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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의 사례로 풀어보는 세금 이야기]위법한 세무조사였다면 세금 안내도 될까
입력 : 2023.06.29 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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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서울시 도곡동 소재 아파트와 강원 원주시 소재 전원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철수는 부모님과 서울 아파트에 살다가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지자 부모님을 원주 전원주택으로 모셨다. 이후 철수는 서울 아파트를 매도하였는데, 원주 전원주택이 주택이 아닌 별장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여 1세대 1주택 특례규정에 따라 서울 아파트의 양도소득세로 1억원만 납부하였다.
역삼세무서는 1세대 1주택 특례규정 적용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철수는 세무공무원에게 서울 아파트에 거주했고 원주 전원주택에는 휴양 목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놀러간다고 설명했다. 이에 역삼세무서는 ‘원주 전원주택은 별장으로 주택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양도소득세를 추가로 부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3년 후 역삼세무서는 과거 세무조사가 불충분했다며 철수에게 원주 전원주택 관련 전기사용료 자료를 요구하였다. 이를 받아 검토한 역삼세무서는 전기사용료를 볼 때 원주 전원주택은 사실상 주거로 사용하는 주택이 분명하다며 1세대 1주택 특례규정을 배제하여 철수에게 양도소득세 5억원을 추가로 부과하였다.
납세자에게 납세의무가 있는지 국가가 조사하는 절차를 세무조사라고 한다. 탈세를 막고 적정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세무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무조사는 그 자체로 납세자에게 큰 부담이다. 납세자가 적법하게 세무처리를 하려고 노력하여도 과세관청과의 견해 차이로 세금이 추가로 부과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무조사 기간 중 과세관청의 질문 및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과거 세무조사는 기업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했다. 정부에 밉보인 기업은 먼지 털기식 세무조사를 받
았다.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 내에서는 동일한 세금에 대해 반복해서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첫 세무조사로 일단 과세를 하고, 나중에 종전 세무조사가 불충분하다고 이유를 들어 기존에 조사를 마친 부분까지 반복하여 세무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과도한 세무조사로 인한 폐해를 막을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한동안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가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납세자의 권리 보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하여 국세기본법에 중복 세무조사 금지 등 납세자의 권리에 관한 관련 규정을 신설하였다.
중복 세무조사 금지란 동일한 기간의 동일한 세목에 대한 세무조사는 원칙적으로 한 번만 할 수 있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중복 세무조사에 근거한 과세처분으로 인정되면 그 과세처분은 위법하고, 과세관청은 새로 세무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납세자가 세법상 해당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납세자는 해당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사례를 보자. 소득세법상 주택인지 여부는 건물 공부상의 용도 구분에 관계없이 사실상 주거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판단한다. 원주 전원주택에는 철수의 부모님이 살고 있었으므로, 원주 전원주택은 소득세법상 주택에 해당한다. 따라서 철수는 서울 아파트를 양도할 때 주택인 원주 전원주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1세대 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 맞다. 그런데 최초 세무조사에서 역삼세무서는 철수의 말만 듣고 원주 전원주택이 별장이라고 잘못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역삼세무서는 다른 납세자들과의 형평을 위해 다시 세무조사해서 철수에게 양도소득세를 부과해야 하지 않을까? 대법원은 중복 세무조사 금지의 원칙상 위와 같은 경우에도 다시 세무조사를 할 수 없고, 새로 세무조사를 하여 진실을 밝혀냈다고 하더라도 과세처분을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5두3805 판결). 중복 세무조사에 근거한 과세처분의 효력을 부인해야만 과세관청의 위법한 세무조사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법원은 중복 세무조사로 얻은 과세자료 없이 동일한 과세처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과세처분은 위법하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6두55421 판결). 즉, 사례에서 원주 전원주택의 전기사용료 자료 없이 최초 세무조사에서 확보한 다른 자료만으로 원주 전원주택을 주택으로 볼 수 있어도 철수에게 양도소득세를 추가로 부과할 수 없다. 위법한 중복 세무조사가 있었음에도 단순히 과거 자료를 종합하여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본다면, 중복 세무조사 금지 원칙의 실효성이 크게 반감된다. 위법한 중복 세무조사에 근거한 과세가 허용되지 않는 이유가 과세관청이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하였다는 점에 있음을 생각하면, 위 결론을 수긍할 수 있다. 물론 공평과세의 원칙이 다소 희생되는 측면은 있다. 그러나 국세기본법이 ‘조세탈루의 혐의를 인정할 명백한 자료가 있는 경우’ ‘납세자가 세무공무원에게 직무와 관련하여 금품을 제공한 경우’ 등을 중복 세무조사가 가능한 예외로 인정하고 있어 중복 세무조사 금지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도 부작용이 크지 않다.
한편 실무상 이른바 ‘현장 확인’이 세무조사에 해당하는지 문제된다. 국세청 훈령인 「조사사무처리규정」은 사업자에 대한 사업장 현황 확인이나 기장 확인 업무 등의 목적에서 현장출장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는 세무조사가 아니라고 정하고 있다. 통상 현장 확인 후 정식 세무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납세자는 현장 확인이 실질적으로 세무조사에 해당하고, 이후 정식 세무조사가 중복 세무조사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현장 확인이 실질적으로 납세자로 하여금 질문에 대답하고 검사를 수인하도록 함으로써 납세자의 영업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재조사가 금지되는 ‘세무조사’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4두8360).
아이러니하게도 공평과세를 위한 과세관청의 지나친 조사가 오히려 공평과세 원칙을 해칠 수 있다. 과세처분의 근거가 적법하더라도 위법한 중복 세무조사가 인정되면, 납세자는 그에 따른 세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공평과세 원칙과 납세자 기본권 보장의 균형을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 본 칼럼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으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