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치열해진 루비 전쟁
입력 : 2023.06.30 09:35:38
-
55.22캐럿 에스트렐라 드 퓨라 루비 ©Sotheby’s 2023년 6월 8일은 루비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뉴욕 소더비에서 열린 매그니피센트 주얼스 경매에서 모잠비크산 ‘에스트렐라 드 퓨라’ 루비가 3480만 달러에 낙찰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루비는 다이아몬드를 제외한 모든 보석의 최고가 경매 기록을 경신하며 유색석의 제왕으로 우뚝 섰다. 게다가 신흥 생산지인 모잠비크의 루비가 전설적인 보석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섰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버마 vs 모잠비크올봄, 사실 보석업계의 관심은 ‘에스트렐라 드 퓨라’가 아니라 22.59캐럿의 ‘선라이즈 루비’에 쏠려 있었다. ‘선라이즈 루비’는 2015년 소더비 경매에서 3000만 달러에 거래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루비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8년 만에 크리스티 제네바 경매에 재출품된 것인데, 오스트리아의 억만장자 하이디 호르텐이 2022년에 사망한 뒤 남긴 소장품이었다. 버마산(버마는 미얀마의 옛 지명이지만, 보석계에서는 버마로 통용된다)인 데다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피전 블러드’ 레드(불타는 듯 밝고 강렬한 레드를 일컫는 용어로 최상급 루비에서만 가능한 색), 열처리를 하지 않은 독보적인 품질로 이미 업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했다. 천연 루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이즈, 컬러, 투명도, 까르띠에의 세팅, 그리고 유명인의 소장품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입증하는 모든 요소를갖춰 기대감도 한껏 고조된 상태였다. 그러나 경매 한 달 전, 하이디의 남편 헬무트 호르텐에 대한 나치 부역 의혹이 제기 되면서 낙찰가는 겨우 1470만달러에 그치고 말았다. 8년 전 가격인 3000만달러의 반 토막 수준이었다. 보석 시장에서 유대인의 영향력과 더불어 윤리적인 판단이 보석의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22.59캐럿 선라이즈 루비 ©Christie’s 2023 한편, 한 달 후 소더비 뉴욕에서 도전장을 던진 ‘에스트렐라 드 퓨라’는 ‘선라이즈 루비’와 동일한 3000만 달러를 추정가로 제시했다. 소더비에서는 채광 역사가 10여 년 남짓한 모잠비크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55.22 캐럿이라는 거대한 중량과 뛰어난 투명도, 피전 블러드 레드, 윤리적인 채굴 방식을 마케팅의 핵심 포인트로 삼았다. 결국 ‘에스트렐라 드 퓨라’는 3480만 달러(캐럿당 63만288달러)에낙찰되어 모잠비크산 루비도 버마산 루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공표했다.
루비의 세대교체버마산 루비는 16세기부터 높은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찍부터 고품질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니 경매에서 신기록을 세운 루비들 또한 모두 버마의 모곡 광산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루비가 대중들에게도 널리 보급된 것은 20세기 들어 지구 곳곳에 새로운 광산이 개발되면서부터다. 오늘날에는 버마 루비가 고갈된 시장에서 모잠비크가 세계 최고의 루비 공급원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23년 현재 세공된(Faceted) 루비의 50~70%를 공급하고 있으며, 열처리를 거쳐야 하는 낮은 품질부터 상질의 비가열 루비까지 다양한 종류를 자랑한다. 큰 사이즈의 고품질 루비가 고갈된 버마의 경우 비가열 피전 블러드는 1캐럿조차 찾기 어렵지만, 모잠비크에서는 1~2캐럿도 안정적으로 생산되며 5~10캐럿대도 종종 발견된다. 모잠비크산 루비는 신흥 생산지로 시장 가격이 버마산 루비보다 낮게 형성되어 있었지만 고품질 루비 광산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꾸준히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버마산에서만 발견되던 피전 블러드 색상 또한 모잠비크산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에스트렐라 드 퓨라가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모잠비크산 루비가 버마산 루비에 못지않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한 것이다.
데브 셰티 퓨라젬스 CEO이번 소더비 경매에선 퓨라젬스에서 생산된 루비가 최고 가격을 기록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잠비크의 루비 채광에는 영국의 광산회사 젬필즈(Gemfields)가 가장 먼저 진출했고, 두바이의 퓨라젬스(Fura Gems)와 인도의 젬록(Gem Rock)이 2021년부터 합세했다. 퓨라젬스의 설립자이자 CEO인 데브 셰티(Dev Shetty)를 뉴욕에서 직접 만났다.
©Fura Gems 이번 경매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에스트렐라 드 퓨라’는 퓨라젬스에서 생산하는 모잠비크산 루비의 품질을 전 세계에 알렸고, 버마의 명문인 ‘모곡 루비’를 대체할 수 있는 최고급 루비의 길을 열어주었다. 앞으로 모잠비크산 루비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며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공할 것이다. 현재 버마 루비는 고갈된 상태고, 오랜 기간 동안 인권 문제가 제기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다. 지속 가능성과 윤리적 생산을 표방하는 모잠비크산 루비가 대체제로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왜 경매 플랫폼을 선택했나.
2022년 7월 우리는 101캐럿의 루비 원석을 채굴한 후 에스트렐라 드 퓨라로 명명했다. 이런 크기와 품질을 갖춘 보석 품질의 루비는 이제까지 없었다. 한 세기에 한 번 있을 법한 위대한 발견이었다. 처음에는 원석 상태로 비공개 판매를 고려했는데, 루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마를 결정했다. 경매 플랫폼을 통해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모잠비크산 루비에 대한 수요와 열망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퓨라젬스에서 생산하는 모잠비크 루비는 어떤 특징이 있나.
일반적인 모잠비크산 루비는 어두운 빨간색에 형광성이 낮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퓨라젬스에서 생산하는 루비는 크롬 함량이 높고 철 함량이 낮아, 높은 형광성과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유명한 버마 모곡의 루비와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퓨라젬스는 모잠비크 루비 채광에서도 후발주자다.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퓨라젬스는 모잠비크 루비 채광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산지 증명을 추진하고 있으며, 가장 지속 가능성이 높은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의 비즈니스 키워드는 고용, 지속 가능성, 그리고 지역 사회다. 광산 지역에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환경을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이고 안정된 공급을 유지하고, 교육을 통해 보석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희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을 동경하는 수요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MZ세대는 자신들이 착용할 주얼리의 배경 스토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윤리적인 채굴과 아동노동 금지 같은 사회적 요소들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산지 인증을 통해 윤리적으로 생산 및 공급되는 청정한 루비를 보장한다. 이로써 모잠비크산 루비의 명성을 한층 높여 나갈 계획이고, 윤리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함께 제공하는 선도적인 회사로 성장하고자 한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과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