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英 찰스 3세의 왕관과 왕실 보석 논란

    입력 : 2023.06.16 13:41:16

  • 지난 5월 6일, 영국에서는 찰스 3세 국왕의 왕위 계승을 세상에 공표하는 대관식이 개최되었다. 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이후 70년 만에 돌아온 역사적인 순간으로, 영국은 새로운 세대로의 이동을 자축하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대관식의 하이라이트는 국왕이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대관식 왕관을 수여받는 순간이었다. 왕권의 상징인 보주와 왕홀을 양손에 쥔 찰스 3세의 머리 위로 444개의 보석이 박힌 ‘성 에드워드 왕관’이 올라가자 트럼펫 소리와 함께 영국 전국에서 예포가 발사 됐다. 그런데 이 왕관은 무게가 무려 2.23㎏에 이른다. 따라서 대관식이 마무리되면 국왕은 조금 더 가벼운 1.06㎏의 ‘제국관’으로 바꿔 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나 버킹엄 궁전으로 향하는 것이 관례다. 평생 단 한 번 대관식에만 착용하는 ‘성 에드워드 왕관’과 달리 ‘제국관’은 영국 왕실의 업무용 왕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연례 의회 개회식 때 착용한 왕관이자 여왕의 장례식 때 관 꼭대기에 놓인 왕관이기도 하다.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찰스 3세에게 씌우고 있다.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찰스 3세에게 씌우고 있다.
    영국 왕실의 유산,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상징

    작년 9월,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별세 소식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와 함께 영국 왕실이 소유한 ‘크라운 주얼스 (Crown Jewels)’에 대한 논란도 재조명 되었다. 크라운 주얼스는 총 100개가 넘는 주얼리와 2만3000개의 보석으로 구성된 영국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산이다. 그러나 이 주요 보석들의 일부는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로부터 입수된 것이라는 다소 복잡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 특히 최근 대관식에서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쓴 ‘제국관’ ‘퀸 메리의 왕관’ 그리고 ‘퀸 마더의 왕관’이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다이아몬드만 총 2868개가 사용된 ‘제국관’의 핵심은 앞면에 박혀있는 컬리넌 2(Cullinan II) 다이아몬드다. 1907년 당시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트란스발(Transvaal·현재 남아프리카) 정부에서 에드워드 7세의 66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선물한 3106캐럿 컬리넌 다이아몬드의 일부다. 이는 당시 영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이 보어 전쟁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컬리넌 다이아몬드는 이후 9개의 메인 다이아몬드와 96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로 연마되었다. 그중 두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가 컬리넌 2로, 중량이 317.4캐럿에 이른다. 이처럼 ‘제국관’은 뿌리부터 영국의 식민주의, 보어 전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지금까지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자발적 선물인가 강압적 양도인가?

    또 다른 논란의 보석은 105.6캐럿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다. 이 보석은 작고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비(이하 ‘퀸 마더’)의 왕관에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인도에서 코이누르를 강제로 빼앗겼다는 주장과 함께 꾸준히 반환을 요구해왔다. 이들의 근거는 1850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코이누르를 ‘자발적으로’ 바친 것으로 알려진 시크 왕국의 마지막 왕 둘리프 싱이 당시 열 살의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코이누르가 거쳐 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가뜩이나 비호감 이미지로 멸시를 받아온 커밀라 왕비가 대관식에서 인도 식민지 지배의 상징인 ‘퀸 마더의 왕관’을 착용할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브렉시트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로 가득한 왕관을 새로 만드는 것 또한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했다. 결국 왕실은 1911년에 제작된 ‘메리 왕비의 대관식 왕관’을 재활용하는 카드를 택했다. 이에 더해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컬리넌 다이아몬드 3, 4, 5가 구원투수로 등판되었다. (모두 여왕의 개인 소장품인데 112년 전 코이누르 다이아몬드가 있던 자리에 세팅한 하트 모양의 컬리넌 5는 여왕이 가장 좋아했던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컬리넌 삼총사’로 인해 커밀라 왕비의 왕관은 코이누르가 장식된 ‘퀸 마더의 왕관’만큼이나 화려하게 재탄생했다. 보석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왕실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던 의도와는 다소 동떨어진 분위기랄까.

    대관식이 끝나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온 찰스 3세와 왕실 가족들이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시민들에게 인  사하고 있다
    대관식이 끝나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온 찰스 3세와 왕실 가족들이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시민들에게 인 사하고 있다
    현대적인 군주제를 향한 왕세자비의 행보

    한편 왕세자비 캐서린(일반적으로 케이트 미들턴으로 알려져 있음)은 왕실의 수많은 티아라를 뒤로한 채, 크리스털과 실버로 만든 헤드 피스를 딸과 함께 착용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는 오랫동안 왕족의 전유물이던 티아라가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패션 액세서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친환경적이고, 포용적이며, 작은 대관식’을 지향하는 왕실과 ‘현대적인 군주제’를 추구하는 차기 왕비의 절충적인 제스처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티아라는 예부터 왕실의 위엄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요소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캐서린의 파격적인 선택에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사랑스러운 모녀의 이미지는 확실히 굳힌 듯 보인다.

    식민 시대의 결산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손익계산서를 떠나 ‘횡재’한 입장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올바른 역사 해석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와 찰스 3세의 대관식을 통해 부각된 식민지배와 전쟁의 산물로서 왕실의 보석 논란은 근세에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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