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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마크 트웨인이 사랑한 도시독일 하이델베르크
입력 : 2022.11.14 1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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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 지성, 꿈과 낭만, 그리고 사랑. 이 모든 단어가 함축된 도시가 바로 하이델베르크이다. 젊음으로 가득한 이곳이 세계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애틋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과,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그의 연인 마리아네 폰 빌레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해외 유랑기>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물론 헤겔, 헤세, 야스퍼스, 베버, 슈만 등 철학가와 예술가들의 젊은 시절의 방황과 학문적 고뇌가 스민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있어 유럽에서 ‘학문의 도시’로 유명했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는 1824년 마리아네 폰 빌레머가 괴테와 나눈 사랑의 감정을 ‘하이델베르크 성’이라는 시를 통해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나는 이곳에서 행복했노라”라고 노래하면서 ‘사랑의 도시’로 세상에 더 알려지게 되었다.
한 편의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일 년 내내 펼쳐지는 하이델베르크는 1142년 세워진 쇠나우 수도원과 138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역사가 시작되었고, 도시의 이름은 독일어로 ‘신성한 산’이라는 뜻을 지닌 ‘하일리겐베르크’에서 유래하였다.
유유히 흐르는 네카어강과 폐허가 된 고성을 곁에 두고 있는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의 문화와 전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 괴테, 마크 트웨인, 빅토르 위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많은 문학가가 새로운 문학적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 중에서도 하이델베르크를 유난히 사랑하고 이 도시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작가가 바로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우리에게 아동문학 작가로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의 명성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 ‘미국의 대문호’라는 수식이 붙을 만큼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이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헤밍웨이는 “모든 미국의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나왔고, 그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없을 것이다”라며 그를 추앙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885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출간하는 데 결정적으로 영감을 준 곳은 미국이 아닌 하이델베르크이다. 미주리주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시간 동안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조용히 살면서 <톰 소여의 모험>과 <미시시피강의 추억> 등의 작품을 쓴 마크 트웨인. 책상에 앉아 온종일 글을 쓰면서 머릿속은 언제나 세계를 여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마침내 그는 1878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해 5월 6일부터 가족과 함께 하이델베르크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즐겁게 지냈다. 물론 그의 머릿속은 온통 집필 중이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유럽 여행에 관한 새 책 <해외 유랑기>로 가득 찼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녹음이 싱그러운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마크 트웨인은 ‘슈라이더 호텔(현재 크라운 프라자 호텔)’에 먼저 짐을 풀었고,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고성과 네카어강으로 한걸음에 달렸다. 그러나 호텔에서 성까지는 걸어서 30여 분 걸리자, 며칠 후 고성 바로 아래에 있는 ‘슐로스 호텔(현재 고급 호텔과 콘도)’로 옮겼다. 이 호텔에서 고성과 하이델베르크 대학, 그리고 네카어강까지 10분이면 충분했다. 세월이 흘러 마크 트웨인이 머물렀던 호텔들은 모두 바뀌었지만, 하이델베르크 대학, 고성, 네카어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마크 트웨인이 즐겨 찾았던 양고기 전문 레스토랑인 ‘줌 굴데넨 샤프’는 1749년부터 지금까지 성업 중이다.
그럼 마크 트웨인이 하이델베르크에서 영감을 받았던 곳은 어디일까? 그는 미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으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쓰고 있었지만, 글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담배를 피울 때도 뭔가 안갯속을 걷는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도시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네카어강 근처를 산책하다가 강에서 뗏목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쳤고, 자신도 그 뗏목을 타고 하이델베르크의 비경을 강물 위에서 즐겼다.
이때 뗏목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1880년에 출간된 <해외 유랑기>에서도 “네카어강을 따라 내려가는 뗏목을 타며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라고 썼다. 그 결과 마크 트웨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이델베르크가 그의 ‘창조적 원류가 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마크 트웨인 물론 마크 트웨인이 네카어강만 유난히 좋아한 것은 아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멋지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하이델베르크 고성도 빼놓을 수 없는 영감의 장소였다. <해외 유랑기>에 “폐허가 된 고성은 높은 언덕에 우뚝 솟아 있고, 푸른 숲속에 묻혀 있고, 주변에 평지가 없지만, 반대로 나무가 우거진 테라스가 있으며, 빛나는 나뭇잎을 통해 황혼이 지배하는 깊은 구렁과 심연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태양이 침입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다”라고 썼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는 마크 트웨인을 통해 영어 문화권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예술가가 자신만의 영감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찾았고, 괴테와 <황태자의 첫사랑>에 매혹된 사랑의 여행자들도 이 도시에서 자신들만의 달콤한 사랑을 위해 하이델베르크 고성과 네카어강 주변을 서성거린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