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의 주인공들

    입력 : 2023.05.12 14:42:07

  • “마침내 천연 다이아몬드가 종말의 길에 들어섰다!”

    1954년 제너럴일렉트릭이 합성 다이아몬드를 최초로 개발했을 때 언론은 앞다퉈 암울한 전망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지난 70여 년간 천연 다이아몬드와 합성 다이아몬드는 ‘무사히’ 공존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다이아몬드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합성 다이아몬드가 공격적으로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데다 러시아의 전쟁 도발이 불러온 각종 이슈 때문이다.

    합성 다이아몬드(이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주얼리 ‘브랜드’가 붙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중반부터다. 그러다가 2018년 미국의 연방통상위원회(FTC)에서 합성 다이아몬드도 ‘다이아몬드의 정의’에 포함된다는 수정 가이드를 발표하면서 상품화에 가속이 붙었다. 막대한 설비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공급이 증가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소비 시장이 창출되었고, 친환경과 윤리적 소비를 내세운 마케팅은 상품에 ‘에지’를 더했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자연의 선물’이라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지혜가 낳은 축복’이라고나 할까. 2023년 현재 소비자 접점에서 시장을 이끄는 주역들은 과연 어떤 행보를 펼치고 있을까?

    루식스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루식스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기존 주얼러들의 영역 확장을 위한 잰걸음

    현재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소매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기존 주얼리 브랜드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 등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천연에서 랩그로운으로 상품군을 확장하거나 아예 랩그로운으로 ‘갈아탄’ 경우다. 이들은 전 세계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열풍에 부응하는 지속가능성 마케팅에 총공세를 펼치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에서 랩그로운 영역으로 확장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브릴리언트 어스(Brilliant Earth)’를 꼽을 수 있다. 2021년 나스닥에 상장한 블록체인 기반의 주얼리 기업으로 천연·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함께 취급하고 있다. 브릴리언트 어스는 2005년 창업할 때부터 ‘윤리적으로 생산된 약혼반지’를 모토로 캐나다, 나미비아, 보츠와나의 다이아몬드를 소싱해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에는 상품 리스트에서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를 전량 삭제하는 등 윤리적인 주얼리 시장 개발에 실질적인 공헌을 한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랩그로운 나석만 5만 개 이상과 폭넓은 디자인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온라인 다이아몬드 주얼리의 개척자로 널리 알려진 ‘블루나일(Blue Nile)’은 작년 8월에 ‘시그넷 주얼러스’에 합병된 이후 1~4캐럿대의 큰 사이즈와 고가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로 상품군을 확대했다. 크리스털 제품 기업 ‘스와로브스키’도 0.25캐럿 이상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에이티드 다이아몬드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다. 2021년 ‘다이아몬드의 민주화’를 선언한 ‘판도라’는 아예 천연 다이아몬드 사용을 중단하고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라인인 ‘판도라 브릴리언스’를 론칭했다.

    랩그로운 전문 브랜드들의 차별화 전략

    한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들은 지속가능성 스토리텔링은 기본이고 후발주자인 만큼 상품의 차별화와 유통 채널 확대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2018년에 ‘드비어스’가 론칭한 ‘라이트박스’는 론칭 당시 캐럿당 80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대와 등급을 매기지 않는 판매 전략으로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주얼리용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이 실질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을 때가 라이트박스를 론칭한 시점과 일치할 정도로 그 위상이 공고하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요청이 쇄도함에 따라 기존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과 프린세스 컷에 바게트 컷과 쿠션 컷을 추가해 팬시 컷 컬렉션을 늘려가고 있다.

    랩그로운 다아이몬드를 사용한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플라즈마.
    랩그로운 다아이몬드를 사용한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플라즈마.

    미국의 ‘브라이(Vrai)’는 세계 최초로 탄소 중립 인증을 받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업체 ‘다이아몬드 파운드리’가 인수한 브랜드다. 현재 셀프리지, 삭스 피프스 애비뉴, 모다 오페란디 등 고급 유통 채널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12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프리미엄 전략의 일환으로 올해 뉴욕의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 추가로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또 하이엔드 브랜드의 비스포크(고객맞춤) 서비스와 같은 맥락의 ‘컷-투-오더’ 서비스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다이아몬드의 ‘출신이나 출처’를 넘어 고객 체험 마케팅으로 차별화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와 결혼한 메건 마클이 착용하면서 인지도를 올린 벨기에의 ‘키마이(Kimaï)’ 또한 럭셔리 이테일러(e-tailer) ‘네타포르테’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프랑스의 ‘쿠르베(Courbet)’는 고품질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재활용 골드, ‘메이드 인 프랑스’의 장인정신, 첨단 디지털 기술을 회심의 한 방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내에서는 2022년 12월 ‘SSG닷컴’이 국내 이커머스 유통업계 최초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공식 브랜드관을 오픈하며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도 뛰어들었다

    천연 다이아몬드의 희소가치를 고수하던 럭셔리 분야에서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대한 반감이 다소 누그러지는 분위기다. ‘LVMH’는 2022년 6월 산하의 투자회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 스타트업 ‘루식스(Lusix)’에 투자했다. ‘태그호이어’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로 제작한 ‘까레라 플라즈마’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고, ‘브라이틀링’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장착한 ‘슈퍼 크로노맷 오토매틱 38 올진스’를 출시하며 2024년 말까지 전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매년 100% 이상의 성장률과 10~20%의 가격 하락을 보이고 있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의 흥망성쇠는 저가 공세를 넘어선 차별화된 브랜딩에 달려 있다. 벌써 맞춤형 커팅이나 컬러로 무장하거나 프리미엄 감성을 더해 상위 진입을 노리는 브랜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격이 하락하고 품질이 평준화될수록 특화된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불멸의 진리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컨설턴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2호 (2023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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