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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칼럼] 소비자 없는 소비자정책
입력 : 2023.04.25 16: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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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의무휴업일부터
로톡, 닥터나우, 삼쩜삼까지
소비자 고려 않고 규제 잣대
결국 소비자 외면, 업계 도태김주영 월간국장·매경LUXMEN 편집인 해묵은 논쟁거리였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놓고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구지역 8개 구·군에 이어 충북 청주시가 이르면 이달 중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현행 일요일에서 수요일로 전환한다.
지난 2012년 개정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막대한 자본력을 지닌 대형마트의 확장세에 대항해 영세한 주변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였다. 그러나 1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반론이 잇따랐다. 당초 취지와 달리, 대형마트 휴무일에 인근 상가와 상권이 반사이익을 얻기는커녕 되레 매출이 줄었다. 대형점포가 고객을 빨아들여 주변상권을 초토화한다는 이른바 ‘빨대효과’는 없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마트 의무휴업일에는 마트 주변 점포에서 지출되는 소비 금액도 덩달아 최대 15%까지 줄어 골목상권 이해당사자가 되레 대형마트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필자도 규제 시행 초기 휴무일에 집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다 허탕 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장 보는 것을 다음 날로 미뤘지, 전통시장에 가진 않았다. 그마저도 요즘엔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장을 보는 날이 잦다. 코로나19, 1인 가구 증가 등을 계기로 온라인 쇼핑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이제는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 대결구도가 아니라,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포함한 오프라인 점포 대 온라인 쇼핑몰 간 대립구도로 바뀐 지 오래다.
애초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지정에 소비자 편의성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소비자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기 마련이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은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도 아닌, ‘온라인 쇼핑’이었다.
사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를 의무적으로 쉬게 한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대형마트를 규제해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일차원적 발상이 아니라, 전통시장의 자체 경쟁력을 키워 소비자가 스스로 전통시장을 찾게 만드는 것이 본질이 돼야 한다. 대형마트가 제공할 수 없는 다양하고 고유한 상품을 유치하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차별화로 승부하고, 주차장 조성, 건물 현대화, 시장 공동 브랜드 개발, 배달 앱, 온라인 라이브커머스 등 전략을 통해 소비자 유인책을 강구하는 것이 먼저다.
최근 일부 전통시장들의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한약시장으로 유명한 서울 동대문 경동시장에는 옛 극장 자리에 레트로풍 스타벅스가 들어서 MZ세대들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온라인 주문, 새벽배송 서비스를 하는 시장들도 생겨나고 있다.
예산시장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로 인기를 끌자 다른 지자체들도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다만, 유명인의 이름에 기대 반짝효과에 그치지 않도록 지역 차원의 노력이 수반돼야 지속 가능한 성공 스토리로 남을 수 있다.
요즘 논란이 거센 로톡, 닥터나우, 삼쩜삼 등 전문 서비스 영역 스타트업들과 기존 업계 간 갈등도 마찬가지다. 신-구업계의 밥그릇 싸움에 앞서 소비자 편의나 선택권에 대한 고려가 우선돼야 한다.
김주영 월간국장·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