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1% 부자들의 미술에 대한 1% 무지 ‘이기적인 머저리들’의 뒤죽박죽 컬렉션

    입력 : 2023.03.07 10:52:11

  • 요즘 문화예술, 특히 미술품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현대미술에 관심을 보이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갑작스런 현상의 배경에는 건강하고 바른 미술 문화 소비보다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는 분위기가 넘쳐 사람을 긴장시킨다. 무슨 말인가 싶을 텐데, 우리 사회가 미술을 무조건적인 지고지선(至高至善)과 동시에 아름답고 고귀하며 범접할 수 없는, 정신적인 절대계처럼 대하는 것도 문제다. 내용이나 질과는 상관없이 ‘모든 미술품은 가치 있다’는 신앙에 가까운 계몽주의적 관점과 믿음은 관광지의 조악한 낙서 수준의 벽화에도 열광한다. 일러스트 수준의 팝아트, 간판 수준의 키치,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을 복제해 맥락 없이 게시한 장식물,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에 투영되는 미디어아트(?)가 각광받는 것도 ‘미술’을 의심할 수 없는 절대가치, ‘최고 존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술을 소비하는 속물(Snobbism) 같은 자세는 이제 버리고 새로운 미학적,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보다 이성적인 미술 소비로 이어가야 한다. 선진국의 교양 있는 시민이라면 말이다.

    한없이 가벼운 미디어에 노출된 현대인의 일반적 특징이 가져온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좀 더 심할 뿐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직관적인 것을 선호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은 우선 시선을 확 끄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이미지에 환호한다. 추상보단 구상, 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 일러스트나 길거리 낙서 같은 그라피티, 즉 예술과 유희가 결합된 중성적인 것을 좋아한다. 이들이 미술관, 전시관을 찾는 것은 감상보다는 자신이 문화적이란 것을 스스로 느끼기 위함이다. 또 미술관 같은 문화적 공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해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한몫한다. 이들은 스스로 컬렉터를 자처한다. 허나 미술품을 ‘수집’보다는 ‘사용’한다. 자신의 취미를 충족시키는 작가의 굿즈, 티셔츠, 프라모델이나 한정판 신발도 그들에겐 매력적인 컬렉션이다.

    어떤 컬렉션이건 시대와 장르, 지역, 유형별로 맥락화, 즉 계보화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과 가치다. 컬렉터의 취향이 분명하게 반영된 개성 있고 독창적인 유일무이한 컬렉션, 소장품은 상호보완적이며 맥락이 닿는 컬렉션이어야 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우표건 동전이건 매우 하찮은 구체 인형도 좋다. 낱개로도 가치 있지만 모이면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 컬렉션이다. 최근 IT와 기술, 게임, 금융 등 분야의 젊은 슈퍼리치 또는 벼락부자들의 맥락 없는, 무조건 유명한 작가의 작품과 유행하는 작가를 중시하며 컬렉터란 사실을 과시하려는 이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특징은 ‘가치’보다 ‘가격’과 ‘유명세’가 중요한데, 이들과 일부 연예인이 매스컴에 대단한 컬렉터로 소개된다. 하지만 소장품은 아연실색할 만큼 난감한 상황일 때가 대부분이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2>의 벼락부자 브론의 맥락 없는 컬렉션. <사진 넷플릭스>
    영화 <나이브스 아웃2>의 벼락부자 브론의 맥락 없는 컬렉션. <사진 넷플릭스>

