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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걷기는 생각을 부르고 인간을 바꾼다
입력 : 2023.06.14 15: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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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시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 따르면, 어떤 비유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실 그 자체에 관한 진술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시간이 물처럼 흐르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다’ 같은 비유가 아마도 여기에 해당할 터이다. 시간과 물, 인생과 꿈을 잇는 비유는 우리 신체 감각과 너무나 선명히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이 말뭉치에서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다. 때때로 인간은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 사이를 걷는 여행자에 비유된다. 삶과 길을 단단히 묶어 이은 이 표현 역시 보르헤스식 절대 비유에 속한다. 인간은 무엇보다 걷는 존재인 까닭이다.
두발걷기는 인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인류 외에 다른 어떤 생명체도 두 발로 걷지 않는다. 대뇌가 생겨나 깊고 넓게 생각하는 힘을 얻기도 전에 인류는 먼저 두 발로 걸었다. 두발걷기로 진화하면서 인류는 해방된 두 손으로 도구와 무기를 제작하고, 포식자를 겨냥해 돌을 던지고, 채집한 식량을 운반하고,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추적하면서 긴 거리를 오래 달릴 줄 아는 능력을 얻었다.
걷기는 인간의 기본 몸짓이고, 본원적 존재 방식이다. 다리와 머리의 공진화는 인류 진화의 핵심 동력이다. 두 발로 걸으면서 우리는 뇌를 키워 생각 능력을 얻고, 도구를 발달시켜 포식자를 이겨내며, 손을 잡아서 우애의 기쁨을 깨닫고, 무리 협력의 힘을 길러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다.
독일 시인 베티나 폰 아르님은 걷기가 어떻게 생각을 만드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깥 공기를 쐬면서 걸어 다닐 때면 / 숲속을 걷거나 산을 오를 때면 난 느끼지 / 내 마음에 리듬이 있고, 그 리듬에 따라 생각한다는 걸.” 걸을 때 우리 몸짓은 변화하고 호흡은 달라지고 심장 박동은 우렁차진다. 걷기는 몸을 흔들어 정신을 깨어나게 하고, 마음에 리듬을 이룩하며, 생각의 흐름을 자극하고, 그 율동을 바꾸어 놓는다. 걷기는 뇌를 작동하는 스위치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푸른숲 펴냄)에서 독일 철학자 알베르트 키츨러는 “모든 문화권에서 길은 걸어 다니는 길과 삶의 길이라는 이중 의미로 쓰인다”라고 말한다. 신체가 공간을 가로지를 때, 우리는 생각의 미로를 깨뜨리고, 정신의 카오스를 이겨내고, 인생의 난장을 헤쳐나간다. 대지에도, 하늘에도, 생각에도, 정신에도, 인생에도 길이 있다. 예수는 말했다. “나는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동양에선 모든 길을 하나로 아울러 도(道)라고 불렀다. 도(道)는 머리(首)와 가다(辵)를 하나로 합친 말이다. 본래 이 말은 영령이 깃든 머리를 들고 삿된 것을 무찌르면서 나아가는 행위를 뜻한다. 도를 좇아 길을 걷는 사람은 사악함이 없으니 생각이 참되고 바르며 이치에 맞다. 붓다는 여덟 가지 똑바른 길(八正道)을 걸어야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방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걷기의 힘을 잃었다. 우리는 일상의 평균 70%를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보낸다. 인간이 의자 생활자로 사는 시간은 1주일에 약 70~100시간에 이르는데, 이는 수면시간을 압도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종일 앉아 학교 수업을 받고, 학원에 시달리며, 공부와 과제 탓에 책상머리를 떠나지 못한다.
바이바 크레건리드 영국 켄트대 교수의 <의자의 배신>(아르테 펴냄)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날마다 8~14㎞ 걸을 때 건강하다. 앉아서 오래 생활하면 근육은 물러지고 뼈는 약화하며 관절은 삐걱대면서 신체가 천천히 어긋나고 뒤틀린다. 요통이 찾아오고 비만이 생겨나고 혈액순환이 늦어진다. 자신감이 무너지고 우울증이 찾아온다.
걷지 않으면 생각은 약해진다. 큰 변화 없는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정서적 예민함을 빼앗으며, 참신함과 창의성을 억제한다. 생각은 행동을 위해 존재한다. 환경을 바꾸어 주면서 현재와 다른 행위를 요구할 때, 우리 뇌는 활발히 작동한다. 그래서 니체는 말했다. “앉아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을 신뢰하지 말라.”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우리는 도를 좇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협동해야 발상도, 행동도 새로울 수 있다. 인간의 내적 경험은 몸이 움직이면서 감각하고 경험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걷기는 뇌를 움직이는 스위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사람 눈앞에, 마음에 펼쳐지는 풍경에 달려 있다. 걷기가 생각을 부르고, 인간을 바꾸는 이유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지혜의 상징이다. <오디세이아>는 그의 삶을 “많이 돌아다녔던”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한다. 온갖 곳을 다니면서 쌓은 수 많은 경험이 그의 꾀의 원천이다. 여행의 경험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답이 없을 때도 언제나 해결책을 찾아내고 상황에 맞춰 앎을 마련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걷는 인간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삶에 새로운 길을 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스어에선 방법을 메토스(methos)라 한다. 메토스는 너머를 뜻하는 메타(meta-)와 길을 뜻하는 호도스(hodos)를 결합한 말이다. 한마디로, 방법이란 통찰의 힘을 발휘해 닫힌 길 너머로 나아가는 일이다. 플라톤에게 앎은 걷기의 결과였다. 그는 새로운 인식을 얻고자 어떤 일을 천천히, 깊게 천착할 때 호도스란 말을 썼다. 데카르트 역시 잘 걷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바른길을 따른다면 아주 천천히 걷더라도 길을 벗어나 달리는 사람보다 훨씬 많이 나아갈 수 있다.” 탐구의 길을 걸어 방법을 찾으면 삶에 지혜와 통찰을 불어넣을 수 있다.
걷기의 힘을 활용하는 이들은 창의성을 그 대가로 얻는다. 마릴리 오페조 스탠퍼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가만 앉아서 고민할 때보다 야외에서 걸으면서 생각하면 아이디어 생산력이 몇 배나 증가한다. 걷기는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을 낳는 까닭이다. 수시로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을 마련하면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더 나아가 걷기는 좋은 삶에 이르는 통로를 연다. 길엔 인간을 바꾸는 영적 힘이 있다. 예수도, 공자도, 붓다도 모두 제자들과 함께 땅의 길을 걸으면서 하늘의 길과 인간의 길을 전했다. 걷는다는 것은 이런 변화에, 그 영적 신비에 참여하는 일이다. 독일 작가 알젤름 그륀은 말했다.
“걷는 일은 무언가를 숙고하는 것이고, 의미를 구하는 것이며,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길을 떠나는 자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
신체를 앞으로 옮기면서 걷기는 우리 사고의 흐름도 시간의 앞쪽으로 보낸다. 걸으면 가슴이 상쾌해지고, 생각이 개운해지면서 머릿속에 쉽게 다른 삶이 떠오른다. 걷는 가운데 우리는 지금까지의 삶이나 익숙한 사람들과 결별하고, 새로운 환경, 새로운 생각, 새로운 습관, 새로운 삶으로 향한다. 인간은 길 위에서 끝없이 변화하고, 진보하며, 성장하고, 성숙한다. 걷기는 우리 몸에는 균형과 힘을, 우리 마음에는 의미와 방향을 선사한다. 걷는 일을 멈추면 더 나은 삶을 향한 길도 닫힌다.
장은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