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2023년 美슐랭 5스타 맛보기

    입력 : 2023.01.12 10:59:26

  • 새해를 맞았다. 2023년은 미술 노마드족들의 발걸음이 바빠질 듯하다. 예정된 전시들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코로나로 인해 오래전 기획되었지만 미뤄온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잘 숙성된 위스키처럼 맛도 좋지만 향도 짙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국내 대표적인 문화시설이자 국립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2023년 전시가 12월 중순에도 일절 알려지지 않고 있고, 여러 경로의 취재에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전시 프로그램이 없어 아쉽다.

    2023년은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두 기관을 관장하는 삼성문화재단은 리움에서 <조선백자>전(2월 28일~5월 28일)과 ‘현대미술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전(1월 31일~7월 16일)을 개최한다. 용인 호암미술관도 개보수공사를 마치고 <김환기>전(4~7월)을 연다. 삼성문화재단이 향후 두 기관을 균형과 경쟁을 통해 어떻게 한국 미술 발전에 기여할지 기대가 크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전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듯하다.

    한국미술의 잊힌 백미인 <조선, 병풍의 나라Ⅱ>(1월 26일~4월 30일)와 상대적으로 현대 미술의 첨병이자 언어의 조각가로 불리는 개념미술가 로렌스 와이너(1942~2021)의 전시(8월 31일~2024년 1월 28일)가 동서와 고금을 망라할 것으로 보인다. 늘 종갓집 잘 뜬 메주처럼 곰삭고 맛난 전시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호림아트센터의 <지승>전(가칭)도 기대되는 전시다. 종이를 종이로 또 생활의 도구로 재활용한 우리 선조들의 혜안과 솜씨가 펼쳐진다.

    삼청동 한미사진미술관의 뮤지움 한미로의 재탄생도 기다려진다. 우선 개관전으로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4월 16일)과 윌리엄 클라인(1929~ )의 사진전(5~9월)이 이어진다.

    프란스 스나이데어스 <과일과 채소가 있는 정물> (17세기 초)  유화 173.4x 256.5㎝, 노턴 사이먼 미술관
    프란스 스나이데어스 <과일과 채소가 있는 정물> (17세기 초) 유화 173.4x 256.5㎝, 노턴 사이먼 미술관

    사실 국민소득(GDP)도 중요하지만 오페라, 교향악, 전시, 발레 같은 문화적 먹거리가 항상 준비되어 있는 도시라야 진정 예술의 도시, 문화국가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미국의 워싱턴을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은 여전히 인종문제나 KKK단 같은 이미지로 구설에 올라있는 <필립 거스턴의 지금>전(2월 26일~8월 27일)과 신고전주의 조각을 완성한 <카노바의 점토로 스케치하기>전(6월 11일~10월 9일)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카노바는 절대적이며 우아한 조각품을 탄생시켜 고대 세계의 미의 원형을 회복했단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마크 로스코: Works On Paper>도 2022년 11월 19일부터 2024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1000점 이상의 종이작업에서 선별한 작품전이라 로스코 팬이라면 길을 나서야 할 듯하다.

    뉴욕 근대미술관(MOMA)은 <신호: 비디오가 세상을 변화시킨 방법>전(3월 5일~7월 8일)을 시작으로 꽃과 동물의 뼈 등 자연과 페미니즘 미술의 시조인 꽃을 확대해 거대한 캔버스를 가득 채워 신비로운 추상성을 구현한 <조지아 오키프 : 보려면 시간이 걸린다>전(4월 9일~8월 12일), 피카소가 ‘봄의 세여인’과 ‘세 명의 음악가’를 제작한 1921년을 전시로 구성한 <퐁텐블로의 피카소>전(10월 1일~2024년 2월 2일)이 열린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장을 확장시킨 게고(Gego, 1912~1994)의 <무한대의 측정>과 <사라 세(Sarah Sze): 타임랩스>전이 3월 31일까지 열린다. 사라의 장소에 대한 개입은 디지털 및 물질적으로 포화된 세계가 시간과 장소를 경험하는 방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명상하도록 한다.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전>도 어느 때보다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양치기 소년처럼 몇 번에 걸쳐 무산된 바 있어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중이다.

    메트로폴리탄에서는 <빛 너머: 19세기 덴마크 예술의 정체성과 장소>전(1월 26일~4월 16일, 게티미술관 5월 23일~8월 20일)을 시작으로 구상과 추상을 혼합해 사랑과 욕망을 그리는 <세실리 브라운: 죽음과 하녀>전(4월 4일~9월 24일), 패션계의 신화 <칼 라거펠트: 뷰티라인>전(5월 5일~7월 16일)도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만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전(5월 22일~8월 27일)은 전 세계의 고흐 마니아들을 열광시킬 것으로 보인다.

    피카소 <3인의 악사> (1921) 유화 204.5x188.3㎝, 필라델피아미술관, 출처 위키디피아
    피카소 <3인의 악사> (1921) 유화 204.5x188.3㎝, 필라델피아미술관, 출처 위키디피아

    이어 열리는 <마네/드가>전(9월 24일~2024년 1월 7일)도 열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모네는 마네의 사후에 “마네는 우리의 생각보다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말해 그의 화가로서의 위치를 이미 규정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애증 관계는 유명하다. 이 두 사람의 작품을 통해 인상파와 산업화 이후의 미술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엔젤레스의 LACMA에서는 <중동 및 그 너머의 현대미술에서 여성을 정의하는 여성>전(4월 23일~9월 24일)을 통해 여성의 인권이 유린되는 중동의 문제를 공유할 예정이다.

    한편 동양적 여백의 미를 추상적으로 그려낸 작가 <샘 프랜시스와 일본: 넘쳐나는 공허함>전(4월 23일~7월 16일)도 열린다. 미술관의 미술관이라 불리는 게티 센터의 전시도 먹음직스럽다. 특히 미술 시장이 등장하면서 고객 개발을 위해 수채화와 드로잉, 판화를 제작했던 시기를 담은 <청중 찾기: 19세기의 드로잉>전(9월 26일~2024년 1월 7일)도 흥미롭다.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으로 보편적인 물리적, 심리적, 역사적인 사건을 자신만의 등장인물을 통해 표현하는 <윌리엄 블레이크: 몽상가>전(10월 17일~2024년 1월 14일)은 특히 쉽게 볼 수 없는 전시라 메모해둘 만하다. 키츠 헤링을 좋아한다면 더 브로드에서 열리는 전시회(5월 27일~10월 8일)를 기억해두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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