 아마추어 골퍼가 인터넷에 올린 후기다.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1998년 그는 왼손 골프채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 고가여서 지인이 준 오른손 클럽을 받아 입문했다.
어린 시절 탁구선수로 활동하고 각종 구기운동에도 두각을 드러낸 그는 골프 입문 2년 만에 90대, 3년 만에 80대 타수로 진입했다. 하지만 늘 왼손으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미련을 품은 데다 간혹 스코어가 저조하면 후회와 회한이 밀려왔다고 한다.
왼손으로 다시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고수인 정형외과 의사와 동반 라운드를 하면서부터다. 오른손으로 샷을 하다 왼손으로 퍼트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가 왼손잡이라면 아예 왼손 골퍼로 돌아갈 것을 조언했다.
왼손잡이 골격과 근육은 오른손잡이와 완전히 다르게 발달해 오른손으로 골프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진단했다. 정형외과적으로 오른손으로는 잘 칠 수 없는 데다 부상 위험까지 있다는 경고마저 더해졌다.
그는 왼손으로 바꾼 이유를 쉽게 설명했다. 왼손잡이가 10m 앞에 놓인 깡통을 서너 번 만에 공으로 맞히는 데에 비해 오른손으론 좀체 왼손만큼 맞히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간신히 보조를 받고 비자금도 털어 왼손 클럽을 구입한 그는 1년 만에 80대에 진입했고 생애 처음으로 싱글 타수를 기록했다. 오른손 라이프 베스트는 81이었다고 한다.
왼손으로 바꾼 후 혼자 연습했는데도 구력 덕분인지 낯설지 않았고 오른손으로 칠 때보다 심적으로 훨씬 안정됐다. 롱 게임보다 쇼트 게임에서 확실한 차이가 있었고 이후 즐기는 골프 인생에 합류했다.
오랜 동반자들이 잘 받아주고 자신도 군더더기 없는 진행으로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쓴다고 한다. “평생 골프를 할 생각이면 왼손잡이 골퍼로 돌아가라”는 의사 조언을 오른손으로 골프를 하는 왼손잡이 골퍼에 게 전하고 싶다며 글을 맺었다.
필자도 얼마 전 왼손잡이와 골프를 한 적이 있다. 일단 특이했다. 우린 카트를 몸 뒤에 두고 티샷을 하는데 그는 카트와 마주한 채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반대로 우리가 카트와 마주하고 티샷할 때 그는 엉덩이를 우리 쪽으로 내밀고 스윙해 시선이 헷갈렸다. 우리와 그는 드로와 페이드, 훅과 슬라이스 등에서 모두 반대였다. 캐디도 슬라이스 홀을 공지하면서 “고객님은 훅을 조심하세요”라고 따로 설명했다. 골프를 끝내고 식사 자리에서 그는 왼손잡이 골퍼의 고충을 토로했다.
일단 동반자들을 헷갈리게 할까 봐 미안하다고 했다. 골프가 멘털 게임인데 심리적으로 동반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매장에서 클럽을 구하기 힘들고 대형 골프용품 업체 본사 매장에서 고가로 사야 하는 고충도 크다. 요즘엔 인터넷에서 필요한 클럽을 구매할 수 있어 그나마 괜찮다.
무엇보다 연습장에서 가장 애로를 겪는다. 왼손잡이가 드물어 항상 타석 맨 끝에 위치해 시원한 샷을 날리지 못한다. 연습장 가운데 타석에서 호쾌하게 그물망을 향해 공을 날리는 사람이 마냥 부럽다.
레슨을 받을 때는 교습가도 어려워한다. 오른손잡이 골퍼들만 레슨하다가 마주 보고 왼손잡이를 가르치면 교습가들도 처음엔 어리둥절하다.
운동선수 출신으로는 프로야구선수 이승엽(47)이 왼손잡이 골퍼다. 2003년 주위 권유로 입문할 당시 왼손으로 시작했다가 야구에 지장이 있을까 봐 2008년 오른손으로 바꿨다.
2013년 야구인골프대회에서 다시 왼손으로 돌아온 그는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사용하는 ‘스위치 골퍼’로 2017년 은퇴 이후 70대 타수를 기록할 만큼 기량도 뛰어나다. 필자의 직장 선배는 오른손으로 입문해 홀인원과 싱글 타수를 기록한 후 왼손으로 전환해 역시 홀인원과 싱글 타수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프로선수로는 버바 왓슨(45), 브라이언 하먼(36), 마이크 위어(53)도 왼손잡이다.
국내에선 왼손잡이 프로선수는 KPGA 회원 6400여 명 가운데 한 명도 없다. 왼손잡이도 골프에 입문하면서 대부분 오른손잡이로 바꾼다.
“오른손으로 골프를 하다가 왼손으로 바꾸는 초기에 7번 아이언으로 몇 번 연습하면 감각이 금방 돌아옵니다. 평생에 걸쳐 골프를 즐기려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좋을듯합니다.” 스포츠의학 전문가인 오재근 한국체대 교수는 왼손 전환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근육과 골격 측면뿐만 아니라 골프장 벙커나 해저드 등도 주로 오른손잡이를 겨냥해 설계했기 때문이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당시 동료들과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 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