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승의 사례로 풀어보는 세금 이야기]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돈에도 증여세가 부과된다고?

    입력 : 2023.03.14 16:17:44

  • 박철수는 개인사업으로 매달 1억원을 벌고 있다. 하지만 투자 실패 등으로 모은 재산을 거의 날려버렸다. 결국 작년부터는 번 돈 대부분을 아내에게 송금하고 전업주부인 아내가 재산을 관리하기로 했다. 박철수는 작년에 10억원을 아내 계좌로 송금했는데, 아내는 그중 7억원으로 오피스텔을 자기 명의로 매수했다. 그런데 세무서는 아내가 박철수로부터 10억원을 증여받았다며 배우자 증여재산 공제액 6억원을 공제한 나머지 4억원에 대한 증여세 7000만원을 부과했다.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돈을 송금하면 증여세를 납부해야 할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을 송금하면 어떨까? 만약 친구 사이에 돈을 보내도 증여세를 내야 할까?

    증여세 부과 대상인 ‘증여’란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재산이나 이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송금한 사실만으로 증여세가 부과되지는 않는다. 송금한 이유가 무엇이냐에 따라 증여세를 내야 할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줬다면, 이는 공짜로 재산을 준 것이 아니므로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반면 사업에 실패한 친구가 안타까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돈을 그냥 주면, 이는 공짜로 돈을 준 것이기 때문에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위 사례에서 박철수가 번 돈을 모두 아내가 갖기로 했다면, 아내는 10억원을 공짜로 받았으므로 그에 대한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반면 혹시 모를 사업 실패나 투자 실패로 인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아내가 자신의 계좌에서 박철수의 돈을 관리한 것이었다면, 아내는 박철수로부터 10억원을 공짜로 받은 것이 아니므로 증여세를 납부할 이유가 없다.

    앞서 본 사례를 조금 바꿔보자. 박철수는 미성년자 아들에게 10억원을 송금했고, 이에 세무서는 박철수가 아들에게 10억원을 증여했다며 증여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미성년자 아들은 돈을 꾼 것이지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며 증여세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누구 손을 들어주겠는가?

    과세요건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세무서에 있다. 세무서는 판사가 ‘아들이 박철수로부터 10억원을 공짜로 받았다’고 믿도록 설득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세무서가 ‘증여’ 사실을 증명할 증거, 예를 들어 증여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하면, 판사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돈을 공짜로 받은 것인지, 아니면 빌린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는 세무서가 ‘증여’를 증명하지 못한 것이므로, 판사는 증여세 부과를 취소하는 판결, 즉 아들 승소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 하지만 위 결과는 상식에 반한다.

    사진설명

    아버지가 미성년자 아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경우보다는 그냥 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돈을 줄 때 증여계약서를 쓰지도 않는다. 단순히 세무서가 증여계약서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은 정의에도 반한다. 그렇기에 대법원은 예전부터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 이루어진 송금을 증여로 추정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을 송금한 경우, 법원은 아들이 그 돈이 증여가 아니라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한 아들이 그 돈을 증여받았다고 보았다. ‘증여가 아니다’라는 증명책임이 사실상 아들에게 있다고 본 것이다.

    다시 본래의 주제인 부부 사이로 돌아가보자. 과거 일부 하급심은 부부의 경우에도 사실상 증여로 추정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부부 사이의 송금은 증여 외에도 가족을 위한 생활비 지급, 배우자 자금의 관리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증여로 추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두41937 판결).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을 송금한 경우와 달리 남편이 아내에게 돈을 송금한 때에는 원칙으로 돌아가 세무서가 증여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 “실명으로 확인된 계좌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그 명의자가 취득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상증세법 제45조 제4항이 신설됨에 따라 위 대법원 판례가 현재도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위 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남편의 돈이 아내 명의의 계좌로 입금되는 순간, 아내는 그 돈을 취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앞서 본 대법원 판결은 상증세법 제45조 제4항이 신설되지 않는 사안에 관한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대부분의 법원은 상증세법 제45조 제4항이 적용되는 사안에서도 배우자 사이의 송금을 증여로 쉽게 보지는 않고 있다.

    만약 사례와 같이 아내가 송금 받은 돈으로 부동산을 매수하였다면 어떻게 될까? 아내는 10억원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더라도, 오피스텔 매수자금 7억원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납부할 가능성이 높다. 민법은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사람의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상증세법 제45조 제1항은 “재산을 자력으로 취득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 취득자금을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에 따라 아내의 명의로 취득한 오피스텔은 아내 소유로 추정되고, 그 취득자금 7억원은 남편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다시 추정된다.

    아내가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오피스텔이 사실 남편 소유라는 사실, 즉 명의신탁을 증명하거나, 남편으로부터 7억원을 빌린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아내가 위와 같은 증명을 하지 못하면, 7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물론 배우자 증여재산 공제가 6억원이기 때문에 부과되는 증여세는 크지 않다.

    결론적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돈에 대해 세무서가 증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했다면, 당연히 증여세가 부과된다. 또한 단순히 송금만 이루어졌더라도 전업주부인 아내가 그 돈으로 자기 명의의 부동산을 샀다면 증여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단지 아내 명의의 계좌에 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증여세가 부과되기 어렵다.

    ※ 본 칼럼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으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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