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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름의 차곡차곡 술 이야기] 희소성으로 가격 ‘쑥’, 스프링뱅크 위스키
입력 : 2023.04.12 15: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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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산지는 크게 스페이사이드, 하일랜드, 롤런드, 아일레이, 캠벨타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 캠벨타운(Campbeltown)은 위치상으로 고립되어 있는 가장 작은 위스키 산지다. 19세기 말 캠벨타운엔 20여 개의 증류소가 있었으나 현재는 3개의 증류소만이 남아있다. 한때 캠벨타운은 ‘위스키의 수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호시절을 누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곡물을 수입하고 위스키를 수출하는 데 유리한 항구를 가까이하고 있으며 깨끗한 물, 풍부한 보리, 맥아제조소 등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붕괴로 작은 증류소들이 서서히 사라져 갔고, 특유의 스모키하고 유질감이 강한 스타일은 당시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캠벨타운에 살아남은 위대한 증류소, 스프링뱅크그렇지만 이런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아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증류소가 있었다. ‘스프링뱅크’ 증류소가 바로 그곳. (국내에서는 ‘스뱅’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1825년 미첼(Mitchell) 가문이 증류소를 매입한 이래로 5대째 가족 경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증류소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26년 스프링뱅크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미국의 금주법이 그것. 이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가 1936년에 다시 부활한다.
도쿄 캠벨타운 이곳은 위스키 제조의 모든 과정을 증류소에서 직접 진행하고, 특히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현시대에 보기 드문 고집으로 운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량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낮기 때문에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스프링뱅크 증류소에서는 현재 스프링뱅크 브랜드 외에도 ‘헤이즐번(Hazelburn)’과 ‘롱로(Longrow)’를 출시하고 있으며, 독립병입회사 ‘카덴헤드(Cadenhead)’를 인수해 이 이름으로도 다양한 위스키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도 스프링뱅크의 희소가치는 가격 상승 및 품귀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프링뱅크의 대략적인 판매가는 데일리샷 기준 스프링뱅크 10년이 30만원대, 15년이 60만원대, 18년이 100만원 내외로 형성되어 있다. 그 이상의 숙성 연수나 한정판 위스키는 찾아보기조차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튜브 채널 ‘3분 위스키–재테크’는 “한정판도 아닌 일반 라인업인데 이 정도 가격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숙성 연수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특유의 개성은 대체재가 없는 위스키로도 유명합니다. 상당히 마니악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수요에 따른 추가 생산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증류소죠. 18년 이상 급인 스프링뱅크는 일본의 야마자키처럼 추후에 더더욱 급상승 테크를 탈 수도 있겠죠”라고 분석한다.
남산 스윙 남산의 캠벨타운으로 불리는 위스키 성지, 스윙그런가 하면 이렇듯 고공 행진하는 시장의 가격을 반영하지 않고 묵묵히 ‘스뱅’을 내어주는 바가 있다. 남산타운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위치한 ‘스윙’은 커피와 위스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스윙’이란 이름은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아무렇게 페이지를 펼쳐 발굴한 이름. 커피를 체이서(Chase·도수가 높은 술 뒤에 마시는 음료) 삼아 위스키를 마실 수도 있고, 주인장의 취향이 반영된 다채로운 위스키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어 최근 애호가들 사이에서 위스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스윙의 남지우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위스키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기존의 금액을 올리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증류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증류소가 공식 수입사에게 말하길, 자신들의 술을 오픈하여 공정하게 판매하는 곳에 우선적으로 위스키를 배정하라고 말했다더군요. 워낙 구하기 힘든 위스키라 나중에 더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오픈을 안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스프링뱅크 10년산·15년산·18년산 증류소의 신조에 따라 스윙은 스뱅을 평등하게 판매한다. 최근 스프링뱅크 30년 병을 오픈했는데, 약 40명 정도가 반잔(15㎖ 기준) 씩 골고루 그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 위스키의 한 잔(30㎖) 기준 판매 금액은 30만원대 그 이상을 원해도 한 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누군가는 이 순간을 위해 저 멀리서 KTX를 타고 남산타운 언덕을 오르기도 했고, 어떤 이는 이 위스키를 마신 그날이 본인 생애 가장 잊지 못할 하루라고 했다. 캠벨타운에는 스프링뱅크뿐 아니라 ‘글렌 스코시아(Glen Scotia)’, 글렌가일 증류소에서 만드는 ‘킬커란(Kilker ran)’ 등 발견해 볼 가치가 있는 다른 브랜드도 있다.
특히 글렌가일 증류소는 스프링뱅크와 소유주가 동일하고 몰트를 공유한다고 알려져 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캠벨타운 몰트 페스티벌’에 가면 이 칼럼에서 언급한 위스키 브랜드가 축제를 위한 한정판 보틀을 선보이고 지역 곳곳에서 시음회, 위스키 마스터와 함께하는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린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만약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없다면 도쿄 치요다구 유락초에 위치한 캠벨타운 로크(Campbelltoun Loch)에서 현대와 과거의 위스키를 시대별로 여행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곳은 일본의 전설적인 위스키 연합 ‘더 위스키 후프(The Whisky Hoop)’의 설립 멤버 나카무라 노부유키 마스터가 운영하는, 그가 캠벨타운을 수십 차례 방문해 수집해온 진귀한 올드 보틀 위스키가 빠른 속도로 증발하고 있다. 계산은 오직 현금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