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의 누보 파리] LVMH의 심장, 사마리텐 백화점

    입력 : 2023.05.04 14:30:40

  • ‘역사는 반복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남긴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의 말이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도 인간이 진보해온 건, 반복되는 사건들 사이에서 변화를 만들어낸 천재들 때문일 것이다. 2021년 6월 21일, 15년의 리모델링을 거쳐, 151년 된 백화점이 LVMH의 자부심으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마리텐 파리 퐁네프(La Samaritaine Paris Pont-neuf) 백화점.

    “이곳에는 세 가지 프랑스의 천재성이 있습니다. 예술적 천재성, 건축적 천재성, 그리고 경제적 천재성이 그것입니다.” 사마리텐 백화점의 재개장을 기념하며,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일갈한다. 세계 최고라는 프랑스의 자부심을 되찾고 싶은 그의 신념이 읽힌다.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라는 평가를 받는 냉혹한 사업가이면서, 스스로는 꿈을 파는 상인으로 자신을 칭하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그는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열어가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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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리텐 백화점의 시작은 1870년 퐁네프 다리 앞 작은 행상이었다. 행상의 주인 에르네스트 코냑과 그의 부인 마리 루이 제이의 목표는 명확했다. 당시 백화점들의 주 고객층이었던 부유층이 아닌 매일 출퇴근하는 노동자층이 그들의 대상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박리다매로 판매하는 것. ‘모든 것은 사마리텐에 있다(On trouve tout a la Samaritaine)’라는 슬로건이 탄생한 배경이다.

    마케팅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다. 구매하지 않아도 옷을 입어볼 수 있었고, 제품 가격을 표기했으며, 할인행사도 진행했다. 특히, 백화점 안에 놀이방을 만들어 주부들이 아이를 맡기고 편안하게 쇼핑을 즐기게 하고, 구매한 물품을 집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코냑 부부의 경제적 천재성은 적중했다. 사업은 대성공이었고, 20세기 초 주변의 건물을 매입해 새롭게 백화점을 단장한다.

    아르누보 양식의 대가였던 건축가 프란츠 주르댕이 설계를 맡았다. 주르댕은 철골 구조에 유리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자연채광을 극대화시킨 쇼핑 공간을 만들고, 공작과 정원이 그려진 노란 프레스코화로 벽면을 채워 백화점의 예술적 가치를 높였다. 1920년대 매입한 세 번째 건물은 미적가치와 더불어 실용성을 추구하는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가 앙리 소바주가 건축한다. 당시를 대표하는 건축적, 그리고 예술적 천재성이 사마리텐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사마리텐은 미국의 메이시스, 영국의 셀프리지스 백화점 등 세계 유수 백화점의 모델이 되었고, 사마르(samar)라는 애칭과 함께 파리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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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역동성은 사라지고 사마리텐은 쇠락의 길을 가다 2005년 안전상의 이유로 강제 폐점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아르노 회장은 2001년 망해가는 사마리텐을 매입한다. 분명 그의 눈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가 디올(Dior)이라는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명품 브랜드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디올의 모기업이었던 부삭 인수를 시작으로 티파니앤코, 태그호이어에 이르기까지 70여 개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지금의 LVMH그룹을 만들어 세계 최고 부자에 오른 그다.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명품을 일반 대중도 구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품목과 가격대 제품을 제공하는 전략은 사마리텐의 창업주 코냑 부부를 많이 닮았다. 구멍가게식 가족경영에 머물던 명품 업계에 상업화와 글로벌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대목은 20세기 초 사마리텐 백화점의 확장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사마리텐. 21세기 ‘사마리텐에는 모든 명품 브랜드가 있다’라는 슬로건이 어울린다. 650개의 명품 브랜드를 선별하며 엘레오노어 드 브이손 사마리텐 사장은 21세기에 걸맞은 사마리텐을 창조하는 마음이었다고 강조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3400㎥ 규모의 뷰티 매장에는 200개의 뷰티 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매종 플리송, 바 브륄르리 데 고블랑, 에르네스트 같은 다이닝 매장도 호화롭다.

    시마리텐 백화점 내부 모습.<사진 프랑스 관광청>
    시마리텐 백화점 내부 모습.<사진 프랑스 관광청>

    무엇보다도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양식을 문화재 복원 수준으로 재현하면서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그룹 사나(SANAA)를 통해 물결무늬 유리 패턴을 새롭게 벽면에 설치해 젊은 역동성을 사마리텐에 부여했다. 건축적 천재성을 이어간 것이다. 2023년 4월, 사마리텐 백화점과 루이비통 박물관 사이 광장에는 야요이 구사마(Yayoi Kusama)의 거대한 전신 조형물이 서 있다.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이 노예술가의 시선은 따스하게 루이비통 건물을 바라본다. 예술가의 작품을 바로 브랜드의 제품 이미지로 연결시켜 브랜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건 경제적이자 예술적 천재성의 발현이라 할 만하다.

    단순한 제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아니라 다가올 새로운 백년의 소비 패턴을 이끌어갈 가치와 이미지를 제시하는 공간. 온라인으로 소비하는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믿음이 신기루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현실로 존재하는 LVMH의 꿈.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정리해 놓은 베르나르 아르노의 실사판 박물관 사마리텐 백화점. 파리를 여행한다면 꼭 들러볼 명소다.

    조우석 칼럼니스트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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