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권의 뒤땅 담화] 골프 카트 일등석에는 누가 앉나요

    입력 : 2023.06.14 14:09:15

  • “길도 잘 알고 입담도 좋으니 앞자리에 앉아요.”

    골프장 가는 길에 카풀을 하면서 선배가 필자에게 앞자리를 권했다. 사양하니까 아침부터 시간 지체하면 곤란하다며 눌러 앉히더니 출발했다.

    간혹 다른 사람 차에 동반자들이 얹혀 골프장에 갈 때 좌석 배치를 두고 고민된다. 나이, 친소관계, 성별, 체격등을 생각하면 고차방정식이다.

    모두 편한 친구 사이라면 구분 없이 앉아도 되지만 나이 차가 크거나 운전자와 모르는 사람이 동행하면 좌석 배치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친구 사이라도 운전자에게 가장 편하거나 교통 보조를 잘하는 사람을 조수석에 배치하면 여러모로 유용하다.

    운전자를 즐겁게 하면서도 차선을 바꾸거나 결정적인 기로에서 톡톡히 조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정신없이 수다만 떨거나 내리 침묵하고 졸면 운전자가 갈림길을 놓쳐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다.

    새벽에 서울 한남대교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남양주 소재 골프장으로 향하는 도중 청담대교를 앞두고 미리 오른쪽 4~6차로로 빠져야 한다. 조수석 사람과 마냥 얘기하다 차로를 바꾸지 못하고 그냥 청담대교로 진입해 무려 30분 이상 허비한 적 있다.

    인근에 유턴하는 곳도 없어 수서IC까지 가서야 빠져나와 차를 돌렸다. 예정된 아침식사도 못하고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티잉 구역으로 달려갔다. 첫 홀부터 OB를 냈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재미나는 얘기는 물론 간단한 식음료도 준비해 졸음운전을 방어하는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냥 전망 좋은 앞자리만 차지하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중요한 포지션이다.

    안전과 교통 안내, 그리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이런 역할에 무심하거나 운전자에게 낯선 사람을 옆자리에 앉히면 곤란하다.

    평소 친소관계를 고려해 운전자 옆에는 편한 사람을 앉히고 동반자 가운데 특히 친한 사람끼리 뒷자리에 나란히 앉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동반 부부를 갈라놓고 뒷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혀도 이상하다.

    조수석이 결정되면 뒤편 오른쪽엔 연장자나 노약자, 여 성을 배치하는 게 순서다. 차에 타거나 내릴 때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친구 사이라면 그냥 선착순이다.

    “양보하지 말고 일등석에 앉으시죠. 인격이 우선입니다.” 회원권 보유자가 골프장에서 덩치가 큰 동반자에게 카트 앞자리를 권하면서 웃으며 말했다. 덩치를 인격에 비유 했다.

    사진설명

    골프 카트에서도 자리 문화가 있다. 회원제 골프장에선 보통 회원권 보유자에게 앞자리를 내준다. 동반자들을 위해 골프장을 예약하고 경우에 따라 그린피를 절감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때 회원권 보유자는 동반자 가운데 연장자나 노약자, 여성, 체격이 큰 사람에게 앞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앞 자리는 뒷자리에 비해 넓고 전방 시야가 트여 상석이다.

    카트로 이동하면서 코스 구조와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어 매니지먼트에도 유리하다. 나 홀로 수납공간에 각종 소지품을 보관하기에도 안성맞춤이어서 카트 내 일등석이다. 좁은 이코노미 뒷좌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뒷좌석 수납공간에선 컵 구분이 되지 않아 무심코 옆 사람과 같은 커피를 마시는 해프닝도 나 온다. 소지품 보관도 원활하지 않다.

    반면 앞자리에선 공, 커피, 휴대폰, 지폐, 손가방을 따로 보관할 수 있다. 다리 뻗기도 편해 비행기로 치면 퍼스트 클래스급이다.

    모두가 비슷한 연배이고 잘 아는 사이라면 유달리 덩치가 큰 사람을 보통 앞자리에 앉힌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머지 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체격마저 비슷하다면 선착순으로 앞뒤 구분 없이 앉으면 된다. 골프 도중엔 진행 속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처음 배치된 좌석에 연연하지 않고 클럽을 휘두른 후 카트에 도착한 순서대로 앉는다.

    동반자들보다 한참 어릴 뿐만 아니라 그날의 주역이 아닌 사람이 앞자리에 털썩 앉는 경우는 삼가야 한다. 회원, 연장자, 노약자,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만 피해도 좌석 매너로는 무난하다.

    굳이 카트 좌석을 지정하지 않아도 되면 샷을 하고 카트에 도착한 순서대로 알아서 앉는다. 그래도 진행 속도와 동선을 고려해 먼저 친 사람이 티잉 구역 쪽 카트 자리보다 반대편이나 앞자리에 앉으면 좋다. 맨 나중에 샷한 사람이 티잉 구역에서 내려와 카트 뒤를 돌아가지 않고 바로 카트에 타고 출발하면 시간이 절약된다.

    간혹 뒷좌석 한가운데가 가장 좋을 때도 있다. 바람 불거나 추운 날 골프를 할 경우이다. 앞자리와 옆자리는 달리는 카트에서 외부에 직접 노출돼 강한 바람을 받는다. 가운데 자리에서는 양쪽에 앉은 동반자 덕분에 바람에 덜 노출되고 온기마저 받아 겨울철 일등석이다. 비 올 때도 마찬가지다.

    골프 전후 식사할 때도 약간의 좌석 매너가 있다. 모두가 친구 사이라면 선착순으로 편하게 앉는다. 서로 모르는 동반자이거나 나이 차이가 큰 연령대가 섞이면 좀 다르다. 일단 그날 골프모임을 주재한 사람을 기준으로 배치 한다.

    주재한 사람이 가장 예우해야 할 사람을 맞은편에 앉게 한다. 주재한 사람 옆에는 자신과 동행했거나 편한 사람이 앉는다.

    다시 말해 세 사람을 초청했다면 초청한 사람 맞은편 1순위, 그 옆 좌석 2순위, 초청자 옆 3순위가 된다. 대화에 어색함을 피하려는 배려이다. 권위적인 서열을 따지는게 아니라 대화의 장과 분위기를 고려함이다.

    “골프를 하면서 경직된 좌석 문화를 고집해도 곤란하지만 분위기와 매너를 고려할 상황이 분명히 존재하죠. 매너는 필드에서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은 “골프 매너를 말할 때는 바로 이 부분까지도 연장선상에 있다”라고 말한다. 좌석 매너는 이해 불가한 고지식한 관습에서 나온게 아니라 배려와 존중의 의미가 스며 있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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