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친환경 배틀

    입력 : 2023.04.13 15:03:06

  •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r)>. 몇 달 전 미국에서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의미심장한 제목에서 짐작했겠지만, 20세기 최고의 광고 캠페인으로 평가받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앞서 공개된 예고편에서도 천연 다이아몬드는 합성 다이아몬드(이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긴장감이 폭발하는 대결 구도로 그려져 한 차례 파장을 몰고 왔다.

    기술의 발전은 난공불락 같던 ‘지상 최고의 럭셔리’ 상품인 다이아몬드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 이들의 팽팽한 대립은 다이아몬드 산업의 찬란했던 과거와 불안한 현재를 조명한다. 매릴린 먼로가 “다이아몬드는 여자에게 최고의 친구”라고 노래하던 시절과는 180도 달라진 양상이다. 어느새 여자들은 또 다른 친구가 필요해진 걸까?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r)> ©showtime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r)> ©showtime

    환경 친화 배틀, 과연 말장난인가?

    한동안 ‘미심쩍은 혈통’으로 냉대 받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위상이 확 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친환경 트렌드와 함께 급부상한 것이다. 정확히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생산 단가의 감소와 시대에 부응하는 지속가능성 포지셔닝 덕분이다. 그 중심에 놓인 MZ세대는 부모 세대와 달리 윤리적인 소비와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구매 신념으로 적극 표현한다. 소비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천연 다이아몬드 산업에는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화학적 구성 성분, 결정 구조, 광학적 및 물리적 특성이 동일하다. 하지만 마케팅이나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낭만과 언약의 상징’인 천연 다이아몬드가 필사적으로 강조하는 희소가치 대신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택한 것은 ‘가성비’와 ‘친환경’이다. 같은 가격으로 더 큰 다이아몬드를 소유할 수 있다는 만족감과 개념 소비에 대한 뿌듯함이라고 할까. 하지만 지속가능성 내러티브에 ‘과몰입’한 이들은 천연 다이아몬드를 채굴에 의한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몰아세우고, ‘블러드 다이아몬드’ 이슈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했다. 이미 원산지 추적 시스템이나 책임 있는 원료 수급망을 구축하고, 다양한 환경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 업체들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원석 ©Vrai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원석 ©Vrai

    이에 미국의 연방통상위원회(FTC)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환경 관련 규정인 ‘그린 가이드’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랩그로운 업체에서 남용하고 있는 ‘채굴에서 자유롭다’는 내용을 내포한 ‘Mining-Free’ ‘Created without Mining’ ‘No Mining’ 이슈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따지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또한 채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HPHT 합성 방식에는 흑연이, CVD 합성 방식에는 고순도 메탄과 수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생산업체를 제외하면 메탄은 주로 오일, 가스, 석탄 채굴에서 얻는다. 심지어 합성 생산 장비는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모두 채굴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노 마이닝’이 아니라 ‘노 다이아몬드 마이닝’이 맞는 표현이다. 말장난이 아니냐고? 하지만 지금은 단어 하나에도 날을 세울 정도로 양측의 기 싸움이 팽팽한 상황이다.

    제로섬 게임일 필요는 없다

    다이아몬드 산업 애널리스트 폴 짐니스키에 의하면 2022년 글로벌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에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점유율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2%대였던 2018년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2025년까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전 세계 보급률이 13.8%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추세와 더불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가격 하락도 이어지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공급의 증가와 소비자의 인식 제고로 인한 수요 증가 때문이다. 짐니스키의 데이터에 의하면 2023년 1분기에 1캐럿짜리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가격은 1450달러로 2년 새 27% 하락했고, 3캐럿은 50% 이상 하락했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현재 1캐럿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일부 등급이 캐럿당 100만원 이하에 거래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년 안에 캐럿당 50만원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Courbet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Courbet

    이럴 때일수록 핵심은 투명성에 있다. 윤리적 소비와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저절로 그 가치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근거를 공개하고 제품의 본질을 투명하게 밝히고 소통해야 한다.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채광 회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천연 다이아몬드 위원회(NDC)에서는 조만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업계가 펼치고 있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몇몇 주장에 대응하는 캠페인을 론칭할 예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투적인 플레이 대신 천연 다이아몬드의 가치와 장점에 초점을 맞추어 ‘팩트’만으로 소통하겠다는 전언이다. 사실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두 업계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운동장은 혼자 차지하는 편이 낫지만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해묵은 논쟁의 반복이나 보복전이 능사는 아니다. 공정한 경쟁과 건전한 콘텐츠 생태계 조성이 전체 산업의 수요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굳이 제로섬 게임으로만 접근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컨설턴트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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