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아름의 차곡차곡 술 이야기] 생명과 에너지가 넘치는 쥐라 와인

    입력 : 2023.05.11 15:18:21

  • 쥐라(Jura)는 부르고뉴와 스위스의 산악 국경 사이,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와인 산지다.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와인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쥐라 와인은 프랑스 전체 와인 생산량의 0.2%에 불과해 거의 대부분이 내수 시장에서 소비되어왔다. 그러다 최근 10년 사이에 프랑스 내추럴 와인의 중심지로 주목받으며 쥐라는 소믈리에, 와인 애호가들에게 각광받는 산지로 뜨고 있다. 부르고뉴의 와인 생산자들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이곳의 땅을 사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점점 더 땅값이 상승하며 쥐라의 좋은 포도밭을 선점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산량까지 줄어들며 쥐라 와인의 희소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사진설명

    셰프들이 먼저 알아본 와인, 뱅존

    쥐라 지역은 규모는 작지만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낸다. 우선 사바냥(Savagnin)이라는 품종으로 만든 ‘뱅존(Vin Jaune)’은 처음 맛보는 사람들에겐 약간의 충격을 선사할 만큼 개성이 강하다. 6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하여 샛노란 황금색을 띠는 화이트 와인으로 드라이한 셰리와 비슷한 뉘앙스를 가졌다. 2014년 안시와인을 설립한 최정은 대표는 그동안 쥐라의 생소한 와인을 국내 소개해왔다. 뱅존 역시 그가 처음으로 한국에 수입했다. 최 대표는 아무리 이메일을 보내도 대답이 없던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고자 쥐라에 2주간 호텔을 잡고 알음알음 와이너리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쥐라 와인이 주목을 받던 때는 아니었어요. 수입한 와인을 팔게 되지 못할지라도 다양성을 위해 쥐라 와인을 국내에 꼭 소개하고 싶었죠. 유명한 지역이나 등급을 받은 와인에만 치중되어 있던 당시 트렌드가 조금 아쉽기도 했고요. 요즘처럼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는 와인 시장에서, 생산자들의 자유로움이 존중받는 쥐라는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에 딱 맞는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특히 쥐라 지역의 전통 닭 요리인 코크오뱅존(Coq au Vin Jaune)을 맛보며 “개성 강한 쥐라의 와인이 우리나라 음식과도 훌륭하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뱅존은 양조 과정에서 와인이 효모나 산소와 접촉하며 만들어낸 독특한 향을 지녔다. 호두나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 사프란, 꿀 등의 향이 느껴지기도 하며 위스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뱅존은 소스에도 많이 사용되는 음식 친화적인 와인이다. 최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쥐라 와인 시음회를 열었을 때 뱅존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봐주신 분이 메르씨엘의 윤화영 셰프님이세요. 뱅존 때문에 일부러 오셨다고 하면서 너무 좋아하셨죠. 국내에게 생소한 뱅존을 알리는 데 프렌치 요리를 하시는 셰프님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테루아의 힘을 보여주는, 갸느바와 록타방

    쥐라에서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품종은 사바냥(Savagnin), 샤르도네(Chardonnay), 피노누아(Pinot Noir), 트루소(Trousseau) 등 5가지다. 쥐라의 와인메이커들은 사라져가는 토착 품종을 재생시켜 와인을 생산한다. 이들은 땅을 존중하고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낸다. 이런 철학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인 장 프랑수아 갸느바(Jean Francois Ganevat)는 땅에 있는 모든 에너지나 자원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포도밭을 일군다.

    도멘 쿠르베  트루소  바이올레트, 도멘 필립반델  레투알
    도멘 쿠르베 트루소 바이올레트, 도멘 필립반델 레투알

    가장 자연적인 방법으로 포도를 키우고 조심스럽게 포도알을 수확한 후에는 다른 작업 없이 바로 압착에 들어간다. 압착 시간 역시 상당히 길게 하는데, 이 역시 포도알의 훼손을 최대한 막기 위함이다. 자연 효모만을 사용해 발효하며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고 최소 22개월 동안 숙성시킨다. 그의 와인을 마셔보면 테루아가 오롯이 반영된 와인이 가진 힘과 밸런스를 여실히 느껴볼 수 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마’에서 사용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도멘 드 록타방(Domaine De L’octavin)’도 쥐라 아르부아 지역에서 좋은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와인에 쓸데없는 건 넣고 싶지 않아요>에서 이곳의 와인메이커인 알리스 부보는 자신의 소신을 또렷하게 설명한다. 그는 와인이 발효를 멈추려고 하면 효모에게 말을 걸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 포도만을 믿고 나아간다.

    “정신분석 수준으로 와인과 저에 대해 분석해요. 이 와인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유무, 내가 뭘 원하는지,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아닌지 등 스스로에게 되묻죠. 록타방이 록타방인 이유는 제가 언제나 직감을 따르기 때문이에요.”

    순수함, 내추럴함이 담긴 쥐라 와인

    쥐라 와인은 어느 면에서는 굉장히 마니악하다. 그러나 한번 그 매력에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기존 와인과는 다른 뚜렷한 개성과 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쥐라 와인에 가볍게 입문하고 싶다면 ‘도멘 필립반델 레투알(Domaine Philippe Vandelle L’Etoile)’을 추천한다. 필립반델 역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가장 내추럴한 와인을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생산자로 예측할 수 없는 기후 가운데 맘고생하며 포도밭을 지켜온 그의 진심이 담긴 와인이다. 샤르도네(80%)와 사뱌냥(20%)이 블렌딩되어 비교적 편안하게 산화 캐릭터의 여운을 즐길 수 있다.

    쥐라의 뱅존과 화이트 와인을 충분히 즐겨봤다면 레드 와인인 ‘도멘 쿠르베 트루소 바이올레트(Domaine Courbet Trousseau Violette)’도 흥미로운 선택이다. 뱅존 최고의 산지로 손꼽히는 샤토-샬롱(Chateau-Chalon)에 자리 잡은 와이너리로 자생적으로 자란 풀을 이용한 유기 퇴비를 사용하고 바이오 다이내믹으로 포도밭을 경작한다. 트루소 품종 본연의 맛을 잘 살린 와인으로 잘 익은 체리, 부드러운 타닌, 스파이시함이 더해져 있다. 와인에 있어 순수함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느껴볼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김아름 술 칼럼니스트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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