    사실 자기과시를 위해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들을 부르는 미술동네 은어가 있다. 그들에게 작품을 공급하면서 멸시하듯 뒷담화를 할 때 쓰는 ‘이기적인 머저리(Sel fish Jerk)’들의 진부한 ‘뒤죽박죽 컬렉션’이란 말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이 대표적이다. 겹겹이 쌓인 미스터리 살인사건을 다루는 탐정물, 추리극이지만 내용보다 중요하고 재미있는 것은 사건의 현장인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의 그리스 섬에 있는 외딴집. 바로 그 집 안에서 그림을 찾아보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일단 영화 보는 내내 유명작가의 작품이 카메오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놀람도 잠깐, 잠시 후 맥락 없는 조합에 헛웃음이 나온다. 첨단기술 산업으로 돈을 번 브론의 컬렉션은 이름에서 압도적이다. 피카소의 <돌이 있는 정물> (1924), 클림트의 <금붕어>(1902), 드가의 <압생트>(1875~1876), 호크니의 <니콜스 캐년>(1980), 바스키아의 <이 경우> (1983), 몬드리안의 <적과 청이 있는 구성 2>(1929), 트웜블리의 <무제>(2 004), 여기에 무려 다 빈치의 <모나리자> (ca.15 03~1506) 등이 우선 보인다. 거꾸로 걸린 로스코의 (1961)을 포함하면 미술사 인명사전 같은 느낌을 준다. 필립 거스통 풍의 외눈박이 연체동물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울고 있는 여성>도 눈에 띈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몬 리의 조각, 요즘 잘나가는 사라 휴즈, 보테르, 뱅크시의 작품도 있다. 코로나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루브르에 소액(?)을 대출해주고 잠시 가져다 건 <모나리자>는 집주인의 재력과 그에 반비례하는 교양 정도를 상징한다. 벽에 걸린 호크니 작품은 2020년에 무려 533억원에, 바스키아 작품은 발렌티노의 공동창립자 지안카를로 지아메티의 소장품으로 2021년 1210억원에 주인이 바뀌었다.

    참 뜬금없는 ‘띄엄띄엄’ 컬렉션이다. 거꾸로 걸린 로스코는 컬렉터의 미술에 대한 피상적인 감정과 지식의 부족 또는 자신의 컬렉션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준다. 영화에 출연한 모든 작품은 모사품인데 영화의 미술감독은 과시적이고 다소 지나친 것으로 묘사한 우스꽝스러운 컬렉션을 통해 벼락부자들의 드러내기와 서툴고 나쁜 취향의 예를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사실 집주인 브론의 컬렉션은 그의 미적 감수성과 조예, 지능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는 비싸고 유명한 작품을 사 자신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깊은 인상을 주려는 수단으로, 작품보다 작가 이름과 작품 제목을 소유하는 ‘네임 컬렉터’로서의 전형적인 스노비즘적 행태를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미술관의 컬렉션 형성과정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컬렉터는 돈은 자신이 내지만 눈은 남의 눈을 빌려왔다는 사실이다. 간송컬렉션은 당대 최고의 안목을 지녔던 오세창과 고희동, 백두용, 이순황, 일본인 신보기조의 눈이 있어 가능했다. 중앙박물관 회화 컬렉션의 핵심을 기증한 동원 이홍근도 당대 최고 실력자들과 교류하며 수중에 넣은 것들이다. 해외 컬렉터들이 컬렉션의 수집과 관리를 위해 퇴직한 미술관·박물관의 큐레이터를 영입하는 것도 이렇게 ‘좋은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지나치게 과도한’ 머저리 컬렉션을 통해 현대사회 특히, 최근의 머스크, 트럼프, 베이조스, 저커버그 등 동시대를 사는 부자들의 삶과 태도를 비튼다. 2022년 죽을 쑤던 경매 시장을 일거에 흑자로 돌려놓은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폴 엘런의 1조4000억원짜리 컬렉션도 이에 속한다. 영화는 터무니없는 부의 특권을 관찰하고 보여주며 동시에 1% 부자의 1% 무지를 꼬집은 점이 신선하다. 무턱대고 돈을 모으면 수전노, 노랑이라고 놀림받지만 미술품도 대책, 계통 없이 모으면 손가락질을 당한다. 컬렉션이란 각각의 미술품으로 또 다른 한 점 작품을 완성하는 예술이란 점을 잊지 말자.

    정준모 미술 칼럼니스트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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